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森清慈

6. 이게 나의……

아메모리 세이지

* 누나를 잃은 세이지의 심정을 깊이 파고드는 내용입니다. ‘가까운 이의 상실’에 민감하신 분은 열람을 재고해 주세요. (묘사 완화: https://glph.to/hhegty)

‘판테온’에서 내린 이후, 세이지는 대외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운신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만큼 동기들을 더 잘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레이니르 마그누손의의 일본 정착이나 모하은, 은마리의 재활과 같은 활동을 돕기도 했다.

‘현자’라는 이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술렁이기 시작한 세간의 목소리가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조금이라도 덜 공격하도록. 하다못해 자신이 그 방패막이가 될 수 있도록.

그러나 여전히, 아메모리 세이지는 아메모리 세이지이기에 무력했다.

* * *

─……내가 돌아오면 네 누나도 돌아올 거라고 믿은 거냐?

어느 한쪽이 돌아오면 다른 한쪽도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희망을 단 한 순간도 갖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리라. 하지만 너무 큰 기대도 안지 안으려 노력했다. 무릇 기대란 클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이므로. 세이지는 이 이상의 낙담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문 너머'에 가버린 건, 우리 친구들 뿐만이 아니군요.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나요?

어떻게 물어야 했지? 너희가 혼돈을 이겨 내고 돌아온 걸 알면서도 정말 미안하지만, 혹시 그 지옥에서 같은 것을 견디는 내 혈육을 보지 못했느냐고? 이 자리에 '문' 때문에 소중한 이를 잃은 게 어디 자신뿐이던가? 그 질문을 자신이 해도 되는 것인가?

─네가 찾는 첫번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잖아.

감히 우선순위를 정하란 말인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까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은 적 없던 가족과, 6년을 동고동락하며 자신의 많은 것을 구성한 친구들 사이에서? 감히 누구를 뒤로 밀어낼 수 있지? 감히 누구를 두 번째라고 칭할 수 있지?

─……그냥. 허무의 바다 복구 이후에도 삼켜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좀 마음에 걸려서.

안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동시에 기대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기대할수록 실망은 커진다. 더 이상의 낙담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더는 환부를 열어 들여다볼 자신조차 없었다.

─만약 네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세이지라면 잘 견디고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 그런 곳에 자신이 갔다면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자아가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만약 이능력이 사라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아?

태평하게 약국 같은 소리를 했지만, 사실은 안다. 통로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 세상이 아닌 이상…… 자신은 능력의 상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야 그렇잖아? 내가 너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에 보이는 상처를, 물리적인 손상을 수복하는 것뿐인데.

그런데,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면…….

* * *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끊어졌다’고.

나무에서 떨어질 뻔한 누나를, 엉망이 된 그 손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던 날부터 늘 자신의 곁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었던 탓에 '연결돼 있다'는 것마저 눈치채지 못했던 무언가가.

그것은 세이지의 ‘막내 백조’였다.

아메모리 세이지 물에 힘을 싣는 것은 숨을 쉬듯 당연히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 타인에게 원리를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면 이루어졌다. 이 물에 치유의 힘이 깃들기 원한다고 생각하면 힘이 깃든다.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면 오래 머문다. 조금 더 강한 힘이 실리길 바란다고 생각하면 더 강한 힘이 실린다. 지식을 넓히고 그에 따라 더 세세한 목표와 소망을 설정하면 능력은 당연하다는 듯 이를 따라 주었다. 정말로 손발을 움직이듯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당연하게 해낼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러니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호흡 기관이 사라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늘 자신을 붙잡아 주던 닻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끊어진 그것이 당장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걱정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가라앉았던 표정을 애써 평소의 미소로 덮고 괜찮다고 답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으므로.

그렇게 걷던 도중, 무심코 ‘허무의 바다’로 시선이 향한 순간.

끊임없이 해체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그 혼돈 속에서, 그 지옥에서 헤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누, 나……?"

자신을 잡아채 뒤로 보내는 손길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자신이 그곳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이렇게…… 이렇게 가장 무력한 상태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보고 싶지는 않았어…….

다시 한번,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이번에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과연 상대에게도 괜찮게 들렸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 * *

다시, 아트라하시스에서의 아침.

세이지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 개의 ‘허무의 바다’가 위치한 곳이 표시된 지도에서, 두 곳에는 크게 X 표시가 그어졌다. 그중 하나는 어젯밤 아샤와 이어진 ‘연결’을 끊은 뒤 그린 것이다.

남은 것은 런던과 상하이, 두 곳뿐.

‘허무의 바다’의 면적만큼 새까맣게 칠해진 동그라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제 보았던 것들을 떠올린다. 느꼈던 것을 떠올린다. 잊은 줄 알았으나 다시 발목을 넘어, 무릎을 넘어, 목끝까지 차오른 무력감을 자각한다.

툭, 내던지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가깝네, 허무.”

아메모리 세이지는 비로소 인정했다.

휘몰아치는 폭풍이 아닌, 난폭한 지진도 아닌, 난데없는 벼락도 아닌, 그저 파도조차 되지 못한 물결처럼 잔잔하게 차오르며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

이게 나의 절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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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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