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무텐

프롤로그

암흑은 신의 부재

사냥팀 일행은 제각기 모여 3미터는 되는 거대한 짐승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 인원 중 하나인 신입 헨리는 숨을 고르려고 잠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어둡고 서늘한 불모지 저 너머에서 무언가 반짝인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피비린내와 짐승의 체모가 공기 중을 떠돌았다. 해체 작업이 거의 끝나간다. 선배 한 명이 다가와 수고했다는 듯 헨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 건 끝났네.”

“그러게요.”

땀을 닦았다. 이 짐승과 대치한 순간이 떠올랐다. 모래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이동 중인 사냥팀 일행을 습격했다. 하지만 이 정도 일은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노련한 사냥꾼들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하고, 녀석에게 반격하며 나머지 인원들을 지휘했다.

그 후로는 별문제 없이 사냥꾼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당연한 결과였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만 해도 사냥꾼 일을 해 온 지 3년이 되어간다고 한다. 그는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라는 태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인류가 어둠과 괴물들을 피해 지하 도시에 숨어든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외부 활동을 해서 지하 도시에 자원을 가져가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헨리 또한 그렇게 인류를 유지하는 일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경력으로 따지면 신입인데도 벌써 이런 큰 사냥감을 잡게 되었으니.

그는 불야성 사냥팀 소속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부모님 또한 그가 사냥꾼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 눈물까지 흘렸다. 주변 친구들은 자신을 부러워한다. 내심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

“네!”

대장의 외침에 헨리를 포함한 사냥꾼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외부는 위험하기에 바깥에서 구한 것을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이 구역은 불야성으로부터 꽤 가까운 곳이다. 차량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트여 있고,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것도 적대적인 생명체를 빼면 없다. 그것들조차도 사냥꾼들 앞에서는 별것 아니다.

아까 잡은 짐승의 쓸 수 없는 장기들은 파인 구덩이 속에 내던져져 있었다. 이건 이제 다른 약한 생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혹은 간사한 스캐빈저 무리의 한 끼가 될 수도 있고.

헨리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수송 트럭 뒷좌석에 올라탔다. 동료들도 각자 무어라 떠들며 몸을 실었다.

“어이. 돌아가면 한잔하자.”

“어차피 다 같이 마시게 될 텐데 뭘. 아까 거하게 넘어졌던데 좀 괜찮아?”

“부끄럽게 뭘 그런 걸 또 기억하고 있어.”

동료가 등을 퍽 치며 건넨 말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단순한 실수였을 뿐이다.

“잡은 걸 보면 딸이 기뻐하겠어.”

“부럽다. 난 언제 결혼하지.”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크면 같은 일을 하겠다고 늘 말하지.”

동료의 딸 자랑은 계속 이어졌다. 헨리도 생각했다. 돌아가면 이번 사냥 이야기를 부모님께 해 드려야지. 그러면 이번에도 아주 기뻐하실 거다. 이대로만 잘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베테랑이 될 테고,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이 헨리를 보며 동경의 눈빛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듯이, 영웅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상상이었다.

다른 선배도 말을 걸어왔다.

“자네가 지금 몇 살이더라.”

“이제 스물넷입니다.”

“젊구먼. 우리 딸이랑 만나볼 생각 없나? 자네처럼 건실한 사람이면 믿을 수 있지.”

그 말을 듣고 옆의 동료가 거들었다.

“오. 잘 되면 좋겠네.”

“그만해, 그만. 부끄러우니까.”

수다를 떠는 사이 남은 한 인원이 트럭에 올라타고 모두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그때 뭔가 크게 철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수조에서 물이 넘치는 듯한 소리.

헨리는 호기심에 밖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른 쪽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저 너머에 희미한 빛이 아주 작게 보이는 듯했다.

“뭐야. 짐이라도 떨어졌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잘못 들은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옆에 앉아 있던 선배의 한마디에 헨리는 문을 열고 다시 땅에 발을 디뎠다.

여전히 비릿한 피 냄새가 은은하게 떠다니고 있다.

뒤의 짐칸을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떨어진 것은 없는데 그런 큰 소리가 나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러면 소리의 근원지는 아까 그 이상한 빛이 보인 곳인가? 괜히 아까 보았던 정체불명의 반짝임이 생각나 오싹해졌다.

별일 없으니 다시 출발하자고 말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모자 아래 머리카락들이 뺨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수송 트럭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깔끔하게 찌그러지고 부서졌다.

트럭이었던 것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종잇장처럼 접혀, 처음에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변모했다. 잔해 사이로 붉고 찐득한 무언가가 새어 나왔다.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은 벌어졌고, 자리에 남은 사냥꾼은 헨리뿐이다.

그는 멍하니 잔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푸른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한가하게 관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애초에 움직이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살해당한다. 틀림없이 죽는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성인 남성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몸집이다. 네 발로 땅을 지탱하고 있다가, 두 발로 일어선다. 머리를 제외한 부분에 모두 단단해 보이는 껍데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틈에서 살점 같은 것들이 제각기 의지가 있는 듯이, 뚫고 나오려는 듯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트럭이라는 엄폐물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한순간에 저렇게 되었는데 저걸 맨몸으로 상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바로 옆에 압사한 시체들이 있다는 사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구역질할 여유도 없다.

“—”

녀석의 입에서 무언가 언어 비슷한 것이 흘러나온다. 거리가 멀어 잘 알아듣기는 힘들다. 그러다가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돌린다. 푸른 빛이 도는 시선이 헨리를 분명히 향하고 있다.

아까처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네 발로 웅크린 후에, 징그러운 뒷다리를 땅에 질질 끌다시피 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공포로 얼어붙은 헨리의 몸을 지나, 트럭 위에 선다.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괴물은 주둥이를 트럭 잔해에 묻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하더니, 아까 해체하여 넣은 짐승의 고기를 물고 잡아끌어 꺼냈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보니 그 모습이 더욱 소름 끼쳤다.

지금이 아니면 도망갈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헨리는 발을 억지로 잡아끌듯이 하며 조금씩 뒤로 움직였다. 다행히 녀석은 꽤 굶주렸던 모양인지 이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숨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멀어졌다. 얼마나 가야 안전할까? 저게 나를 잡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채일 터다. 도와줄 사람은 여기에 없다.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곤란한 일이 있어요?”

이런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렸다. 헨리와 괴물은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작은 체구의 ‘사람’이 걸어 나왔다. 목소리와 키를 보면 틀림없는 어린아이다.

여기에 어린애가 있다고? 하지만 위험하니 도망치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할 수 없다. 소리를 내는 순간 저것이 다시 자신을 바라볼까 두려웠다.

검집에서 칼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된 광원이 없는 탓에 얼굴이 가려진 소녀의 그림자만 보였다. 아까 그것을 끝으로 더는 말하지 않아 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기묘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괴물과 작은 소녀가 대치하는 모습은.

괴물이 먼저 귀가 찢어질 듯한 불쾌한 소리를 내며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바람 소리가 났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상황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소녀는 괴물의 위에 올라타 서 있었다. 검은 등으로 보이는 부분에 찔러 넣어져 있다. 괴물이 몸을 크게 돌리며 방해물을 떨쳐내려 했다.

소녀는 가벼운 동작으로 검을 다시 뽑아내고, 괴물의 몸을 발판 삼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공격을 피했다.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하기도 힘들다. 소녀는 괴물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는 것처럼 여유롭게 행동했다. 뒤에서 날아드는 꼬리는 뒤도 보지 않고 몸을 비틀어 피했다.

바람 소리와 허공을 가르는 잡음이 계속 들려왔다.

주둥이를 크게 벌려 물어뜯으려 한 괴물의 회심의 일격조차 실패로 돌아갔다. 소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괴물의 목은 저항 없이 잘려 나갔다.

목은 바닥에 떨어져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손질되는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단단해 보이던 몸통은 널브러진 채로 괴로움에 마구 몸부림치고 있다. 통증인 것을 아는 모양이다.

절단면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기름의 표면에 뜬 색처럼 기묘한 색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그 모습을 내려보다가 껍데기 틈 사이로 칼을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은 몸도 머리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헨리는 한참 동안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저 아이는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뭐라도 말해야 했다.

“저기… 너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이건 또 생뚱맞은 대답이다. 그래도 지금은 더 캐물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확실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뿌예진 시야 속에 트럭 잔해와 괴물의 시체가 들어찼다. 이제야 눈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함께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이 모두 죽었다. 이 정도면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 구역에서.

“부탁이 있는데….”

“네.”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괴물의 머리를 발로 툭, 툭 걷어차며 대답했다.

“…무덤을 만드는 걸 도와줄 수 있어? 저 아래에 내 동료들이 있거든.”

울먹이는 소리에 겹쳐, 말하는 사람도 무어라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소녀는 알겠다는 듯이 단숨에 몇 걸음 다가와서는, 헨리의 손을 강하게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켰다.

“늦어서 미안해요.”

“….”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따끔하다. 자신이 강했더라면, 눈치가 좀 더 좋았다면. 이변을 미리 눈치채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생각보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괴물의 머리가 그렇다고 헨리에게 답하는 것만 같았다.

소녀는 트럭 쪽으로 다가갔다. 조그마한 체구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힘으로 잔해를 하나씩 들어내고 있다. 헨리는 모자를 벗고, 거칠거칠한 옷소매로 눈 주위를 쓱 닦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다가가 시체를 거두는 일을 도왔다. 인식표가 보이면 피를 닦아내고 하나씩 주머니에 넣었다.

“너는… 탐험가야?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죠. 사정이 있어서 거의 혼자 다녀요.”

가까이서 보니 소녀는 생각보다 더 작아 보였다. 조그마한 손으로 삽을 들고 묵묵히 땅을 파내고 있다. 고개는 계속 바닥을 향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고마워.”

그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헨리는 제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다시 깨달았다. 동시에 지금의 삶을 지속하며 영웅을 꿈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눈앞에 서 있는 이 아이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던 영웅에 가깝다.

자신을 탐험가라고 말한 소녀는, 말끔하고 상처 없는 피부와는 대조되게 군데군데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헨리도 언젠가, 다른 이가 영웅이라고 느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처음 발견된 의문의 괴물에 의해 사냥팀 하나가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은 이야기로 불야성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헨리는 그 자극적인 이야기 속 자신을 구해준 작은 소녀에 대한 것도 알리고 싶었지만, 소녀는 본인을 언급하지 말아달라 부탁했었다.

목숨값으로 그 정도면 가볍다.

나중에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야성 게이트의 파수꾼 중 하나가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보지 못한지 한참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아이는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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