그녀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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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 by Ci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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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애프리콧 피셔다. 물론 가명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은 당시 어머니가 좋아하던 당대 유명 영화배우에서 따온 것으로, 피셔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해 일찍이 그 이름을 버렸다. 50년대 미국 섹스 심벌로 유명하던 영화배우의 윤기나는 검은 머리와 짙푸른 눈동자 같은 것은 그의 푸석푸석한 염색모나 움푹한 광대뼈와 극명한 대비를 그렸다. 피셔는 거울을 보지 않고 산 지 오래됐다. 이제와 치장이나 겉치레에 신경 쓰기에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싱그럽게 볼을 붉히며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는 행위는 못해도 20대 중반까지나 할 수 있던 일이다. 그는 이제 분칠보다는 기름칠이, 향수보다는 돈냄새가, 콧노래보다는 자동차의 부산스러운 배기음이 더 익숙한 나이다. 캘던 로우만에게서 돈을 뜯어내면 뜯어냈지, 그의 회사에서 매달 뽑아내고 있는 신상 주얼리나 시계 따위에 눈독 들이지 않은 것은 그러한 연유다.

그는 캘던을 호텔 라운지나 클럽 밀실 VIP룸이 아닌 프랜차이즈 카페 테라스에서 만난다. 캘던이 사주는 아이스크림은 싸구려 팝시클 따위에 길들여진 그의 혀에 딱 알맞는 수준이다. 새끼손가락만한 스푼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떼어먹으며 피셔가 입술을 달싹인다. 아뇨, 저번에 납입한 것과 같은 금액이면 충분해요. 내가 뭐 거지새낀 줄 알아요? 당신한테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구걸할 생각 없어요. 캘던의 입술이 일자로 늘어진다. 그의 눈빛에 어린 긴장감이 불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단순 경계심인지 피셔는 알지 못 한다. 그러나 과욕이 불급이란 것만은 안다. 그에게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요구했다가 어느 날 오함마로 뒤통수가 깨지고 어느 강변에 시체로 버려질 의향이 전무하다. 그래, 피셔도 그의 세단을 알아봤다. ‘낚시’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은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높이 56cm, 깊이 94cm, 너비 101cm. 건장한 성인 남성 한 명이 들어가기에는 다소 비좁은 트렁크일지 몰라도 피셔 정도의 마른 체구면 어떻게 욱여서 넣지 못 할 법도 없을 듯했다. 피셔는 청테이프에 입이 틀어막힌 채 관자놀이에서 피를 흘리며 그의 트렁크에 숨죽이고 빼곡히 들어찬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봤고, 캘던에게 부르려던 입막음값의 금액을 30% 축소했다. 캘던은 예상 외로 적은 금액을 부르는 피셔의 의중이 미심쩍은 듯했다. 피셔는 자신이 협박범은 맞는데 빚쟁이는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선글라스를 두어 번 고쳐 쓰고 다리를 과장스럽게 꼬아 앉으며 털털한 제스처를 취한다. 불만스러운가 보네. 뒤에 0 하나 붙여줘요? 그제야 고개를 저으며 캘던이 허둥지둥한다. 그는 이번 달 내로 해당 액수를 입금하겠다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셔는 그가 탄 중고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바탕 신물을 토해낸다. 위액에서 달콤한 바닐라 향이 풍길 때 피셔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때마침 도착한 고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사업 파트너’인 브라이언의 문자를 확인한다. 사진 속 아름답게 웃고 있는 30대 여성은 캘던의 따뜻한 홍채를 가졌다. 그의 아버지가 20대가 넘는 자차를 소유하고 있을 때 소식 끊긴 그의 친딸은 중고차 딜러로 월 2,000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또 다른 딸은 두 해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아들은 현재 감옥에 있다. 캘던은 딸이 보고 싶을까. 브라이언에게 짧은 답장을 보내고 운전석에 올라탄다. 옆을 지나치는 빨간 스포츠카 속 여성 운전자의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을 보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모놀로그를 떠올린다. 쿨한 여자가 되고 싶은 여자들은 그들의 남자가 원하는 것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던 그 말. 저런 야시시한 머리를 한 여자의 남자는 필경 집에서 트렁크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삐쩍 마른 동양인 남성일 것이다. 중고차의 시동을 걸고 다시 한 번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니, 캘던의 딸은 똑 자른 단발에 염색 한 번 해본 적 없는 건강한 모발을 자랑하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접근하기 위해 환경에 우선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기의 가장 기본적인 철칙이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다른 한 손으로 태닝 샵을 알아보며, 피셔는 캘던의 딸이 매주 일요일마다 나간다는 교회 테니스 클럽에 대해 이것저것 그림을 그려본다. 그러는 동안 그의 두 눈은 수시로 양 옆의 사이드 미러를 살피고 있다. 만약 여기서 누군가를 차로 치여 죽이게 된다면 그만한 블랙 코미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밌을 것이다. 그는 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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