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 이야기
얼마 전 친구랑 놀이공원을 갔다. 가챠삽도 들러서 열심히 파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걸 얻기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친구가 하고싶었던-사실상 우리가 오게 된 이유였던-콜라보 캐릭터들의 굿즈를 얻기 위해 열심히 장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후쯤 안내방송과 커다란 음악이 들리더니 저기 멀리서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친구가 하고싶어하는 게 아직 안 끝나서 ‘그냥 퍼레이드인가보다,’ 하고 망설임 없이 하던 걸 하러 갔다. 그리고 바로 옆까지 온 퍼레이드 행렬을 잠깐 보고있다가 "나 사실 퍼레이드 한 번도 본 적 없어." 하고 얘기했더니 "왜 그걸 이제 말해!" 하더니 하던 걸 잠깐 멈추고서 같이 구경해주고, 이따 밤에도 하니까 또 보자고 얘기해줬다. 최근 웅장한 음악만 들었다 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나로서는 그냥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조금씩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픈 내용은 전혀 아니었는데도.
그리고 정말로, 밤에 길거리 조명도 다 끄고 놀이기구 조명도 어둡게 해 놓고 관계자들이 길을 통제하고 야간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커다랗고, 감동적이고, 신기해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온 몸에 LED 라이트를 붙인 채 춤을 추며 행진하는 모습이 쭉 이어졌다.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고 있자니 친구가 이후에 불꽃놀이가 있으니까 그것도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놀이공원에서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어서 엄청나게 기뻤다.
퍼레이드를 본 뒤 범퍼카로 신나게 합법적 교통사고를 실컷 내고 후다닥 불꽃놀이를 보러 갔지만, 이미 행사는 시작됐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있어 무대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전광판이 무대 위를 카메라로 비추는 화면을 띄우고 있어서 그걸 보고 있는데, 친구가 "여기서 보고있어," 하더니 사라졌다. 생각이 있어 잠깐 어디 다녀오겠거니, 생각하고 홀린듯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조금 뒤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피유웅, 퍼버벙, 타다다다닥 하고 온갖 소리와 색으로 요란하게 불꽃이 터졌다. 친구에게도 보여주고싶어 친구를 찾았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없었다. 빨리 와야 같이 볼텐데, 하는 생각 반, 웅장하고 화려한 불꽃놀이에 감탄하고 감동받는 기분 반으로 끝까지 봤다. 마지막에 무대 전체를 날려버릴 것처럼 불꽃들이 터져나왔다. 무대 위로 박수와 흰 연기만 남은 그 때까지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전화를 하려니까 저 멀리서 친구가 나타났다. 어디 갔었냐 물으니 핸드폰 영상을 보여주면서, "거기선 잘 안 보일테니까 내가 찍어왔어" 하더라. 코 끝이 찡해졌다. 자기는 옛날에 봤던 거라고 했지만 친구도 아주아주 오랜만에 놀이공원을 온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서 일부러 영상까지 찍어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친구를 위해 대체 뭘 해 줬는지, 특별한 건 생각나지 않아서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인터넷에서 불꽃놀이같은 게 보일 때마다 그 날이 떠오른다. 같이 가자고 해 줘서, 평생 갈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친구가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고, 이것저것 알아봐주고, 심지어 그냥 옆에서 같이 보며 즐길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영상으로까지 남겨 내가 나중에도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런 건 그냥 배려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남길 생각을 해 준 것도 별 마음 없이는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마다 내가 이 친구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가 느껴져서 정말 행복하다는 걸 친구는 알까. 내 표현이 부족해서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표현하려고 한다. 나는 무엇이든 일이 벌어지고 나서 한참 이후에야 방법이나 마음을 떠올리는 사람이니까. 표현하려다 부끄러워 지우고 마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머뭇거리고 느리고 덜렁대는 나여도 여전히 좋아해줄 거라는 걸 믿을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인 내 절친에게, 이렇게 너를 사랑한다고 언젠가 꼭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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