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미션 BOND

[체슬모쿠 / 체즈모쿠] 불안의 증폭

저를 붙잡아줘요.

  • 시점은 블루레이 <미카구라 컵 대항쟁> 이후 ~ 블루레이 <노래하는 마제스틱 호텔> 이전 입니다.

리무진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흑복들은 체슬리와 모쿠마의 눈치를 보며 시선만 데구룩 굴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 큰 덩치들이 위축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체슬리와 모쿠마는 여전히 냉전 상태로 서로를 노려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침묵 후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모쿠마였다. 그러나 차라리 말을 뱉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흑복들은 생각했다. 그가 입을 연 순간, 2차전의 암시와도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않을 거라면, 내 의견을 묻지 말던가.”

“…지금, 제 잘못이라는 말씀인 건가요?”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야. 그냥 내가 속상한 기분이 들어서 그래. 나는 너에 대해 무한히 신뢰하고 있는데, 너는 가끔 나를 믿지 않는 것 같이 굴잖아.”

“그 말을 하실 거라면 평소 언행을 같이 하시던가요. 사소한 것부터 거짓으로 점철되어선 지키신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체슬리. 방금 그 말은 네가 날 믿지 않는다는 말에 확신을 보탠 것과 같아.”

차라리 평소처럼 둘만의 세계에 빠져서 낯간지러운 말이나 늘어놓는 편이 낫겠다고 흑복들은 생각했다. 말려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흑복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사이 싸움은 점점 더 냉랭해졌다.

“인정하죠. 전 모쿠마 씨를 전적으로 신뢰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그건—”

체슬리는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본인이 살아온 생에서 ‘타인을 믿는다’는 일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체슬리가 그에 대한 이유를 언급하려 할 때, 모쿠마의 표정은 이미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

모쿠마는 작게 실소를 한 번 뱉었다. 그리곤 짧은 두 마디.

“미안. 내가 너한테 뭐라도 된 줄 알았나 봐.”

“……왜 그렇게 말하시는 건가요?”

사과로 시작한 모쿠마의 말에 상처받은 건 체슬리 쪽이었다.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고? 체슬리에게 모쿠마는 늘 ‘뭐’와 같은 애매한 것이 된 적 없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확실한 ‘사랑’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동료애든, 연인 간의 사랑이든, 어쨌든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그것은 사랑이었다고, 체슬리는 단언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헷갈리게 한 적이 있던가?

체슬리가 생각하기엔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저는 제 마음을 다 보여줬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제가 퍼부은 사랑이 그에겐 부족했던 걸까? 체슬리의 호흡이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살짝 흐트러졌다. 그 탓에 체슬리의 목소리는 되레 강조하듯 끊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왜 그렇게, 말하시는 건가요?”

“……화났어?”

“회피하지 마세요, 모쿠마 씨.”

“난 네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난 너한테—”

“저는 ‘아무나’에게 제 인생을 맡길 만큼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제게 뭐라도 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미 당신과 갈라서서 다른 길을 걸었겠죠. 화났냐고요? 저는 오히려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화를 내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감정을 내비쳐야 하는 거죠?”

체슬리의 말이 쏘아붙이듯 날카롭게 변했다. 모쿠마는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이 조금 커졌다.

“저, 보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결국 리무진을 운전하던 흑복이 총대를 메고 말을 꺼냈다. 그제야 차창 밖의 풍경이 20분 전부터 그대로였다는 걸 깨달은 모쿠마는 괜히 머쓱해져 조금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일단 내릴까.”

“아직 얘기 안 끝났습니다.”

“장소를 옮기면서 머리라도 좀 식히자. 너나 나나 지금 얘기를 이어가봤자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게 뻔하잖아.”

“…….”

모쿠마의 얘기엔 틀린 말이 없었다. 체슬리는 화가 제법 난 상태였고, 모쿠마도 아닌 듯했지만 마음이 꽤 상한 모양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명명백백히 시간이었다.

그러나 체슬리는 불안했다. 만약 그 시간으로 인해 사이가 벌어진다면, 그 틈이 계속, 계속해서 벌어지기만 해서 멀어질까 봐. 그래서 체슬리는 계속 모쿠마를 붙잡고 싶었다.

“그럼 아까의 질문에 답해주세요. 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요?”

“…네가 날 신뢰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나는 내가 네게 유일한 존재일 거라고 혼자 착각에 빠진 것 같아서. 조금 내 자신이 한심해졌어.”

“…….”

체슬리는 모쿠마의 말에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착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상처였지만, 그보다도 더 신경 쓰였던 것은 제가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점이었다. 제 나름대로 그에게 애정을 쏟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기준이었고, 상대의 기준에선 그리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제게 유일한 존재가 맞았다. 체슬리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토록 순정에 가까운 감정을 바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대체 어떤 지점에서 그가 이렇게도 제 마음을 의심했을까. 전적으로 제게 신뢰를 비추는 그를 믿지 못했던 게 문제였을까.

체슬리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 모쿠마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체슬리의 모습에 또 한 번 실망한 듯했다.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자리를 옮기자.”

모쿠마는 평소보다 조금 더 진중한 목소리로 체슬리의 손을 잡아 리무진에서 내렸다. 화가 났어도 그의 시중을 드는 건 여전히 모쿠마였다. 체슬리는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며 모쿠마를 따랐다.

머리라도 식히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호텔까지 걷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슬리는 눈을 흘기며 모쿠마를 보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묵묵히 걷는 동안에도 제가 아플까 봐 힘 조절을 하며 손을 쥐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이런 감정이 드는데 당신이 어떻게 제게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지. 체슬리는 보이지 않게 입 안쪽 살을 짓씹었다.

경쾌한 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모쿠마는 자연스럽게 문을 잡아 체슬리가 먼저 들어가도록 비켜섰다. 체슬리는 습관적으로 모쿠마의 목덜미를 잡고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려다, 모쿠마의 손에 막혔다. 난 아직 화가 났다던가, 이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냐던가 하는 말도 없이 조용히 노려보는 모쿠마의 모습에 체슬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습관이라서요.”

“그래. 그리고 오늘은 내가 받아줄 기분이 아냐.”

굳이 문을 닫지 않고 복도에서 키스하는 것은 과시욕이었다. 그가 내 것, 내 연인이라는 공표. 그러나 모쿠마 쪽에서 그것을 거절했고, 체슬리는 더더욱 불안해졌다. 어쩌면 오늘이 정말로 마지막인 걸까. 그를 붙잡아야 하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도 싸울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어떤 식으로 붙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체슬리.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뭔가요. 모쿠마 씨."

“내가 왜 화났는지는 이해했어?”

체슬리는 마치 일생일대의 심리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떤 대답이 옳은 걸까. 그러나 그걸 말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을 입 밖에 내고 싶었다.

“모쿠마 씨.”

“응.”

“모쿠마 씨.”

“대답했잖아.”

“…연민이라도 좋으니까,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모쿠마는 놀란 눈으로 체슬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자신을 동정해도 좋다’는 말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제 앞에서는 상대적 우월감을 내세우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한없이 작아 보였다.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를 숨겨 가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그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감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라고, 모쿠마는 생각했다. 마음에 두던 사람이 자존심까지 구겨가면서 제게 매달리는 모습을 그 누가 내칠 수 있단 말인가.

모쿠마는 체슬리를 밀어 침대에 걸터앉히곤 부러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아니.”

“…….”

체슬리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모쿠마는 웃음기를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연민일 리가 없잖아. 나는 아주 확연하게, 너를 사랑하는데.”

딱딱하게 굳었던 체슬리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 모쿠마는 기어이 낮게 목을 울려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베푸는 사랑의 형태는 절대로 동정이 아니야. 근접한 형태의 것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애정이지. 그것도 아주 큰.”

모쿠마는 체슬리의 이마를 검지로 툭 밀며 말했다.

“방금까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는데, 네가 솔직히 말해줘서 기분이 다 풀렸어.”

“모쿠마 씨….”

“네가 믿지 않는다면 내가 더 너를 믿는 수밖에 없지. 그것밖엔 답이 없잖아? 네가 날 신뢰하지 못하는 만큼, 나는 널 신뢰하면 돼. …물론 아주 조금은 속상할 때도 있겠지만 말이야.”

쪽. 모쿠마의 입술이 체슬리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럴 때는 지금처럼 솔직하게 말해 줘. 난 그거면 돼.”

너도 이걸로 됐지? 모쿠마는 체슬리의 이마를 쓸며 말했다. 체슬리는 슬쩍 멀어지려는 모쿠마의 허리를 잡으며 바짝 가까이 붙었다.

“저는 늘 입술에 했는데 이마에 뽀뽀한 걸로 대신하시려고요? 양심도 없으셔라.”

“오늘 좀 화났잖아.”

“다 풀리셨다면서요.”

체슬리는 허리를 휘감았던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려 모쿠마의 등을 껴안아 제 쪽으로 붙였다. 모쿠마는 순순히 체슬리 쪽으로 몸을 숙여 주었다. 체슬리는 기어이 모쿠마의 입에 질척하게 키스를 한 뒤 만족스럽다는 듯 떨어졌다.

“네, 이걸로 됐어요.”


늘 글을 검수해주시는 지인 분께서 던져준 주제입니다. 주제는 ‘연민’이었습니다. 이건 사실 제가 바쁜 기간에 너무 글이 쓰고 싶어서 지인 분께 주제 하나만 던져달라고 해서 나온 주제였는데요. 쓰다 보니 주제가 날아간…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잡아 왔습니다. 지인 분이 잘했다고 말해줬어요.

검수해주시던 분이 ‘근데 마지막에 솔직하게 얘기해서 풀린 게 아니라 말 + 얼굴 공격해서 풀린 거 아님?’이라고 말해서 웃겼습니다. 근데 그게… 맞을지도? 어쩌면 모쿠마는 자각 못 했을 수도 있지만요.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사실 도입을 진짜 고민했습니다. 체슬리랑 모쿠마가 싸울 만한 일이 뭐가 있지. 역시 사소한 것 때문일 텐데. 결국 고민하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 진짜 모르겠어서 뭉갰습니다.

결국 사랑의 안정을 베푸는 쪽은 모쿠마라고 생각해요. 매번 헷갈리고, 방황하고, 불안해해도 결국 그 심지를 곧게 잡는 쪽은 모쿠마인 게 저의 캐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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