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커플링

[구다오+마르타] 영원이란

FGO 후지마루 리츠카(남)+마르타(룰러) 논커플링 글

2020.05.09 포스타입 게재했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칼데아 서머 메모리~치유의 화이트 비치~/칼데아 히트 오디세이~진화의 시빌라이제이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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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여기 영원히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소년은 속삭였다. 목소리는 파도의 포말처럼 사그라들었다.

환한 달빛이 해수면에 바스러져 일렁거리는 밤, 마르타는 일과인 기도를 마치고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마력으로 짜인 서번트의 육체에는 피로가 쌓이지 않으나, 생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정신은 살아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식사나 휴식, 놀이나 여가 따위를 바란다. 주님의 종으로서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마르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부활’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그래도 마르타는 이것을 나름대로 ‘삶’이라고 생각했다.)을 온전히 기껍게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충실하게 따르기 위해 스스로 여유를 허락했다.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서번트도 각자 생각은 다르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는지, 낮에는 그리도 시끌벅적하던 섬도 밤에는 고요했다. 풀벌레 소리와 파도 소리, 이따금 먼 숲속에서 꼬마 멧돼지가 우는 소리 따위만이 간간이 들릴 뿐이다. 마르타는 이 불완전한 적막이 좋았다. 홀로 완전한 것은 오로지 주 하나님 단 한 분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물론 마르타 자신도 포함하여) 어딘가가 모자라서,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여러 상황에서 새삼스레 깨달을 때마다 마르타는 불완전한 자신이 부끄러운 만큼 벅차게 기뻤다. 아직도 자신에게는 나아갈 곳이 있고, 다른 사람을 돕는 만큼 그들에게서 도움받을 수 있다. 한 번의 삶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역시 주님의 인도하심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르타가 적막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새로운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모래를 밟을 때 들리는 바작거리는 소리였다.

네발 달린 짐승의 소리와는 다르다. 자박, 자박, 어딘지 힘없고, 정처 역시 없는 듯한 발소리는 분명히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마스터다. 그러한 근거 없는 확신이 든 마르타는 말없이 일어나 발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해변 저쪽에는 소년이 멍하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시나요? 잘 때가 지났어요.”

“아…… 마르타는 안 자?”

“쉬다가 발소리가 들려서 따라와 봤어요. 그래서, 뭐야? 한밤에 혼자 걸어 다니면 위험하단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잖아.”

이크, 실수했다. 마르타는 내심 켕기는 마음을 꾹 눌렀다. 이상하게도 이 소년 앞에서는 조금만 긴장을 놓아도 자꾸만 말투가 거칠어진다. 아무래도 생전 보살폈던 동생이 생각나는 탓인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좋지 않다. 친근한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동생 같다고 해도 그는 동생이 아니다. 알맞은 거리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관계는 금방 엉망이 되어 버린다.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는 사이 소년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사과했다.

“미안…… 그게, 왠지 잠이 안 와서. 산책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하고.”

“잠이 안 온다고? ……별일이네요.”

마르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의 기면증에 가까운 수면벽은 서번트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 사실이다. 아무 데서나 잘 자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이따금 선 채로 잠든 모습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그가 잠을 못 잔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은 손쉽게 도출되었다. 마르타는 해이해진 마음을 단단히 붙들며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년은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아냐, 아냐. 그냥 좀… 싱숭생숭해서? 라고 해야 하나.”

“아아…… 내일 떠나는 것 때문에 그래요?”

“으응. 그런가 봐.”

“그럴 만도 하죠. 다 같이 열심히 개척했으니까 정이 안 들 수가 없잖아.”

마르타는 미소지었다. 작은 집에서 시작한 개척이 우물이며 밭 개간으로도 모자라 성과 거대한 동상으로까지 번졌다. 다양한 의견이 반영된 탓에 건축물 사이에서 통일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이 중구난방이었지만, 그래도 마르타는 이곳이 좋았다. 의견을 낸 모두의 개성과, 그것을 선택한 마스터의 마음 씀씀이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힘들긴 해도, 즐거웠지?”

“아, 응. 즐거웠어. 어쩐지 휴가 온 거 같은 기분도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표정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만족감은 쉽게 미련으로 바뀐다. 스스로 이룩한 것을 두고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쉽기 마련이다. 물론 주님의 신실한 종인 마르타는 언젠가 올 구원과 그 후에 있을 영원한 삶을 믿기에 남들보다는 집착이 적은 편이지만(그럼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아무 미련조차 가지지 않았다면 서번트로 소환되는 일도 없었겠지.) 마스터에게 그런 마음가짐을 종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소년이 중얼거렸다.

“여기 있으니까 꼭……. 인리 소각 같은 건 다 거짓말처럼 느껴져.”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스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한가운데에는 보지 않으려 해도 시야에 들어오고야 마는,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진실이 공허하게 자리하고 있다. 올해가 끝나는 그 순간에 이 세상은, 인간이 세운 모든 이치는 소각되고 만다고.

“내가 정말로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어느 새 소년의 시선은 수평선을 향해 있었다. 이것은 답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사소한 푸념. 매일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자의, 미처 억누르지 못하고 삐져나온 작은 불안감 한 조각.

어떤 답을 내놓건 소년에게는 그마저도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마르타는 입을 여는 대신 함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먼바다는 어떤 거친 파랑이나 폭풍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잔잔하게만 보였다.

“차라리 여기 영원히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소년이 속삭였다. 그냥 다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지내다가 끝나는 줄도 모르고 끝나버리는 거야. 목소리는 파도의 포말처럼 사그라들었다.

˙˙˙

“그런 소리도 했지만, 역시 영원한 건 없네.”

마스터는 멋쩍은 듯 웃었다. 미련을 두고 떠났던 섬에 다시 도착하게 된 것만으로도 예상 밖이건만,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모할 줄이야. 섬과 배 사이의 시간이 각기 다르게 흘러갔다는 영문 모를 사태만 해도 이미 마르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훌쩍 지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소년의 목소리에는 허탈함과 동시에 어딘지 모를 후련함이 담겨 있어, 마르타는 그저 그것만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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