𝐽𝑎𝑖𝑚𝑖𝑎𝑐𝑜𝑟𝑒

젬먀의 불능不能성에 대하여

제이미는 미아에게 특정한 형태의 불능성을 느낌. 더 정확하게는, 미아가 제이미에게 제공하고, 제이미에게 느끼게 만드는 특정한 형태의 무언가임. 그렇다면 왜 제이미는 미아에게 어떤 특정한 형태의 불능성을 느끼는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이미가 인식하는 미아와 미아 본인이 인식하는 미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함. 개인의 자기상이란 ‘본인이 인식하는 자기'와 ’타인이 인식하는 자기'로 나뉨. 하지만 제이미와 미아가 인식하는 ‘미아'는 꽤 큰 갭을 가지고 있음.

일례로 술 취한 제이미가 미아에게 연락한다면 미아는 다음과 같이 반응함:

- 생각: 왜 지랄이지? 술 처먹었으면 곱게 처 자지

- 행동: ㅎㅎ 네 도련님 취하셨어요 주무세요~

즉, 미아는 말과 행동이 따로 놀 수 있는 사람임. 미아는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의 감정과 생각과 느낌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큐레이팅할 수 있도록 - 어떤 것을 내보이고 어떤 것을 숨길 것인지, 어떤 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 훈련을 받아옴. 하지만 사실 개인이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외부로 표현함에 있어 완벽한 조절이란 불가능에 가까움. 따라서 미아가 조절 가능한 것은 본인의 반응 크기 정도와 본인의 반응을 상대가 해석할 수 있는 맥락적 정보 제공의 범위 뿐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미아가 제이미에게 본인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이해를 많이 허용하는 편이라곤 할 수 없다는 거임. 즉, 제이미는 미아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모름.

미아는 본인이 애교도 있고 살갑고 웃을 줄도 아는… 다면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제이미가 보는 미아는 다름. 제이미가 보는 미아는 👩🏻 oO{ ) / { 네, 도련님. 주무세요.) 임. 차갑고 냉담하고 곁을 주질 않는데다가 본인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왜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여자. 두 사람 사이 관계에서 ‘미아’는 그정도의 간극이 있음.

그러므로 제이미가 미아에게 느끼는 감정은… 증오hatred라기보다는 애증love-hatred에 가깝고,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 명명하자면 frustration임. 답답하고 절망스럽고 짜증나고 실망스럽고 좌절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냉담한 타인.

종종 제이미는 미아 죽이고 싶어할듯~ 이라곤 하지만, 사실 제이미가 정말로 미아에게 느끼는 감정은 살의라기보다 frustration에 기반한 "깨부수고 싶음"임.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여자… 그러나 정작 살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냉기는 없고 미친듯이 내려치면 깨질 것 같은 느낌만을 주는. 이 여자를 지켜보고 있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미아의 냉담함만이 제이미에게 미아를 깨부수고 싶다는 느낌을 안겨주느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님. 제이미는 항상 선택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고,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감수하는 사람임. 제이미의 용기는 선택이라기보다 결과의 감수고 그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음. 선택하고 감내하면서.

그러므로 제이미가 갖고 있는 일말의 생각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통제감일 수밖에 없음.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것이 제 아무리 끔찍한 선택지일지라도 제이미는 선택할 수 있고 그걸 감내할 수 있는 능력도 있음. 원작에서 제이미가 맺는 관계 역시 그러함. 제이미는 세르세이를 사랑한다는, 브리엔을 만나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브랜을 탑에서 밀겠다는, 아에리스 2세를 죽이겠다는, 브리엔을 떠나 세르세이와 함께 죽겠다는 선택을 했음.

왕겜 안에서 제이미는 선택할 수 있고, 그러므로 자유롭고 가능可能한 존재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한계 역시 없음.

그럼 여기서 가능의 뜻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음. 가可는 옳음, 허락, 들어주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능能은 능하다, 할 수 있다 등의 뜻을 가짐. 그러므로 가능可能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는 것임. 이것이 원전의 제이미임.

그러나 미아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짐. 미아는 예언자를 참칭함. 제이미가 보기에 그녀의 예언은 정확하고 반드시 일어남.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제이미에게 있어 미아는 불가능不可能의 증표가 됨. 제이미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래할 미래를 막을 수 없고 항상 미아가 예언하는 미래는 끔찍함. 미아 앞의 제이미는 선택 가능하여 자유로운 자로서의 본인에 대한 자기개념을 박탈당하는 것임. 제이미에게 있어 미아는 가능를 불不하게 만드는 존재이고, 그의 한계를 지각하게 하는 지표이며, 그동안 가져왔던 본인에 대한 개념을 정면 반박하고 부인하게 하는 계기임. 미아의 존재는 제이미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위협하므로 제이미는 미아를 깨부수고 미아를 알기전의 본인으로 돌아가고 싶어함.

게다가 미아는 외국인, 이국의 사람, 한국인(동양인)임. 왕겜 내에서는 괜찮은 분량을 가진 동아시아인이 없고 그러므로 미아 역시도 제이미에게는 처음 보는 존재임.

사실 Exotic woman의 예언은 제이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진 않음. 왜냐면 그건 알든 모르든 변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드라마 내용 읊어주는 거니까…, 심지어 미아는 예언자도 아니고 걍 살아남고 싶은 사기꾼일 뿐임. 제이미도 어느 정도는 알 거임. 미아의 예언은 (미래)현상에 대한 기술일 뿐이라는 걸. 그런데도 제이미는 종종 이 모든 게 미아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어짐. 왜냐? 미아는 냉담한 성격에다가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외국인이니까.

하지만 제이미는 이 글만큼 본인에 대한 탐색과 성찰을 이끌어낼 메타인지가 없음. 그러므로 미아에 대한 frustration은 항상 모호하고 표면적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서만 존재함. 항상 제이미가 미아에게 느끼는 감정이 신경쓰임, 거슬림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거임. 제이미가 미아에게 느끼는 파괴욕 역시 대체로 드러나지 않고, 그냥 이따끔 어두운 충동처럼 불쑥불쑥 치밀 뿐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그러므로 미아는 제이미의 불능임.

한편, 미아가 제이미를 받아들이는 건 왕겜 세계에 안주하고 살겠다는 - 현대인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한다는 의미를 가짐. 제이미가 미아를 받아들이는 건? 자신의 불능성을 수용하는 일임. 어떤 건 불능하고 한계가 있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살아있을 수 있고, 기쁠 수 있고, 누군가를 아낄 수 있다고 자연스레 터득하는 일임.

물론 제이미가 이 이유만으로 미아를 받아들이는 건 아님. 제이미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준 게 미아고, 제이미에게 새로운 가족으로 자리하면서 정신적으로 지지를 제공해준 게 미아니까…

아무튼 상기한 이유로 젬먀의 관계는 언제나 불능이 완전매개하는 양상을 띰. 냉담하지만 소중하고 불능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난해하지만 결코 불가해하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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