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유이] 포기하지 않아

[짧막한 연성 주제] http://me2.do/FxZxHgl5 진단 시리즈 - 아야유이 편 (2022-12-26)

당신은 아야유이(으)로 「포기하지 않아」(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진단은 아야유이인데 왠지 유이토와 미치루 중심이 되어버린

그렇지만 둘의 티키타카?를 좋아합니다 (오너인 제가)


 "미련한 놈. 미련하고 어리석은 놈."

 아마츠카 미치루는 츠카사 유이토라는,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후 머리 나사가 수십 개쯤 빠진 자신의 이종사촌을 한심스러워 했다.

 자신의 혈연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치는 정말로 크게 모자람 없는 -그놈의 사랑 타령은 제쳐둔다 치고- 훌륭한 연애며 결혼 상대였다. 허우대 멀쩡하고 얼굴 멀끔히 미남 소리 듣도록 생겼겠다, 출중한 경력이며 능력까지 갖췄겠다. 솔직히 지금 당장 누군갈 잡고 고백한다 쳐도 상대의 선택지는 무조건 승낙 아니면 보류일 텐데.

 "벌써 3년이다. 그 이를 처음 만난 세월부터 세어보면 6년이 되겠군. 네 나이가 어느덧 서른 둘인데, 이렇게 돌아올지 찾을 수 있을지조차 모를 이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니 내가 다 답답하구나."

 "너도 나와 비슷하지 않나, 미치루. 그리고 그녀와 나는 약혼을 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찾겠어."

 "나는 경우가 다르지. 나는 가내에서 정해준 상대와 정략혼을 하게 될 테니. 비록 지금 내가 가문을 등졌다 하나, 명문가 핏줄로서의 책임은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유이토. 너와 그 이가 한 것은 약혼도 뭣도 아니다."

 자기들끼리만 약혼이라고 합의를 보면 끝인 줄 아는가. 집안과 집안 사이에 말이 오가야 하거늘. 그보다 미치루가 보기에 저 치들, 츠카사 유이토와 아사히 아야메가 한 것은 약혼조차 아니었다. 오래도록 정만 쌓다가, 저 미련하고 어리석은 놈이 배려랍시고 하지 못한 고백을 여자 쪽에서 먼저 하고 종적을 감춰버린 것 아닌가.

 "이런이런, 미치루."

 "말투가 짜증난다."

 "내 심장에는 그녀가 남겨준 소중한 물건이 있다. 그녀가 오래도록 연구하고, 보완하던 중요한 결과물을 약혼 예물로써 나에게 맡긴 것이지. 약혼이란 본디 혼인하기로 약조하는 것. 그리고 그 약조가 시행되도록 담보가 되는 물건을 매개로 두었지. 이것이 약혼이 아니면 뭐겠나."

 미치루는 어깨를 으쓱이는 유이토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할 말이 정말 많았는데, 너무 많다보니 도리어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저 저, 궤변만 늘어놓을 줄 아는 놈. 쥘부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미치루는 그것을 휘두르는 대신 파라락! 펼쳐 제 입가를 가렸다. 무언가 불만스럽거나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나오는 몸짓이었다. 미치루는 녹색의 눈으로 유이토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몹시 예리한 칼날 같은 그 시선에 유이토가 어물쩍 미소 짓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날 걱정하는 그 마음은 알겠다, 미치루."

 "누가 네놈을 걱정한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다가 진심인지 모를 고백을 듣고, 몸 안에 위험한 물건이 심긴 채 기약 없는 재회를 기다리는 것…… 그래,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너는 속아 넘어갔고, 이용당한 것이라고. 더군다나 미치루 너는 그녀를… 아야메 씨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으니까."

 "……."

 "넌 내가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지?"

 미치루는 과거, 그들 모두가 어렸을 적을 잠시 떠올렸다. 갑자기 아마츠카 가에 머무르게 된 동년배의 소년. 그의 곁에 편을 들어줄 인물이라고는 없었더랬다. 그와 이어진 혈통은 외가였으니까. 훌륭한 안주인인 어머니의 얼굴을 보아 그 자매의 자식인 그를 잠시나마 머무르도록 해준 것이었지, 아마츠카 가는 언제나 그에게 선을 그었다. 기본적인 교육과 경제적인 지원은 해주되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고. 그 시절 유이토의 얼굴에 표정이라곤 없었다.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고, 언제나 주변의 모두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거리감을 유지했다.

 상처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영영 치유될 길 없을 것이다. 아마츠카 미치루는 그를 진정으로 가족으로 여겼으나, 은연중에 그를 동정했다. 또한 연민하고 가엾이 여겼다. 그는 어쩌면 영영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잊어버린 채 마른 찰흙처럼 위태로운 상태로 숨만 붙어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외가 쪽, 유이토의 가정에 있던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그가 다시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이탈리아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전해듣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기에 만나러 가본 그의 태도며 표정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래간만에 마주했던 이종사촌의 모습은 기억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있으니 그도 그랬으리라,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을 뿐.

 비록 사람을 대함에 있어 가슴을 갈라 보여줄 양 솔직하게 표현하게 됐다거나, 늘상 자신있는 웃음을 띄우고 있다거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도. 사실 은연중에 미치루는 유이토에게서 과거의 잔재를 엿보고 있었다.

 거부당하는 것이 두렵기에, 자신의 어둡거나 괴로운 면은 내비치지 않으려 하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기에, 상대의 면면과 성향을 살피며 선을 넘지 않을 만큼의 거리로만 다가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츠카사 유이토라는 인물이 마냥 긍정적이며 활력 있는 인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아마츠카 미치루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분명. 과거의 상처는 여직 치유되지 못했으리라고.

 그러던 와중에 그가 사랑에 빠졌다. 첫눈에 반했댄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심장이 심하게 뛰어 자신의 심장 소리까지 들릴 정도랜다.

 사랑에 빠지면 으레 얼간이가 된다고 한다. 그것은 유이토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누가 봐도 아사히 아야메라는 인물을 사모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에게까지 방법을 강구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지금까진 잊고 있었지만 자긴 사실 오버드였다는 말을 하며 바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UGN에 들어왔을 때에는, 솔직히 기가 차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츠카사 유이토의 아사히 아야메를 향한 행적은, 헌신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것이었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어쩐다 하긴 했는데, 미치루가 보기에 이미 정을 쌓아가는 정도는 이전부터 훨씬 넘었었고 상대도 유이토에게 조금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저 얼간이는. 저 멍청이는. 거부나 거절, 그게 두렵다고. 곁에서 모든 것을 다해 뭐든 바쳐가며 스스로 종처럼 되길 자처하다가 괴악한 실험이나 당했다. 상대 쪽은 그저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는 말만 남긴 채 현재로 3년째 자취를 감춘 상황. 그런데도 저 놈은 뭐가 기쁜지 3년 전부터 머리 나사가 서너 개는 더 빠진 상태로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를 위해 크리스탈의 사용 데이터를 정리해둬야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래,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자.

 아마츠카 미치루는, 츠카사 유이토가, 아사히 아야메를 포기했으면 했다.

 미치루가 보기에 3년 이래 유이토의 모든 행동이 현실 부정인 것만 같아서. 연정을 배반당한 채 사실은 마음을 거절당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 애써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고.

 "미치루."

 유이토가 상념에 빠져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는 미치루를 불렀다. 심지 굳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미치루, 나는 말이다.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내가 멋대로 품은 감정을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서른 두 살이나 되었으니."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그리고 상처 좀 받았으면 어때. 그것을 책임지는 것도 스스로가 할 일이겠지."

 "…유이토. 나는."

 "응."

 "네가, 아사히 아야메에 대한 연정을 포기했으면 한다. 그렇지만 너는,"

 "포기하지 않아."

 "그래, 그렇겠지. 어련히 그리 하겠지."

 미치루는 쥐고 있는 쥘부채를 잠시 매만졌다. 붉은 바탕에, 아주 작게. 나비가 그려져 있는 부채였다. 호랑나비(揚羽)가 그려진 부채였다. 그는 잠시 내리 깔았던 시선을 들어올렸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색채를 품은 눈동자가 시선으로 이어졌다.

 "아직 3년이니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길지는 않은 시간이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 이대로 4년이, 5년이, 나아가 10년씩이나 흘러가버린다면? 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어?"

 "미치루. 포기하고 싶다고 바로 그 마음을 내던져버릴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거다."

 "참 굳게도 확신을 하는구나."

 "만약 사랑이란 감정을 마음 먹는대로 쉽게.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사랑에 울고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왜 있겠나."

 "글쎄. 내가 보고 겪은 이들 중에 그런 치도 있더군."

 "그렇지만 적어도 너는 그렇지 않겠지. 아직도 그 날의 후회에서, 모든 것을 등질 만큼의 각오 어린 복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나."

 "……."

 쥘부채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 한 구석이 시큰거렸다. 그 때의 감정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피가 쏠리고 이를 악물게 됐다. 평소 잠잠하다가도 떠올리는 순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감정.

 괴로웠다. 하지만 버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곧 자신의 의지였다.

 "어때. 너는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아."

 "그래, 그렇겠지. 어련히 그리 할 거라 생각했다."

 유이토는 희미하게 웃었다. 눈가를 휘고 입가를 끌어당긴 참으로 정갈한 웃음이다. 도저히 꺼버릴 수 없는 무형의 불을 속에 품고 사는 이의 미소였다.

 "사랑이란 감정은 다른 대부분의 감정들과도 맞닿아 있어. 그것이 기쁨이든 즐거움이든, 슬픔이든 괴로움이든, 분노이든 후회이든…… 한 번 피어오르면 꺼지기 힘들지. 자신의 반신을 갈라 뜯어낼 만큼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감히 버릴 수조차 없을 만큼."

 유이토를 보며 미치루는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사랑에 빠져 괴롭고도 행복해보이는 남자의 면면을 앞에 두고 거기에 더 뭐라 말을 얹을 마음은 사라졌다. 애초에 처음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도 억지스런 트집이자 강요라고 느꼈던 참이었다. 못 당하겠군. 역시 우자(愚者)는 이길 수 없다며,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너도 나와 비슷한 계열의 사랑을 하게 된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방금의 상념은 확실히 부정적인 쪽이었다. 미치루는 다시금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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