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누각

4회차, 헤인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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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참으면 눈꺼풀에 아가미가 생긴다

우는 법을 막 배운 내게 들이닥치는

꿈의 알갱이

한 사람을 응시하는 두 눈이

각기 다른 소용돌이로 물결칠 때

흰진범의 향기

톱니 이빨

조각난 소라 고동 소리

깨진 마음을 주우며

기필코 일기장의 모서리를 접지 말아야지

너의 흔적이 커튼콜처럼 펼쳐지는

말미암은 수심

너는 파란 수국을 심어 한낮의 기도가 떠오를 때마다 한 잎씩 뜯어 내고 싶다고 말했다

격자무늬 바닥을 가로지르는 작은 숨이

소금의 맛으로 알뜰하게 고여

너조차 넘어서지 못한 바닥 위로 차곡차곡 쌓인다

끝은 없을 거야

무한히 펼쳐지는 바닥

우리 함께 무결한 뺨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투신하는 꿈

영영 떨어지며 영영 아름다울 두 추락 마니아

눈이 부셔

입을 맞출까

선명해질수록 살을 가르는 믿음이

믿음을 관통하고 균형을 잃는 전망대

치사량의 일렁임으로 환해지고 있어

팔 안쪽에 너무도 많은 심해를 키웠다

포옹을 할수록

귓바퀴가 떨어져 나와

우리를 굴절시키는 것 같아

눈이 멀고 귀가 멀어 허우적거리는 게 아닌데

우리의 마음이

이만큼 멀어서

투명한 비늘을 입었다는 것

물의 색으로 구조될 수도 있고

깎여 나가도 알아채는 이 없을

외로운

물비늘을 너와

공유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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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2


  • 수집하는 나비

    이번 시가 정말 아름답네요…… 헤인 님은 헤인 님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는 데에 탁월한 감각이 있으신 것 같아요 추락 마니아라는 단어가 좋아요 진짜 따로 시집을 받아보고 싶은 기분이에요오오

  • HBD 창작자

    1연부터 4연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읽고 좋아서 내려놓고 다시 읽고 좋아서 다시 잃고 내려놓고 하느라(ㅋㅋㅠㅠ) 피드백까지 시간이 좀 걸렸네요. 제가 헤인 님께 늘 드렸던 피드백은 <문장은 무척 좋은데 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요>였는데요, 이번엔 훌륭하게 타파하신 것 같아요. 어떤 물이라는 매개이자 공간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그런 건지 몰라도 확실히 그려지는 심상이 있네요. 1회차엔 막연히 사슴이 나오는 잿빛 숲을 상상했는데, 그때와는 상상의 밀도가 다른 것 같아요. 특히나 초반은 인디 밴드의 가사 같기도 하고요. 빈말하는 게 아니라 누가 이 시 들고 가서 음악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픽한 오늘의 문장은! <꿈의 알갱이 / 치사량의 일렁임으로 환해지고 있어> 입니다. 너무 좋아서 하나만 고를 수 없었어요… 1~3회차의 시보다도 많이 유한 느낌이 듭니다. ~어, 하는 구어체 말투를 많이 쓰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화자가 한결 독기가 빠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헤인 님께서 쓰시는 문장을 정말 정말 좋아한답니다. 어떻게 이런 심상을 떠오르셨는지, 어떻게 이런 맥락을 연결하고 연결해서 작품을 완성하셨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요. 다음번에는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짧게 사담 남겨주시면 무척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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