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森清慈

5. ‘아메모리 세이지’라는 인간에 관하여

아메모리 세이지

2029년 8월, ‘로스트 카노푸스’.

2029년 10월, 본격적인 대외 활동 시작.

졸업 직후 ‘라비린스의 통로’에 소속되어 2030년 2월, ‘판테온’의 초기 멤버로서 승선.

같은 해 12월, ‘사라예보 게이트’ 현장에 파견.

2032년 8월, ‘로스트 카노푸스’의 희생자 네 명의 공식 사망 처리.

2032년 12월, 연락이 두절된 카시하라 나오를 찾아감.

2033년 1월, 산과 ‘판테온’에서 재회.

2033년 여름, 판테온에서 정식으로 하선하여 일반 ‘통로’ 요원으로 전향.

이후 레이니르 마그누손, 모하은, 은마리 등 동기들을 최대한 도우려 노력하며 ‘현자’라는 이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외 활동 시작.


열두 살 정도에 이미 어느 정도 자아가 확립되었던 아메모리 세이지란 본래 어떤 인간인가.

장점을 꼽자면 선량하고 순진했다. 단점을 꼽자면 자신감이 부족했고, 그 탓에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했으며, 타인의 영향을 받기 쉬웠다.

운 좋게도 어린 아메모리 세이지의 주변에는 선량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백지 같은 자아에도 그들을 닮은 선량함이 먼저 새겨졌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누군가에게 누나와 비교를 당하며 자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메모리 세이지라는 인간의 정서는, 그 차이를 모르는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도 못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을 찾는다면 누나 같은 사람이겠지. 밝고, 씩씩하고, 사교적이고, 용감하고, 모두의 주목을 모으고, 그런 것들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는…….

그래, 소심하고 겁쟁이인…… 조연에 불과할 나와는 달리.

그 생각이 정답이라도 된다는 듯, 아리아드네로서의 능력 역시 조연의 ‘이야기’를 부여받았다.

그러니 혹시라도 카노푸스에서 만난 동기들이 아니었다면, 그 만남에서 얻은 관계나 경험이 없었다면. 혹은 그 형태가 달랐다면. 자신보다 훨씬 빛나는 누나를 둔,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누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휩쓸리기 쉬운 아메모리 세이지는…… 열등감에 잡아먹혀 절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이지에게는 단단한 인연이, 그들과 함께한 경험이, 그때 받았던 말들이 있다.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그 자아가 희박한 세이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게 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성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차분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본질은 본질인지라.

과한 자기 비하가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이지는 자신을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나보다 나은 누군가라면 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을 완전히 그만두지도 못한다.

너무나 타인의 영향을 받기 쉬우면서도 한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자아.

결국 그것이 아메모리 세이지라는 인간의 본바탕이었다.

* * *

세이지는 자신의 능력이 전투 현장에서 가장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치유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미리 예비하여 비축분을 마련할 수 있으며, 물을 매개로 한다는 조건도 생각보다 지키기 어렵지 않다. 심지어 에이도스의 힘을 빌리면 그 제약마저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치유 능력은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스스로의 몸을 지켜야 하는 현장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아카데미에서 그랬듯이.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세이지는 다양한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도왔다. 그들 중 누군가는 세이지가 없었다면 목숨을 달리하거나, 평생 후유증을 떠안고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세이지는 ‘라비린스의 통로’에 들어온 것을, ‘판테온’에 승선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절하지만은 않은 세상은 이번에도 숨 가쁘게 변해 갔다.

아리아드네를 대하는 여론의 방향성이 크게 들썩였다. 누군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누군가는 소중한 이와의 이별을 겪었다. 누군가는 드디어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2032년 8월, 네 실종자의 공식 사망 처리 이후 모두의 ‘일상’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잠적한 아이나와의 연락이 어려워졌다. 어느샌가 산과도 소식을 주고받기 어려워졌고, 나오는 갑자기 활동 양상을 바꿨다. 레이니르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12월에 접어들어서는 기어코 활발하게 안부를 주고받던 나오의 연락마저 거짓말처럼 끊겼다.

* * *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세이지는 나오의 본가를 방문했다. 약속도 잡지 않았고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무조건 찾아가 오늘 나오와 만나기로 이야기했다는 거짓말로 밀어붙였다. 아마 자신이 이렇게까지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이번 한 번만 쓸 수 있는 반칙이리라 생각하며.

그렇게 간신히 만난 나오는 만신창이 상태였다.

“……나오, 너…….”

당황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입을 몇 번이고 달싹였다. 간신히 나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세이지는 황급히 늘 가지고 다니던 가방에서 ‘물’을 꺼내며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아니, 일단 치료부터 하자. 늘 챙기고 다니던 것도 있으니까…….”

“아니, 세이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명백한 거절.

“치료는 됐어.”

“……뭐?”

급하게 가방을 뒤지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물어도 상대의 의사는 확고했다.

치료 거부.

대답하는 나오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지만, 세이지에게는 그 얼굴에서 섬세한 감정을 읽어 낼 여력이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심장은 까마득한 어딘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히 손이 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인데, 그마저도 할 수 없으면…… 나는…….

“……내가…… 대체 널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뭐야……?”

잠시 말이 없던 나오는, 숙부에게 자신은 괜찮다는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다. 세이지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알겠다고 답한 뒤 자리를 떠났다. 꺼내려다 만 물병 하나를 떨어뜨린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 * *

연락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산과 다시 만난 곳은 ‘판테온’이었다. 당연하게도 의료 기관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던 세이지는 산이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실은 그 자체로 아메모리 세이지의 절망 중 하나가 되었다.

의료반 소속이었음에도, 그 대단한 34기라 불림에도, 세이지가 산을 도울 방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못했다. 세이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산을 지탱해 줄 ‘일상’을 조금이라도 늘리려 애쓰는 것. 그저 말 상대가 되는 것.

마냥 곁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거나, 함께 울거나. ‘블루 크리스마스’ 직후 몰아치는 사건들 앞에서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느꼈던, 잘 안다고 생각했던 무력감이 다시 한번 세이지에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은마리의 소식 역시 한 발 뒤늦게 접했다. 혼자서 게이트를 상대했고, 결국 가장 구하고 싶었던 사람을 구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시 만난 마리는 졸업 이후 어렴풋이 느껴지던 위화감이 한층 더 뚜렷해져 있었다.

망가진 통각 체계는 세이지의 능력으로도 고칠 수 없었다. 무너진 채 멈춰서 있기를 택한 마리의 정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상처는 치료할 수 있다. 독이라면 쫓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간은 때로 숨이 붙어 있다 해서 끝이 아니기에 인간이다. 그리고 세이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직 떠나지 않은 숨을 간신히 붙여 놓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마저도 타이밍을 놓치면, 손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중한 이들에게, 혼자서 견디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동안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했나. 자리를 지키는 것 정도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치유 능력을 가진 아리아드네야, 34기에서는 드물었지만 그 바깥에서 찾자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공중 함선에 탑승했나.

그리고 결국, 산과의 재회로부터 약 반년 뒤.

세이지는 ‘판테온’에서 내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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