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화랑] 썰 모음 9

뎁진화랑진 1개, 진화랑 2개. 2023년 10월 2일 연성.

1. 썰 모음 8에서 이어지는 미니 데빌과 화랑, 그리고 진으로 뎁진화랑진.

도장으로 돌아온 화랑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제 사범인 백두산에게 미니 데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 사람처럼 무조건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데빌을 알고 있는 백두산도 답지 않게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는 미니 데빌을 바라보다 다시 화랑을 바라보았다. 설명하라는 그 표정에 화랑은 있는 말솜씨, 없는 말솜씨를 몽땅 발휘해서 미니 데빌을 설명했다. 한참을 화랑의 말을 듣고 있던 백두산은 결국 깊은 한숨을 쉬며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암묵적으로 미니 데빌의 체류를 허락했다. 후, 일단 큰산 하나 넘았다. 제 방으로 들어오자 미니 데빌은 화랑의 머리 위에서 날아올라 잠시 공중을 날아다니더니 이내 창문가에 내려앉았다. 뭐야, 열어줘? 열어줘도 되나... 너 다시 돌아올거야? 화랑의 말을 알아들은건지 미니 데빌이 화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적였다. 이걸 믿어도 되나... 에라, 모르겠다. 화랑이 힘차게 창문을 열기가 무섭게 미니 데빌이 날아올라 창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화랑이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스르륵 머리를 풀며 뒤로 돌았다. 알아서 돌아오겠지, 일단 씻자.

후아아,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근 화랑이 잠시 멍하니 천장을 보다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힘을 풀고는 물 속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갔다. 머리 속을 비우기 위해 가끔 하는 행동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고 있으면 머리 속의 잡스런 생각이 일순간 사라지고 물과 동화되는 것 같은 이 느낌을 화랑은 참 좋아했다. 침착하게 물 속에 가라앉아있다 숨이 슬슬 막힐 때 쯤 눈을 반쯤 뜬 화랑은 물 밖에서 저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 눈을 부릅뜨고 벌떡 상체를 일으켜 물 밖으로 나왔다. 후아아! 뭐, 뭐야! 갑작스런 화랑의 행동에 빠르게 날아올랐던 미니 데빌이 다시 천천히 화랑의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뭐야, 너였냐... 깜짝이야. 화랑이 손을 내밀자 그 손에 착지하는 대신 화랑의 얼굴까지 다가와 이마에 손을 올린 미니 데빌은 마치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미니 데빌의 행동에 피식 웃은 화랑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괜찮아. 그냥 머리 속을 비우려고 가끔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만 내려와 "

그 말에 미니 데빌이 다시 날아올라 욕조가 잘보이는 세면대 쪽에 착지했다. 물기가 없는 곳에 자리잡고 앉아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화랑이 후 숨을 내뱉었다. 너... 진짜 왜 다시 나타난거야? 아니 다시 나타나도 왜 하필 내 앞이야? 나도 실상은 진 못지않게 네가 달갑지 않은데. 너한테 좀 심하게 당했어야지. 물론 결국 이긴 건 나긴 하지만... 그런 말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미니 데빌에 후, 숨을 내뱉은 화랑이 아 소리를 뱉었다.

" ...데비. 너 귀찮으니까 데비로 부른다. 뭐, 얼마나 같이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화랑의 말에 천천히 다시 날아오른 미니 데빌, 줄여서 데비가 욕실을 나가자 화랑도 욕조 마개를 빼며 일어섰다. 너무 오래있었다. 조금 있으면 식사 시간이었다. 물이 슬금슬금 빠지는 흐름을 느끼며 화랑의 손이 찬물을 틀었다. 샤워기의 차가운 물이 화랑의 몸을 빠르게 식혀갔다.

최대한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제 방으로 올라온 화랑이 조용히 창가에 앉아있는 데비를 불렀다. 그것이 저를 부르는 호칭이라는건 아는 듯 데비가 날아올라 화랑의 왼손에 착지했다. 마치... 잘 길들인 애완용 새같네. 작게 중얼거린 화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너 식사 같은건 하지 않아도 괜찮은거야? 지금의 네 몸 구조를 모르겠으니 괜찮은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

그 말에 잠시 가만히 화랑을 바라보던 데비가 이내 몸을 돌려 약지를 붙잡더니 그대로 이를 세워 물었다. 어...? 아주 약간의 통증과 함께 순간 굳어버린 화랑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하던 데비가 1분 후 물었던 손을 놔주었다. 아주 작은 자국이 생기고 손으로 대충 입을 훔친 데비가 다시 날아올라 창문가에 앉는걸 본 화랑이 어이없는 실소를 머금었다. 모기야, 아니면 뱀파이어야 뭐야...? 아, 진짜 아프지도 않고 일단 어이가 없어서 할말이 없네. 희미하게 남은 두 개의 잇자국, 정확하게는 송곳니 자국을 본 화랑이 에라 모르겠다 중얼거리곤 불을 끄고 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일단... 진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밖에 답이 없으니까... 그때까지만... 화랑의 눈이 서서히 감기고 이내 고른 숨소리가 방을 채우자 창가에 앉아있던 데비가 날아올라 창문을 닫고는 화랑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던 데비가 손을 뻗어 욕실에서처럼 화랑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쓰다듬는 것처럼 손을 움직인 데비가 스르륵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랑, 입을 열어 소리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 설마 이렇게 빨리 부를 줄은 몰랐는데 "

" 하루라도 빨리 저 녀석을 처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

3일만에 온 연락에 혀를 차며 미시마 재단의 본부에 온 화랑은 여전히 제 머리 위의 데비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진에 에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 녀석에 대한 진의 심정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너무 긴장하는거 아닌가 싶었다. 물론 진이 긴장 아닌 긴장을 하는건 다른 이유였지만. 그리고 진의 어머니인 준이 인사를 하며 모습을 보인 순간. 화랑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데비가 순식간에 날아올라 마구잡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왓? 갑작스런 이상 행동에 화랑은 놀라고 진은 담담히, 그리고 준은 재미있다는 듯 눈으로 그 움직임을 좇았다.

" 몸은 작아졌어도 날 보고 경계를 한다라... 확실히 데빌이 맞구나 "

" 이 녀석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 알겠어, 준씨? "

" 흐음... 아니, 모르겠는걸 "

" 역시 준씨라도 저 녀석의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나 "

" 하지만 힘의 대부분이 소진되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당분간은 지켜봐도 좋을 것 같네 "

" 어머니 "

그 말에 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준이 진정하라는 듯 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데비는 준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 처음의 마구잡이로 날아다닌 것과 달리 안정을 찾아 얌전히 화랑의 머리 위에 안착한 상태였다. 그런 데비에 준이 다가와 손을 내밀자 잠시 그 손을 바라보던 데비는 예상 외로 그 손을 피하지 않고 제 작은 손을 뻗어 준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어머나. 그런 데비의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 준에 화랑이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마이페이스의 최고봉이라니까, 이 사람.

" 여하튼 왜 다시 나타난건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내버려둬도 문제될 건 없다는거지? 그럼... 난 간다 "

" 다만 "

인사를 고하는 제 말에 제동을 거는 준의 말에 몸을 반쯤 돌린 화랑이 가만히 준을 바라보았다. 데빌의 당신을 향한 묘한 집착 같은게 느껴져. 잘못하면 먹힐지도 몰라? 그 말에 화랑이 가만히 머리 위로 손을 내밀자 데비가 그 손에 올라왔다. 여전히 이상하리만큼 자신을 따르는 데비를 바라보던 화랑이 피식 웃었다.

" 뭐, 새삼스럽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땐 다시 이겨주면 그만이지. 그래도... "

" 그래도? "

"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건 내 자만심일까, 준씨? "

" 후후, 글쎄 "

여하튼 간다, 진. 뭐, 진짜 그런 일 생기기 전에 연락할테니까. 전에 왔을 때 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며 가버리는 화랑의 뒷모습을 보던 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진의 등을 준이 툭 두드렸다. 알아요, 알지만... 하아, 복잡한 심경을 담아 다시 내뱉은 한숨에 준이 작게 웃었다.


2. 술에 취한 진에게 습격 당한 화랑과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나중에 추궁하는 진으로 진화랑. (콩가루집안 같은거 없는 평화로운 철권 세계관)

이... 빌어 처먹을 새끼. 화랑이 누군가를 보며 으득 이를 갈다 무거운 몸을 끌고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무려 반년 간의 휴식 후 다시 시작된 The King of Iron Fist Tournament 8, 줄여서 철권 8 대회였다. 저번 대회인 철권 7에서 미시마 가의 헤이하치가 격투가를 은퇴할 정도의 사고를 당한 일로 인해 철권 7은 중단 되었고 재정비를 통해 겨우 다시 철권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었다. 갑작스런 대회의 중단으로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참가자들 중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몇몇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 중에는 당연하게도 화랑이 있었다. 헤이하치 그 양반이 은퇴하게 된 건 아쉬운 일이지만 너랑 못붙은게 더 아쉬워. 그 말에 진이 살짝 웃어보였다. 자신도 화랑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열리게 된 대회였으니 많은 격투가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무려 128강부터 예선전을 시작해 겨우 16명의 본선 진출자를 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16명 중에는 당연히...

" 아, 진! "

" 스티브. 역시 너도 있었군 "

" 당연한거 아냐? 오히려 내가 없었으면 더 이상했을걸? "

진은 저를 발견하고 가볍게 주먹을 내민 스티브의 행동에 저도 주먹을 내밀어 가볍게 부딪치며 인사를 했다. 자신과 같은 나이의 3인방 중 한명인 스티브는 현 미들급 세계 복싱 챔피언이면서 더 강한 상대와의 싸움을 위해 철권 리그에도 참여하는 싸움광이었다. 그와 인사를 나눈 진의 눈이 빠르게 참가자들을 훑었지만 사람들 속에 진이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진의 모습에 스티브 또한 참가자들을 훑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 녀석은? 설마... 예선 탈락은 아니겠지 "

" 리스트에는 확실히 있었어. 지각... 은 아닐테지 "

" 누가 지각이고 예선 탈락이야, 이 망할 놈들이 "

뒤에서 들린 짜증 섞인 반가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둘은 찾던 사람을 만나서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이 섞인 표정으로 그, 화랑을 바라보았다. 그 전까지 짧은 머리를 고수하던 그가 목까지 올 정도로 길게 머리를 기른 모습은 이미 예선전을 진행할 때 봤기 때문에 놀라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이 놀란 건 평상시 거추장스럽고 답답하다며 도복 하나만 입던 그가 소매가 없는 민소매 터틀넥 형식의 언더셔츠를 챙겨입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저를 보는 둘의 표정에 화랑이 아, 소리를 내며 손을 올려 제 머리를 거칠게 빗어넘겼다.

"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몸 상태가 그닥이라 챙겨입은 것 뿐이야 "

" 몸 상태가 별로라니. 네가 몸 관리를 대충하지는 않았을텐데? "

" ...사연이 좀 있어. 걱정마, 이걸로 허무하게 16강 광탈 따위는 안당할거니까 "

적어도 니들 발목 정도는 붙잡고 탈락해줄까나. 그렇게 말하며 웃는 화랑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하여간에 너란 녀석은. 스티브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네 걱정은 하는게 아니네 역시 라며 중얼거린 말에 진도 말없이 동조했다. 하하... 왠지 힘없이 느껴지는 작은 웃음 사이에 힐끔 저를 보는 화랑의 시선에 뭔지 모를 짜증과 원망이 섞여있는 걸 캐치한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유를 물어보기 전에 16강 본선 경기가 시작되었다.

진은 무난하게 8강으로 진출했다. 다음 경기는 화랑과 전통의 강호 폴이었다. 후우... 몸 상태도 그닥이겠다... 빨리 끝낼까, 폴씨? 자네가 몸 상태가 그닥이라니, 시작부터 블러핑인가? 그런거면 얼마나 좋을까나... 하하, 안타깝게도 난 컨디션이 최고라서 말이야! 내가 이기겠군! 그 말에 화랑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 몸 상태가 안좋은 것과 별개로 지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한 것 같은데 왜 댁이 이긴다는거야? "

" 몸 상태가 안 좋은 자네와 컨디션 최상의 내가 붙으면 당연히 내가 이기겠지 "

" 좋아, 반드시 이겨서 몸 상태 안좋은 상대도 못이겼다는 비웃음 받게 해줄게! "

그리고 시작된 화랑과 폴의 시합은 말그대로 난타전이었다. 두 사람 다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타입이었지만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고 공언한 화랑은 시합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어서인지 더욱더 저돌적으로 들어왔다. 화랑이 시합을 이렇게 임하니 덩달아 폴도 서슴없이 큰 기술을 펑펑 써가면서 정말 두 사람은 뒤도 없는 시합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그 시합을 보고 있던 스티브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진은 조금 달랐다. 시합을 하는 화랑의 얼굴이 내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본인이 공격을 하면서도 마치 공격을 당한 것 같은 고통을 참는 표정이 얼핏 보인 탓이었다. 무엇보다 그답지 않게 기술의 연계가 뚝뚝 끊겼다. 읏, 이를 악문 체 잠시 허리를 잡는 화랑에 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 진짜 몸 상태가 안좋긴 한가본데 "

" 그래도 그 상태에서도... 이기긴 했네 "

스크린에 끝내 레이지 아츠인 스카이 베리얼로 폴에게서 승리를 따낸 화랑이 보였다. 아, 짜증나. 진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뭐라고 하는지 대충 눈치챈 스티브가 헛웃음을 지었다. 엉망진창인 시합이니 이겼어도 짜증날만 하지. 그 말에 진이 가만히 화랑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랑에게 가본다는 말을 남기고서.

" 아 씹... 짜증나네, 진짜... "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는 선수들이 모여 함께 시합 관람이 가능한 공용 대기실이 있었지만 개인별 대기실도 따로 있었다. 평소라면 공용 대기실로 향했을 화랑은 오늘만큼은 개인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개인 대기실의 화장실로 들어간 화랑이 이를 으득 갈았다. 여지껏 했던 많은 시합들 중 가장 최악의 시합을 했다는 점도 짜증났지만 그것보다 더 짜증나는 일은 따로 있었다. 화랑이 천천히 제 도복을 벗고는 안의 언더셔츠를 슬쩍 끌어올렸다. 그러자 상체를 뒤덮다시피한 치아 자국과 멍자국, 그리고 손자국들이 보였다. 거울에 비춰진 제 상체를 보던 화랑이 다시 이를 갈다 손을 뻗어 제 허리에 붙여진 파스를 찌익 뜯어 내동댕이 치고 고개를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 그 씨발새끼 진짜... "

" 누군데? "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란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제 몸을 돌리는 손길에 화랑이 힘없이 쾅, 거칠게 거울에 기대져 강제로 제 몸을 돌린 상대를 바라보았다. 진이었다. 제 눈에 들어온 상대가 진이라는걸 깨닫자마자 다시 표정을 구긴 화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이 끌어올려진 화랑의 몸에 남은 자국들을 보다 손을 뻗어 목 부분의 언더셔츠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목에 노골적으로 남은 자국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평상시 들을 수 없었던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누구냐고, 화랑 "

" ...누군지 알아서 뭐하게 "

" 내 라이벌이라는 녀석을 시합 전에 이렇게 만든게 마음에 안드니까. 누구냐고 "

" 하아... 너랑 관계없으니까 신경 꺼. 어차피 다시는 이런 일 없을테니까 "

그 말에 확 눈에서 전기가 튄 진이 입을 크게 벌려 덥썩 화랑의 목을 물었다. 윽...?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화랑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이 언더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넣고는 손 끝으로 화랑의 상체를 훑었다. 촉진과 색을 반반 품은 그 손길에 화랑의 몸이 가볍게 튀었다. 흐으, 으! 물린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흔적이 남은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에 혼란스러워진 화랑이 겨우 입을 열어 소리쳤다.

" 그... 만해, 진...! "

그러나 말없이 이에 조금 더 힘을 준 진의 손이 허리를 쓸어내리다 마침내 바지 속으로 들어가기 전 무거운 발을 들어 진의 밀어난 화랑이 겨우 떨어진 진을 보며 손으로 물린 목을 지긋이 눌렀다. 치아에 목이 뚫리다 못해 피가 흐르는 느낌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쯤되니 화랑은 서서히...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화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이 제 입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대답해, 화랑. 누구야? "

" ...잖아 "

" 뭐? 안들... "

" 너잖아, 이 새끼야! "

" ...어? "

" 기억 안나냐! 3일 전에 술에 진탕 취한 체로 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는거 무시하려다가 가서 네 놈 집에 던져 놓으려는 순간 니가 날... 나를... "

화랑의 눈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너무 억울했다. 라이벌이라는 놈이 술에 취해서 저를 덮쳐 엉망진창으로 만들더니 그걸 기억도 못했다. 개에게 물린 셈치고 어떻게든 겨우 몸을 추스리고 경기장에 와서 엉망진창의 시합을 한 것도 열받는데 제 몸을 이렇게 만든 당사자는 저를 마구 몰아붙이고 다그쳤다. 진짜 화랑은... 너무 억울했다. 제가 잘못한게 없었으니 더 억울했다. 결국 화랑의 눈에서 주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에 진이 당황했다.

" 화랑... "

" 날 이렇게 만든게 넌데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거야, 씨발 새끼야... "

" ...미안해 "

" 으으, 움직이기도 힘든 몸으로 너랑 반드시 싸우겠다고 억지로 움직여서 시합 이겼더니 너는... 씨발... "

어지간히 서럽고 힘들었던건지 그 자존심 강한 화랑이 제 앞에서 눈물을 숨기지 않자 당황한 진이 그를 제 품으로 끌어들어 안았다. 3일 전, 그러니까 제 삼촌격인 리, 라스와 술을 좀 과하게 마신 날이었다. 그때 자신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것 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았다. 어쩐지 리 삼촌이 아침에 문자로 화랑의 이름을 꺼냈길래 뭔가 했더니... 이거였나...

" 기억 못해서 미안해, 내가 죽일 놈이다... "

" 넌 진짜... 씨발... 날 어떻게 봤길래 그딴 짓을... "

" 책임질게 "

" 책임 같은 개소리하네! 죽어, 씨발. 나가 뒤져...! "

면목 없다는 표정을 한 진은 개인 대기실을 뒤져 나온 구급상자에서 거즈와 테이프를 꺼내 제가 물어서 생긴 목의 상처를 치료하고 울다 지쳐 잠든 화랑이 깨어날 때 까지 화랑의 곁을 지켰다. 중간에 시합을 승리로 장식하고 둘을 찾으러 온 스티브에게 대충 얼버부려 설명한 진은 깨어나자마자 화랑에게 세게 얻어맞았지만 군소리 없이 다시 한번 더 그에게 미안하다 말을 전했다.

" 미안해, 화랑. 사실 난 널... "

" ...좋아한다고? "

" 어? 어... "

" ...술 취해서 날 강제로 안을 때 처음엔 네가 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이런다고 생각했는데... 넌 하고 있는 내내 내 이름 부르면서 수백번이고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더라 "

" ...... "

" 취중진담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이 새끼야... 그러고선 기억 못하는게 더 열받아. 고백도 하고 덮쳐놓고 왜 기억을 못해, 씨발 "

" ...미안해 "

" ...됐어.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네가 어떻게 하나 지켜볼거야. 대답은 그 후에 할거니까. 그러니 앞으로 잘해, 알았냐 "

" ...응, 고마워. 그럼 오늘은 내가 데려다 줄... "

" 아서라. 지금 사범님 앞에 나타나면 사범님이 널 반 죽이실거다. 날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미시마 가에 항의 하신다는거 내가 간신히 말렸으니까 "

" ...여러가지로 진짜 미안해, 화랑... "

" 미안하면 앞으로 잘해, 이 새끼야... "


3. 외전 나오기 전에 손풀기로 짧게 쓰는 영혼의 연결, 처음 겪는 화랑의 발정기로 진화랑.

두 사람이 각인을 맺어 반려가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뭐, 각인을 맺기 전부터 서로를 의식하는 선전포고를 했으니 세상은 당연한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강한 반류가 될지 기대하는 반류들이 많았지만 세간의 기대와 달리 둘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진은 어디까지나 아이가 아닌 화랑을 원했고 화랑 또한 원인이었던 선조회귀였기에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건 머리로 이해해도 무의식적으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리하여 모든 반류들이 기다리는 가장 강한 두 반류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의 등장은 한참 머나먼 이야기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과 달리 반류가 된 화랑의 몸은 착실하게도 제 몸에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발정기였다.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화랑이 희미하게 눈을 떴다. 젠장. 너무 덥고 뜨겁지만 차마 이불을 걷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건 제 이런 모습을 밖에 보이기 싫다는 화랑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일정 주기마다 온다는 발정기. 반류가 되고나서 첫 발정기가 온 것이었다. 각인을 맺어 반려가 되고나서 진의 집에 같이 살게 된 화랑은 그 전날 제 페로몬 향을 주의 깊게 맡던 진이 - 뱀이 아니라 개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 당분간 고생 좀 할거라는 말에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그게 설마... 발정기가 온다는 소리일 줄이야. 그냥 말로 이야기해주면 안되냐, 그 자식은 진짜. 답답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화랑은 제 반려인 진을 떠올리며 하아, 숨을 내뱉었다. 자기 반려가 첫 발정기로 고생하고 있는데 이 자식은 오지도 않고... 그리고 그 순간. 제가 뒤집어 쓰고 있는 이불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랑, 괜찮아? 이불... 걷을게. 그리고 보인건 손에 쟁반을 든 진의 상기된 얼굴이었다.

" 미안, 나도... 반려의 발정기는 처음이니까.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좀 늦었어 "

" 준비...? "

" 얼마나 갈지 모르니까... 간단하게 먹을 음식이나 그런거... 그나저나 화랑... "

네 페로몬 향, 너무 좋아... 진이 쟁반을 침대 옆 협탁에 내려놓고는 화랑을 껴안더니 그 목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발정기로 접어든 화랑의 페로몬 향이 진을 사정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젠장, 미안한데 화랑... 나 더 이상 못참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화랑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더니 손을 들어 진의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 참지 말라고 바보야... 이럴 때도 넌 인내심이 너무 강해... "

" 화랑... "

" 다만 부탁인데... 처음이니까... 최대한 배려해라... 알았어? "

" ...노력은 해볼게 "

그리고 동시에 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 페로몬을 개방하는 순간, 화랑의 눈 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입을 열어 크게 숨을 쉬어도 들어오는 건 저를 정복하려는 진의 페로몬 뿐이었다. 말하기도 민망한 곳에서 울컥울컥 무언가가 쏟아지는 감각에 몸을 떨던 화랑이 제 옷을 거칠게 벗기는 진의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흐아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랑은 제 입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물을 받아마시며 살짝 눈을 떴다. 후우... 괜찮아, 화랑? 진이 위에 올라탄체 제 뒷목을 천천히 주무르면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작게 나온 제 목소리가 온통 쉬었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댄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뒤로 밀어넣은 화랑이 제 뒤를 묵직하게 채우는 무게감에 으, 몸을 살짝 뒤척였다. 아직도 몸은 뜨거웠다. 그래, 첫 발정기가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었다. 화랑이 먼저 손을 뻗어 진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서로의 페로몬이 섞인 타액을 나눠마시며 깊게 키스를 하던 화랑이 그 상태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진에 내뱉은 신음은 고스란히 입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또 다시 제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액체에 화랑이 고개를 모로 돌리며 입술을 떼더니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 하아, 하아... 이... 거짓말쟁이가... 배려는 어디갔어, 이 망할... "

" 하하... 그래도 배려하고 있는거라고... 난 발정기가 아니니까 "

" 으으, 아 진짜... 끝나거든 두고봐, 너... "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와 달리 진의 등에 팔을 감은 화랑이 진의 목에 이를 세워 깨물었다. 그것을 제 반려의 귀여운 플러팅으로 여기는 걸까, 작게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진의 손에 화랑이 다시 눈을 감았다. 화랑의 발정기가 끝난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