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목격자
440295
우연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잔인한 것이다.
예로부터 감이 좋은 편이었다. 술집에서 쎄함을 느껴 잔을 엎으니 그대로 술이 닿은 부분이 까맣게 끓으며 녹아버렸던 적도 있고. 서늘한 기운에 당일 약속을 파토내니 그날 갑작스레 테러가 일어난 적도 있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랬다. 어디선가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발이 닿는 대로 간다면 될 것 같았다. 복도와 계단을 지나, 방문 몇 개를 지나고 또 지나. 간혹 가다 멈춰서게 되는 방문이 있었다만, 이곳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을 돌고 돌았더라. 끝끝내 발끝이 확신을 가지고 멈추어 선 문 앞. 306호라 쓰인 문이 보였다. 똑똑, 누가 있을까 싶어 노크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다. 강하게, 무언가 강하게 외치고 있다. 이곳이 네가 찾던 곳이 맞지만, 정말 열어야 하겠느냐고. 마음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었지 않은가. 사람이든 곤충이든 본디 고쳐쓰는 것이 아니니까.
문을 조심스레 열자,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은 칠흑같은 암흑.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맥주캔이 던져져 있는 쓰레기통이 보인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나뒹구는 의자가. 위로 고개를 올려다 보면,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에 아주 조금.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네가, 밧줄에 목을 매달고 대롱거리고 있다. 동서남북, 그 어딘가로 발끝을 거듭 휘청이면서 말이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맥주나 마시던 녀석이.
…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익숙하다. 더러운 동네에서 자라 깨끗하지 못한 일에는 대부분 손을 대봤다. 묻혀온 혈흔마저 300명은 족히 넘어갈 테지. 익숙하게 밧줄에서 너를 내려 침대에 잠시 올려두곤, 이제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 방을 간단히 청소한다. 있는 것도 별로 없어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너는 대체 무슨 과거를 걸어왔길래, 어떤 현재를 겪었길래 이렇게 마주하게 된 걸까.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나지막히 당신에게 물었다. 어쩌다 죽어버린 거야. 싯 군.
네 시신 들고는 무덤가를 찾았다. 근방에 놓여있던 삽 들곤 깊이 땅을 판다. 깊고, 넓게. 늘 그러했듯 퍽 익숙하게. 네가 안식을 취할 자리를 마련해보인다. 손이고 옷이고 흙투성이가 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삽을 잠시 내려두곤, 손을 털며 너에게 잠시 다가간다. 네 코끝에 손가락 가져다 대어본다. 숨소리는 커녕,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음에 거듭 착잡해진다. 씁쓸한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정말, 죽었구나, 하고.
널 조심스레 구덩이 안에 넣어주었다. 잠시 고민하다, 머리에 걸쳐두었던 선글라스 벗어선 네가 묻힐 그곳에 같이 넣어둔다. 방을 정리하면서도 네 유품이랄 것을 찾지 못해서… 저승길 가는 친구에게 주는 선물, 그 정도로 괜찮지 않겠는가. 네 위로 다시 흙을 덮어간다. 차곡차곡, 네가 저 땅 아래로 묻혀간다. 다 묻고 나서야 힘 없이 삽 내려놓았다. 네 무덤 옆에 앉아선. 캔맥주 하나 꺼내서 열었다. 한 번에 주욱, 3분의 2 가량을 들이킨다. 남은 술은 네 무덤에 뿌려주었다. 같이 술, 한 번 더 마시고 싶었는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음은 늘 내 옆에 머무는 것, 그 무엇보다 익숙한 존재에 불과했는데. 네 죽음의 끝맛은 어째서 이렇게 씁쓸한 걸까. 오랜만에 마주쳤던 네가 토악질을 한 채로 뒷골목에서 뒹굴고 있어서 그랬을까. 그 다음 강가에서 만났을 때 잠을 좀 잔 것 같아서 다행이라 느낀 탓이었을까.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느릿하게 눈 감았다 뜬다. 너에게 닿지 않겠지만, 그래.
싯 군, 넌 좋은 친구였어. 내가 네 죽음을 이렇게 슬퍼할 만큼 말야.
…나중에 만난다면 말야, 너의 모든 이야기를 웃으며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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