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 인어
4회차, 소란 님
이 글에 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을보았기 때문에.
쩍벌린 입, 달팽이의 식도처럼 무수한 이빨
마지막 민물인어는 우리 할아버지가 쓴 조총에
맞아 죽어버렸어
그때 죽은 닭이 깨버린 거야. 퍼드득 하고
그리고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있어준
고래 사체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민물은 결국 바다로 가기 마련인데
민물 인어는 거기서도 살 수 있을까
고래의 사체를 먹어본 사람이 말해줬다
민물인어, 너를 사랑하지만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래에게서는 비린 맛이났대
네가 다시 되살아나고 되죽어서 어느 새벽
수닭이 우는 소리와함께 여태 있어왔던
무수한 고래들처럼 해변으로 밀려오기를
우리는 비린 고래를 먹고
수탉의 목을 비틀어 죽일테지
할아버지의 조총은 늘 초침이 6초 느린
궤종시계 앞에세워져 있어
아-
저기를 봐,
벌써 수닭이부활한다.
딸깍, 조총에서 그런 소리가 나고
이글에 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을 보았기 때문에.
쩍 벌린 입, 달팽이의 식도처럼 무수한 이빨
사랑하지만 존재 하지 않는 너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머리를 물어뜬는 상상을 수없이 많이 했다
내 축축한 머리가 네 이빨에 촘촘히 스며들어
함께 비린내가 났으면 했어
나도 이제는 밀려온 고래의 사체를 파먹는 사람
고래 지느러미는 미끄럽고 퍼덕인다
어느 밤 어느 집 어느 수탉인가 소리를 내어 물고
조총의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제는 내게 오지 않는 너를 상상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네가 해변으로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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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수집하는 나비
시의 배열이 신기하다는 게 처음의 감상이었어요!! '입을보았기' '맛이났대' '앞에세워져' '수탉이부활한다' 같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신 건 의도하신 걸까요? 또 중간중간 들어간 . 에도 어떠한 의도가 있었을지, 아니었을지 궁금했답니다! '익숙해진 / 사람들' '존재하지 / 않는다고' 같은 배열은 재미있게 느껴져요 중간에 흐름이 뚝 끊기면서 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꺾임'의 감성을 한 층 더 돋보이게 하고 있어요 화자가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글의 제목인 민물 인어 자체도 모순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어가 어떻게 민물에서 살고 팔리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인과 어라는 한자 자체도 서로 대비 되는데 말이지요 재미있는 시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HBD 창작자
소란 님께서 저희에게 공개해 주시는 첫 작품이지요. 처음 받았을 때 이만큼이나 잘 쓰시는 분을 모셔왔다니~ 무척이나 뿌듯했답니다. 제가 헤인 님의 글에는 가사 같다는 피드백을 썼는데, 소란 님의 이번 글은 어쩐지 독립 영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대단한 이론과 논리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어쩐지 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립영화의 장면이 떠올라서요. 공교롭게도 이번에 두 분께서 비슷한 심상으로 글을 쓰셨는데 느껴지는 감각은 이렇게 다르다는 게 신기하지요. 사체를 먹어 본 사람은 왜 민물 인어를 사랑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걸까요? 자신이 죽여버렸기 때문일까요? 이 글에서 인어와 고래들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의문이 많이 남는데, 이건 뜬금없고 맥락이 없어서 산발적으로 퍼지는 질문이 아니고요. 읽는 사람의 흥미를 끄는 좋은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묘미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소란 님의 이번 시는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초침이 6초 느린 시계 앞의 조총이라는 표현도 정말 좋았구요. 때로 이유 없이 마음을 때리는 표현이 있지 않나요? 저는 이번에 이 조총이 그랬던 것 같아요. 시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 문장은 아닌데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다만 인어-고래-수탉-조총 이 네 가지에 글이 갇혀 맴돌고 있다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이건 나쁘다 내지는 못 썼다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니라, 화자가 조금 편협한 태도로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감상이에요. 자신 안에 갇힌 말을 자꾸만 되뇌이는 이미지를 의도하셨다면 성공적이었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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