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씬

[크씬] 집착 씨에게 집착을 02

탐정집착, 집착탐정

*모브 캐(안 다정) 등장

*캐릭터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W. 아웅이

02 편 : 물 주기

안 다정? 그게 누구야. 그의 특성상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들을 모두 제치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아련한 목소리에 눈가에 물방울까지 맺힌 상태로 읊조리던 그였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냉정을 잃고 당황하며 눈가를 쓸어주련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움켜쥐는 것은 내 옷자락이라니.

야속하리만큼 미워 보이는 곤히 잠든 얼굴에 조심스럽게 그를 마주보고 자리에 몸을 뉘였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그늘지지 않은 순한 얼굴이 내 앞에 있으니 이질적이면서도 의외의 일면에 잠시 감탄했다.

평소에도 이런 표정을 지으면 좋을 텐데, 눈만 뜨면 탁한 동공이 안광을 잃은 채 나만을 따라오니 무섭지 않을 일이 있을까. 굽이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신경 쓰이는 건지 늘어진 미간이 다시 구겨져 인상을 썼다.

어려보이는 그 표정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주 얇은 유리판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이마를 쓸었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이 정돈되어 뒤로 넘어가고 원래부터 예민한 성정이었던 그가 슬그머니 눈을 떠 제 앞에 있던 내 손을 몇 초간, 그리고 내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저가 덮던 이불을 들추고 내 품으로 몸을 끌어왔다.

“안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요.”

“저를 빤히 보시기에, 좀 더 가까이 보시라고.”

여전히 수마에 휩쓸린 표정으로 늘어진 미간과 함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잠에 잔뜩 긁힌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게 듣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희한하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생경했다. 내 허리를 끌어안는 팔과 연약하게 목에 닿는 숨결이 내 몸을 빳빳하게 만들었다.

그저 피곤하고, 귀찮은 상대라 내 기력만 닳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다. 묘한 기류에 조심스러운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나를 그렇게 만든 이는 다시금 잠에 빠졌고 그가 움켜쥐던 손이 힘없이 툭 침대 위로 흘러내렸다.

재차 목소리를 내면 그가 아예 깨버릴까. 나를 끌어안은 이 팔을 조심스레 밀어내면 눈을 떠버릴까. 이러한 생각을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미열이 있는지 뜨끈한 그의 자는 얼굴을 한참을 구경하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미루고 나도 눈을 감았다.

눈이 뻐근하고 몸은 피곤에 젖어 곧바로 잘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건만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그 ‘안 다정’이라는 이름이 내 정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 일어나서 물어보자. 그 정도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허락해주겠지. 그가 좋아하는 나이니까, 안이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눈을 뜨니 여전히 그는 내 품에 있었다. 이미 일어났음에도 자는 척을 하고 나에게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뻔히 보여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를 불렀고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고선 싱그럽게 미소를 짓는 것이 영 보기 불편하지가 않았다.

“탐정님이 저를 끌어안고 자고 계셔서 일어나기를 기다렸어요.”

“미열이 있어서 상태를 확인하다 잠든 것뿐이에요.”

“그런 것치곤 저를 놓아주시지 않으셨어요.”

“…아침부터 말싸움 하고 싶지 않아요. 정신 차렸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내려오니 작게 하품하던 그가 아침을 차리겠다며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주방으로 쌩하니 가버렸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뒤 요리를 시작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물 잔에 생수를 담으며 떠보듯 ‘안 다정’이라는 이름을 꺼냈더니 도마를 두드리던 칼질 소리가 뚝 끊겼다.

처음 보는 그의 반응에 잠시 놀라 물을 잘못 삼켰고 볼품없게 사레가 들려 옷에 물을 흘려버렸다. 대충 물이 묻은 자리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더니 작게 숨이 들이마시던 그가 멈췄던 손을 움직이더니 나에게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며 평온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제 집착 씨가 잠결에 중얼거리던 걸 들었어요. 실례였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 중요한 이름이라…. 잠시 놀랐을 뿐이에요.”

“그 분이 그렇게나 본인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에요?”

나의 오만이었을까. 약간은, 아주 조금은 그에게 있어 미궁의 인물보다 눈앞에 있는 내가 더 중요하다 말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를 기만하듯이 그 인물이 중요한지 한 치의 틈도 없이 내 물음에 곧바로 그렇다고 긍정의 대답을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컵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내가 왜 짜증을 내고 있지? 온몸은 경직되어 한껏 날이 서 있고 지끈거리던 미세한 두통은 점점 거세져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집에 두부가 있었나. 두부를 정육면체 모양으로 자르고 냄비 안에 넣던 그가 본인 특유의 평온하고 생기 없는 표정으로 드디어 나를 뒤돌아봤다.

그 평탄한 표정이 나를 시야에 담자마자 희열이 담긴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다가와 물기로 젖은 손가락으로 내 뺨을 건드렸다. 그런 그의 손가락은 무척이나 차가웠고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질투하세요? 다정이한테?”

“무척이나 친분이 있나 봅니다. 이름을 그렇게나 다정하게 부르시고.”

“지금 탐정님 너무나 사랑스러우신 거 아세요? 자기가 어떤 표정인지 모르실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떤 사이였는지 말 안 해줄 겁니까?”

“오히려 제가 묻고 싶어요. 저와 탐정님 사이가 무슨 사이인데요? 제 입에서 나온 그 이름과 무슨 관계인지 물을 자격이 되는 관계인 건가요?”

그저 입을 닫은 채 묵묵히 그를 보고만 있으니 방긋 미소 지은 그는 제자리로 돌아가 보글보글 끓는 찌개의 불을 낮추고 두꺼운 솜 장갑을 끼고서 식탁으로 가져왔다. 열기가 가득한 냄비를 덮은 뚜껑은 저와 다른 온도에 닿아 물방울을 응결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기함을 토했다. 마치 뜨거운 냄비 뚜껑처럼 내 안에서 불안감이 물방울처럼 응집되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머리와는 다르게 이질적인 감정에 급히 요동치는 가슴에 어지러움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그가 나를 따라다니는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 기이함과 함께 자꾸만 내 앞에 나타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거기서 끝이었다. 허전함이나 외로움 따위… 가질 리가 없을 텐데, 나를 발견하자마자 싱그럽게 미소 짓는 무기질적인 그 표정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순식간에 공허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모순적이다. 이율배반적이다. 그 정체모를 부조화가 내 이성까지 망가뜨려버려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안부를 묻는 그에게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고개만 갸웃거리곤 의자를 밀어 충분히 공간을 만든 그가 나를 천천히 끌어 의자에 앉혔고 이상해진 나를 개의치도 않은 채 갓 지은 밥과 가짓수는 적지만 그 얼마 없는 재료들로 어떻게 만든 건지 대단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이 새하얀 접시에 담겨져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식기 전에 드세요. 뭐든 제 때 챙겨 드셔야 해요. 음식도, 관심도.”

“…잘 먹을게요. 주 집착 씨는 안 드시는 건가요?”

“저는 아침을 안 먹어요. 탐정님 드시라고 만든 거니 맛있게 드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무언가를 기억해냈는지 ‘아.’, 짧게 소리를 냈다.

그에 덩달아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이 되었고 나를 빤히 보더니 출장은 언제 가는지 물어봤다. 이런. 내 거짓말에 스스로가 휩쓸릴 줄이야. 본인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실토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서늘한 표정으로 가장 멀리 있던 반찬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주며 가볍게 말을 시작했다.

“저 오지 말라고 출장 간다 말씀하신 거잖아요.”

“변명은 하지 않을게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어차피 정말로 출장을 간다고 해도 따라가려고 했거든요.”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그런데 어디가요?”

“탐정님 사무소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차로 가면 가까울 거리를 걸어서 가면 힘들잖아요.”

좋아요.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전처럼 거북스럽지는 않아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해준 요리는 간소했지만 혀끝으로 느껴지는 정성과 그 맛만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배가 가득 차는 포만감과 함께 나와 그는 사무소로 출근하기 위해 내 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무언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털실을 엮고 있어 물었더니 기나긴 목도리를 짜고 있다 간결하게 답했다.

“목도리를 짜기엔 너무 늦지 않았어요? 아니면 내년 겨울을 노리는 거예요?”

“거긴 항상 춥거든요.”

“…그 안 다정이라는 사람에 줄 건가 보죠?”

“네. 추위를 많이 타서요.”

흠. 은근하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쥐고 있는 휠을 손톱으로 툭툭 치다가 괜히 신호 무시하고 지나가는 행인을 보면서 중얼중얼 투덜대었다.

그런 내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그는 무엇이 그리도 기분 좋은지 낮게 노래를 흥얼댔고, 꽤 오래된 노래여서 삭막해진 분위기를 깨고자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게 되었다.

“다정이가 좋아했던 노래였어요.”

“그랬군요.”

나를 좋아한다며. 그래서 이렇게 내 일터까지 같이 가는 중이면서.

말도 먼저 걸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을 위해 목도리를 짜고, 그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집착 씨를 보며 묘한 불안감에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사무소로 가는 남은 시간 동안 입을 꾹 닫고 그저 묵묵히 자동차의 페달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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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춤추는 알파카

    다정이있는곳 항상 춥다는거보니 왠지 하늘나라에 있는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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