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森清慈

7. '아메모리 세이지'의 이야기

아메모리 세이지

딱, 아픈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이마를 때렸다.

“머저리가, ”

은서하의 입에서 드물게도 거친 어휘가 튀어나왔다. 아니, 실상 그의 입이 전보다 자유분방해진 것이야 모두가 아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세이지는 서하에게 이런 식으로 혼을 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말도 낯설어야만 했을 텐데.

“‘네가 하고 싶어서 했다’면 네가 주인공이다. 어딜 이야기의 주인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려 하지?”

잊히지도 않는, 수년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 한 명당 한 가지 이야기. 그렇다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멍하니 자신의 공허를 들여다보았다. 타인에게 이것의 바닥을 이렇게까지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인지하기도 전에 툭, 눈물이 흘렀다. 이마가 아파서는 아니었다. 혼내는 듯한 태도가 무섭거나 상처가 되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허무를 앞에 두고, 세이지는 그의 말을 오랫동안 되짚었다.

“모두를 엮어 낸 사람이 되어서는 죄다 잘라 내려 들고 있으면 어쩌잔 거냐?”

* * *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아메모리 세이지는 한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환경을 바꿔 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너무 번잡하지 않으면서 친한 이가 가까이 있었으면 했고…… 대한민국 강원도 동해 인근, 은마리의 이웃이 그 조건에 딱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서로 왕래가 잦았고, 마리가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도 별생각 없이 영상에 같이 찍히곤 했다. 동영상을 보고 ‘채널주 친구’로 지칭되는 자신을 언급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큰 거부감이나 부담감이 일지는 않았다.

“세이지도 유튜브 해 보지 그래?”

“……내가?”

“응. 아무튼 자기 얘기를 해 보면 좋을 거 같은데.”

아이나에게 ‘이야기를 잘 들어 준다’는 말을 듣고, 서하에게는 상담사라는 직군을 추천받았다. 그러나 조금 알아보던 중 바로 마음을 접었다. 누군가가 가진 마음의 짐을 듣는 것이라면 이미 수도 없이 해 왔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무게감을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 자신의 나약한 정신은 타인의 우울을 덜어 주지 못하고, 그저 같이 주저앉을 거란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도 못했다.

“……별로…… 내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겠어.”

그렇게 말하며 무릎에 기대 있는 다람쥐를 쓰다듬었다. 맞은편에 앉은 마리의 곁에선 노란 고양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동물들이나, 그들을 돌보는 마리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는 것이야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늘어놓는 말에 그만한 대중성이나 상품 가치가 있을까. 세이지는 그 점에 회의적이었다.

“그럼 남의 얘기라도 하든가. 세이지는 아는 사람도 많은데.”

“아니, 남의 이야기를 내가 허락도 안 받고 할 수는 없지…….”

“허락받으면 되는 거 아냐? 아니면 아메─.”

한 이름을 언급하려던 마리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잠깐 눈을 깜빡인 세이지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괜찮아. 지금 너의 말이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거야. 그 사인을 확인하고서야 마리는 문장을 마저 맺었다.

“……아메모리 선배 이야기를 해도 되고.”

세이지는 잠시간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메모리 시이카’는 그에게 있어서 역린이었다. 이렇게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하지만 그건 살아가는 이상 응당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그날, 문을 닫는 데 손을 보탠 것은 분명 자신이었다. 어쩌면 혈육이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끊어 낸 것은 자신이었다. 다른 마음을 먹었던 것도,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누나가 알았더라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으리라는 사실도 안다.

그렇다 해서, 아픈 것이 아프지 않은 것이 되지는 않는 법이라.

“슬픈 기억을 들추는 이야기를…… 누군들 좋아하겠어.”

그리고 그것은 분명, ‘아메모리 시이카’를 좋아했던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

꽤 직설적인 거절 의사에 마리가 투덜거리며 노란 고양이의 턱을 긁어 줬다.

“자기가 한 말이랑 반대로 굴고 있어…….”

“응?”

“세이지가 그랬잖아. 이야기에는 위로의 힘이 있다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랬던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신기하게도 자신이 한 말보다는, 다른 이에게 들었던 말이 먼저 떠올랐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을까요?

매섭게 자신을 다그치면서도, 그 안에 든 감정만은 누구보다 자신을 위했던 친구의 말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세이지는 머뭇거리며 인터넷의 어느 페이지를 열었다. 눈앞에 넓고 텅 빈 입력창이 떴다. 블로그의 ‘새 글 작성’ 화면이었다.

몇 번이고 키보드에 손을 댔다가, 떼며 트리스탄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왜 당신의 마이너스적 감정을 나누는 게 연대와 유대가 아니라. ‘전염’이 되는 거죠?

연대가 될 수 있을까. 유대가 될 수 있을까.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픈 이를 기억하는 이야기가.

─들어 봐요, 세이지.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을까요? 무뎌지거나 삭히게 되는 부분은 없을까요?

꺼내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뎌질 수 있을까.

─누군가가 공감하고, 위로하고, 다정하게 말해 주고.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게 그대로 남을까요?

공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또 여러 번 키보드에 닿았던 손가락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고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간신히, 글의 시작을 적어 나갔다.

안녕하세요, 아메모리 세이지입니다.

제 이름을 아시는 분들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겠지요. 그리고 훨씬 많은 분들이 제가 잊을 수 없는 이름을 함께 기억해 주시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많이 두렵고, 또 아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아껴 주었던, 그만큼 저도 아꼈던, 제 자랑스러운 누나의 이야기를요.

아메모리 시이카를 기억하시나요?

* * *

“와, 이게 누구야. 아메모리 작가님이시잖아?”

“그거 하지 마시라니까요, 선배…….”

세이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방금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사람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시이카의 마지막 소식을 전해 주었던 선배였다.

“왜?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 여기저기 인터뷰도 실리지, 아주 바쁜 몸이시던데?”

“……선배의 짝사랑 이야기도 실어 드릴까요?”

“잘못했습니다.”

바로 태도를 바꾸는 모습에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졌다.

“농담이에요. 세기의 순애보로 10년 후에도 지인들의 안줏거리로 오르내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왜 이렇게 예시가 구체적이야…….”

“음…… 비슷한 사례를 알아서?”

모호하게 대답하고 있자니, 영상으로 남아 버린 한 동기의 짝사랑 이야기가 여전히 세 아버지의 농담거리로 거론되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다음에 뵙게 되면 여쭤볼까. 잠깐 잊힌 걸 내 질문으로 다시 떠올리게 되면 미안해지겠지만…….

그날 이후, 세이지는 인터넷에 아메모리 시이카를 추억하는 내용의 글을 한 편씩 올리게 되었다. 주로 자신의 시선에서 본 그녀의 모습이나 추억을 묘사하던 글은, 어느새 그녀를 기억하는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도 담게 되었다. 이 선배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샌가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늘기 시작하며 세이지의 글은 금세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어느 출판사로부터 블로그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책은 많은 일본 독자들의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아메모리 시이카라는 개인에 대한 관심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과거가 된 ‘히어로’라는 존재에 대한 대중의 동경, 누나 못지않게 쌓아 올렸던 세이지 본인의 인지도, ‘아리아드네’ 본인이 이야기하는 ‘열린 문’의 시대, 군더더기 없이 읽기 쉬운 문장……. 여러 요소가 기적처럼 맞물려 시이카는 세이지의 문장을 통해 다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었다.

“근데 그 얘기 진짜냐? 수익은 다 기부한다고?”

“네.”

“너희 남매는 진짜…….”

“그, 그래도 이건 제 얘기도 아니고……. 누나가 원래 살피던 곳들에 다시 인연이 닿는 것뿐인걸요.”

“그럼 다음 책 수익은 어쩌게? 그것도 다 사회에 환원하게?”

“네……?”

세이지는 순간적으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끔뻑였다. 질문을 던진 선배는 오히려 세이지의 의문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당황 가득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아니, 시이카 얘기 이제 다 썼다며. 그럼 다음은 네 얘기 쓰는 거 아냐?”

“……다음……이요?”

이거 봐라? 하고 선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그만 쓰게?”

“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책과 관련된 일로 정신이 없어, ‘다음’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쓴다, 계속 쓴다……. 그런 선택지를 고려해 보지도 못했다. 애초에 처음 시이카의 이야기를 올렸을 때도 여기까지 오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다음’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도 했다.

그만 쓴다면, 다음으로는 무엇을 하지?

계속 쓴다면, 다음으로는 무엇을 쓰지?

복잡해진 표정을 본 선배가 자신의 뒤통수를 몇 번 긁적이더니, 세이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 이참에 한번 잘 생각해 봐.”

* * *

그날 밤, 세이지는 오랜만에 넓고 텅 빈 화면을 마주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댔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처음 시이카를 회고하는 글을 썼던 날처럼.

무엇을 써야 할까. 쓴다고 해서, 누군가 읽어는 줄까. 의미가 있을까.

시이카의 이야기는 당연히 누군가 읽어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이카를 아는 이들과 함께 그녀를 추억하고, 기억하며, 조금이라도 공감이나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의 사람들과…… 미처 생각도 못 한 말을 수도 없이 주고받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뛰어난 스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목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재치 있는 유머로 흥미를 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열린 문’의 시대를 묘사한들, 자신은 늘 후방에 서 있었으니 생동감 넘치는 기록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 글을 누가…….

아니, 아니지.

“……또 나쁜 버릇이 나와 버렸잖아.”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하지 말 것. 몇 번이고 되뇌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럴 땐 최대한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누구 한 명이라도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때, 아주 오래전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사람 한 명당 한 가지 이야기. 그렇다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 너겠지.

─그리고─ 계속해서 그걸 읽고자 하는 이가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있었다.

읽어 줄 사람이.

─서하가 계속 읽어 준다는 뜻이야?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을 때, 그는 세이지를 바라보며 답했다.

─과연 나만 읽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연이어 떠오르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정리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그냥 네가 내어 두는 단어들을 알고 싶은 거니까.

시간은 걸릴지도 모르지만, 이라고 답했던가. 세이지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올리. 오래 걸려도 너무 오래 걸렸네…….”

조금 떨리는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에 닿았다. 빈 화면을 들여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처음 ‘이야기’를 깨달았던 날은 시이카의 책에서 이미 다뤘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는…….

처음 발을 들인 아카데미에서 길을 헤매던 울보 동기에게, 기꺼이 말을 걸어 준 친구들로 시작해야겠지.

이후 수많은 수필을 남기게 되는 작가, ‘아메모리 세이지’의 첫 문장이 써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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