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드빌형제
퇴고X
날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겨울 내내 비밀스레 오라돈을 들락날락하던 히데가 다시 상실의 섬에 두 발 붙이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애들을 챙기려 들기 시작했으니, 봄이 다가온다는 증거로 충분했다.
한편, 히데와 함께 집을 쓰는 패륜아 사이러스 드 빌은 여전히 조용했다. ‘인테리어업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섬에 있는 웬만한 건 다 고치는 수리공이 제일 바쁜 시기다. 하루에도 온갖 사소한 의뢰가 들어와 섬의 끝에서부터 반대쪽 끝까지 뛴다. 집에서 나설 때, 히데가 괜히 방심하다 감기 걸리지 말고 꼭 입으라고 겉옷을 하나 더 걸쳐줬는데 그게 영 거슬릴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잡생각을 할 여유라곤 없을뿐더러, 사이러스는 점점 기억하는 것들이 줄어든다. 이걸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럼에도 사이러스가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중 하나는 남동생이다. 카를로스 드 빌. 어린 날의 사이러스가 헬 홀에서 뛰쳐나올 때 두고 나온 것. 사이러스는 그것에 대해 후회하다가, 후회하지 않다가를 반복한다. 동생을 사랑하긴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이러스의 관점은 아주 올바른 악당의 자식다워서 자신보다 우선인 적은 없다.
사이러스는 지금 이 불편한 겉옷을 동생에게 넘겨주기로 계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생을 찾아 겉옷을 주면, 그 아이도 춥지 않고 자신도 불편하지 않으니, 모두에게 좋은 거래다.
동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예전 카를로스는 항상 겉돌거나 헬 홀에서 어머니의 뒤처리를 하느라 위축되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몇 아이들의 보호 아래에서 뛰어다닌다.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카를로스가 항상 형의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열 살에 처음으로 형에 대해 안 후로 카를로스는 늘 사이러스에게 인식되고 싶어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때 사이러스는 이미 머리가 깨져서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허상만 어렴풋이 쫓아다닌다.
“칼로.”
사이러스는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멀리 달려가는 동생을 불렀다. 그 부름을 들은 카를로스는, 뒤에서 또 왔냐는 말의 짜증 섞인 기색을 알아챘지만, 그래도 형 쪽으로 향했다. 일종의 기대. 지금 사이러스가 보고 있는 자신이 이번엔 진짜 자신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형의 앞에 선다.
그걸 알지만 대응해 줄 정도의 관심은 없는 형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동생을 아무런 말 없이 가만 내려다보기만 했다. 뜻을 알 수 없어 카를로스가 눈치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 길이를 재는 듯 동생을 보다가 겉옷을 벗어 그 애 어깨에 걸쳐주고는 말했다.
“환절기잖니, 카를로스.”
자켓 깃을 조금 다듬은 후 사이러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예상보다 카를로스가 옷을 단단히 입고 있었지만, 뭐 그래도 아직은 밤에 쌀쌀하니까. 그리고 헬 홀에는 어머니의 것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물건이 없으니까. 핑계 댈 수 있는 건 많다.
“감기 걸리지 말고, 잘 입고 다녀.”
아침, 히데가 해줬던 말을 사이러스는 그대로 따라 했다.
“이 시기에는 약이 부족해서…, 배리도 감기 정도는 침대에 누워 버티라고 한단다. 시간 역시 금인 걸 아는 사람이 말이지.”
형의 작은 투덜거림을 받아주면서 카를로스는 자켓 끝을 만지작거렸다. 오라돈에서 오는 쓰레기 틈에서 나왔다기엔 너무 새것이다. 사이러스가 한 번씩 주는 것들은, 잊으리 섬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뿐이고, 아직 어린 동생은 그 속에 밴 다정에 목을 매는 걸… 사이러스는 안다. 알고는 있다.
“어쨌든, 조심히 다니렴. 서쪽으로는 오지 마.”
“…많이 위험해?”
“늘 그렇듯.”
카를로스가 끄덕이자, 사이러스는 기특하단 듯 동생의 머리를 헝클였다. 착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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