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森清慈

4. 좋아하는 색

아메모리 세이지

"세이지, 날 축복해줘."

딜리에헤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다.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는 한 문장이었다. 세이지는 고민했다. 어떤 응원이, 어떤 축복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친구에게 가장 든든한 힘이 될까. 어떤 방법이 가장 이 친구를 기쁘게 할까. 세이지는 새해를 맞이해서, 혹은 어딘가에 여행을 가게 돼서 방문한 신사에서 보곤 하던 부적을 떠올렸다. 자신의 모국어로 '오마모리'라고 부르던 것이.

"……내가 부적을 만들어 줘도 될까, 딜리?"

나바호족의 주술사에게 아무 족보 없는 민간인이 부적을 만들어 준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소리인지, 세이지 본인이 깨닫게 되는 건 꽤 먼 미래의 일이었다.

* * *

아메모리 시이카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늘 그랬듯이 활짝 웃는 얼굴로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소식을 듣고는 한참 동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동기들이 몇 번이나 물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처음에는 반사적으로 어물쩡 피하려다가도, 두세 번 묻거나 '누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애써 세운 웃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몇 번을 울었는지 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하가 물었다.

"……지금 당장 하고 싶거나 한 건 있어?"

그 질문에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딜리에헤가 자신은 언젠가 그 '문' 너머로 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날부터 느끼던 술렁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언젠가 누나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세이지,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아.

안다. 이미, 너무 잘 안다. 자신이 아무리 울어도 죽은 사람은 되살리지 못한다. 불치병을 무찌르지는 못한다. 마음의 상처에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아리아드네의 힘이 당연하다는 듯 앗아 가는 친구들의 기억도 붙잡지 못한다.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것들로만 만들어졌다면, 이렇게 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할 리가 없다.

그럼 대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흐르는 피를 멎게 하고, 몸을 잠식하는 독을 몰아내고, 이러한 일들이 결국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살아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날, 누나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다면 과연 기뻐했을까?

아니.

자신이 아는 아메모리 시이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코앞에서 구하지 못했음을 두고두고 후회했으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떠오른 것은 딜리에헤에게 만들어 주기로 했던 부적이었다.

세이지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제대로 인지하기 전에 어설프게 물었다.

"……서하는…… 보라색 말고도 좋아하는 색 있어……?"

"……?"

물론 불쌍한 서하만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해야 했다. 잘라먹은 앞뒤를 뒤늦게 설명하기야 했지만…….

* * *

"산은, 특별히 좋아하는 색 있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옥색이려나……. 그건 왜 물어보니?"

"음…… 동기 모두한테, 부적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안전을 기원하는 부적인데……."

좋아하는 색으로 받으면 더 좋아해 주지 않을까, 라는 말을 덧붙이자 산이 차분히 되물었다.

"부적을…… 나한테 말이니?"

그제야 세이지는 이 상황이 얼마나 황당한지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당한테 부적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 건가? 일본에서야 민간인 끼리도 응원의 의미로 만들곤 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황급히 효력이 없을 건 알지만 기념품처럼 생각하고 받아 줬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이자, 잠시 이야기를 듣던 산은 반지 하나를 빼내 에이도스의 힘으로 그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이걸 조금씩 나눠 넣으렴, 이라고 덧붙이며.

당연하게도, 아메모리 세이지는 이때까지도 자신이 딜리에헤에게 부적을 만들어 주기로 한 게 지금만큼이나 우스운 구도였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 * *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보라색, 하얀색, 옥색, 갖은 색의 천을 바느질했다. 매듭도 다양한 색으로 묶었다.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한없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었다. 산에게 말하기 전 완성품을 건네 버린 딜리에게는 전하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 몫의 부적에는 산이 준 옥 가루를 똑같이 나누어 담았다. 물론 산에게 줄 부적에도.

산의 힘이 담긴 것이니 소용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원래부터 아무런 힘도 실리지 않은 천 조각을 줄 예정이었는데 거기에 친구의 힘이 조금 더해졌을 뿐이지 않나. 그러니 이것은 산에게도 똑같이 주어야 마땅했다.

주머니처럼 생긴 오마모리의 내용물은 나무, 혹은 나무로 만들어진 종이. 그래서 종이에 직접 글씨를 썼다. 쓰다 보니 한 명 한 명에게 쓰는 편지가 되었다. 쓰다 보니 민망해서, 한자를 전부 빼고 히라가나로만 썼다. 이렇게 하면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은 읽기 어려울 테고, 일본인인 나오와 슌스이는 열어 버리면 효혐이 사라진다는 기원을 아니 굳이 열어 보지 않겠지.

적지 않은 횟수를 손을 다쳐 가면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티가 나지 않은 것은 평소 틈틈이 만들어 둔 '물' 덕분이었다. 바늘에 조금 찔린 상처 정도야 한 방울이면 금방 아물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쓰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부적 하나는 던지듯 전달해야 했어도, 무사히 동기 전원 몫의 부적을 만들어 전할 수 있었다. 기꺼이 받아 주는 손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중 한 명은 조금 독특한 문구를 요청했지만, 그 역시 제대로 반영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 몫의 부적을 만들었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만드는 부적이라니,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모두의 몫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어서 규칙도 목표도 없는 천을 완성했다. 그걸 또 도안에 맞춰 자르고 바느질했다. 결과적으로 무슨 색인지도 모를 알록달록한 주머니가 완성됐다.

세이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 겉면에도 마찬가지로 '安全御守'라고 적었다. 안전安全을 기원하는 부적御守, 혹은 안전과 수호守라는 의미로. 안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백지를 넣었다. 이미 옥 가루는 다 써 버렸기에 내용물은 그뿐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찾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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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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