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씬] 집착 씨에게 집착을 01
탐정집착, 집착탐정
*모브 캐(안다정) 등장
*캐릭터 해석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W. 아웅이
01 편 : 씨앗 뿌리기
“탐정님, 탐정님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 하세요?”
“갑작스레 제 사무실에 쳐들어와서 하는 소리가 그건가요?”
“어떻게 생각 하세요?”
“하…, 정말. 사랑이라고 하면 상호 인격적으로 호감도가 쌓여 서로 곁에 있고 싶은 상태라고 생각 하는데요.”
“정말 사전에 정의된 의미네요.”
그는 무던한 목소리로 사무실 소파에 기댄 채 제 품에 있던 곰 인형-본인은 ‘윌순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타인에게 그렇게 불러달라고는 하지 않았기에 그저 곰 인형이라고 부르고 있다-을 옆으로 나란히 두고서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다 자꾸만 쌓이는 서류를 보며 머리를 싸매고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새하얀 건 종이여, 검은 것은 글자라. 비행기에서 살해당한 승무원 사건 이후 입소문이 났는지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만큼 나는 여유가 사라져버렸다.
그 곳에서 내 사무실을 점령한 그를 처음 만났다. 다만 나는 사건을 밝히는 탐정으로, 그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입장이었지만 진범이 밝혀지면서 오명은 벗게 되었다. 탁하고 생기 없는 버석한 눈동자가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한참을 무시하려 애를 쓰다 결국은 종이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있던 그와 눈을 맞췄다.
조금은 움츠러들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오히려 눈을 마주해 좋다는 듯 그저 해맑게 미소를 짓는 게 소름끼치는 사람이었다. 일방적인 사랑 고백을 그저 물 흐르듯 흘려보낸 것이 수십 번이었다. 그러니 이 사람이 내게 하는 것이 집착인지 일그러진 욕망인지 나의 잣대로 가늠하면서 떼어내려 했지만 찰거머리처럼 붙어와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그것이 이어진지 한 달이 되어가는 중이고. 어떻게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야할지 점점 가늠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몰래 훔쳐보다 걸리면 조금이라도 놀라는 척을 해요.”
“그렇게 하면 계속 보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그것과 이것은 다른 영역이라는 걸 모르시는 군요.”
“저는 탐정님을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말이 통하질 않았다. 그가 이렇게 사무실의 비밀번호까지 따 주인보다 들어오기 일쑤였고, 제 집인 것 마냥 내 집까지 들어와 청소니 가사를 하기 시작했었다. 그것이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가고 몸이 먼저 적응이 되었는지 집에 들어오면 항상 그의 향기를 찾아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런 나를 뒤늦게 알아차리곤 머리를 싸매며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게 된 나를 부정했다. 너무 적응했기 때문이라 합리화를 하며 그를 집에서 밀어내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꾸고자 했고 차분히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립했다.
“오늘 출장 가야하니까 본인 집으로 돌아가세요.”
“출장이요? 어디로 가시는 데요?”
“그것까지 주집착 씨가 아실 것 없다고 생각해요. 탐정으로서의 비밀 유지 조항도 있을뿐더러 저와 당신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요.”
“연인 사이가 된다면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나요?”
“연인 사이가 될 계획도 없고, 그럴 수 없어요. 궤변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세요. 조수, 바깥까지 배웅 해드려.”
단호히 말을 끝마치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다는 의사까지 내보였다. 그는 텅 빈 공허한 눈동자를 나를 계속해서 응시했고 우리 사이에 낀 조수가 안절부절 떨며 그를 끌고서 밖으로 내보냈다. 예상 외로 아무런 말없이 순순히 두 발로 걸어 나갔다. 턱을 괸 채 미간을 찡그린 조수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정확히 5분 정도가 지나자 조수가 털레털레 들어와 소파에 제 몸을 뉘였다. 긴 한숨을 내쉬는 조수를 보며 의문을 가진 채 누워 있는 소파 근처로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왜 그렇게 지쳐 보여?”
“무서워서요. 탐정님 이외에는 입을 잘 안 여세요. 그 분.”
“순순히 나가긴 하던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투정을 부리듯 조수가 나를 흘기며 투덜거렸다.
“출장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시긴 하던데, 잘 모른다고 둘러댔어요. 어차피 탐정님도 그거 그냥 한 말이시잖아요. 그런 스케줄 없는데.”
“떼어놔야 하니까 머리 좀 굴려봤어. 집으로 가는 것까지 봤어?”
“네. 길 끝까지 가시는 거 보고 들어왔어요.”
그래. 잘했어. 작게 다독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미처 다 못한 서류와 작업을 이어나갔다. 일에 열중하니 금방 저녁을 넣어 자정이 다 되었고, 제 책상에 앉아 고개를 주억거리며 조는 조수를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퇴근하자는 내 말에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난 조수가 먼저 퇴근하고 사무실 정리를 끝낸 나는 전등까지 소등한 후에야 천천히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이 늦은 시간이니 제 집으로 돌아가거나, 내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내가 퇴근할 때까지 싸늘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는 건 정말 적은 확률이라고 생각했는데. 건물 정문을 나서자 근처 계단에 주저앉아 있던 그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잘게 떠는 손끝을 곰 인형을 끌어안아 숨기며 내게로 다가왔다. 눈앞에 있는 이의 유연성이라곤 없는 융통성에 어이없어 하며 급히 외투를 벗어 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옷조차도 얼음장 같이 차가운데 피부는 만져볼 것도 없었다.
“아니, 집에 가서 기다리거나 하면 되지. 굳이 미련하게 여기서 기다려요?”
“같이 가려고요.”
“본인 집에서 기다리거나 하면 됐잖아요. 아니면 늘 그렇듯이 제 집에서 기다리던가. 왜 이리 사람이 바보 같아?”
“제 걱정 해주시는 거예요? 좋다.”
좋기는 개뿔, 사람이 답답해 미칠 지경에 다다랐는데, 그게 좋다고 마냥 헤헤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잔뜩 미간을 찡그리며 일단 차에 태운 후 히터를 강하게 틀었다. 같이 탄 나는 땀이 날 지경인데 아직도 손끝을, 손가락을 떠는 것이 그렇게나 추운가 싶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일단은 나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 30분 거리였던 집까지 가는 동안 서로 아무런 말이 없어 그저 적막만이 차 안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고른 숨소리만 들리더니 어느 순간 작은 코골이가 들려와 신호가 걸리자마자 곧바로 옆을 바라보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느슨하게 몸을 풀고서 잠에 빠진 그가 쌕쌕거리며 곤히 자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겠다고 체력을 다 쓴 건지, 추운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서 잠든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쓸데없이 고생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 뒤에 있던 차가 경적을 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앞을 봤고, 천천히 다시 움직이는 차는 잠든 이를 위해 서행으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30분이면 도착할 것을 50분이나 걸렸고 집에서도 서류를 보려 했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주집착 씨. 도착했으니까 눈 좀 떠봐요.”
“…아. 벌써 도착했어요?”
“타자마자 잤으니 알 턱이 있나. 얼른 들어가서 마저 자요.”
“오늘 어디서 주무실 거예요?”
“주집착 씨가 소파에서 자면 침대에서, 침대에서 자면 소파에서요.”
“침대 작은 편도 아닌데 같이 자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자면 잘 못 자서 그래요.”
조금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말을 했더니 작게 ‘거짓말.’이라고 속삭이던 그가 다시 되묻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비밀번호까지 훤히 꾀고 있는 그를 보며 혀를 내둘렀고 출근하기 전 봤던 집 풍경과 사뭇 다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더니 곰 인형과 내 외투를 소파 위에 나란히 두고 작게 하품하는 모습에 얼른 자라며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이끌었고, 옷을 갈아입은 그는 멍한 표정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까지 갔으며 편안히 자면 될 것을. 외투와 옷을 정리하는 나는 천천히 닫히는 눈꺼풀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안 자려 애쓰는 어린 아이 같은 그를 보며 다독였지만 같이 눕는 것을 본 뒤에야 자겠다고 억지 부리는 떼쟁이에게 이기지 못했고 씻고 나오겠다며 갈아입을 옷가지를 들고서 욕실로 들어갔다. 자고 있을 게 뻔해 일부러 천천히 씻고 나왔더니 감았던 눈을 다시 뜨는 그를 보았다.
“아직도 안 잤어요?”
“얼른….”
“잘 때까지만 옆에 있어줄 테니까 얼른 자요. 왜 억지로 참는지 모르겠네.”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무어라 중얼거리던 그는 얼마 안 가 곧 잠에 빠져 고른 숨소리를 내며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 와중에 내 옷자락을 붙잡은 손은 굳게 쥐고 있었다. 조명 탓인지 약간 붉어진 얼굴에 혹시나 싶어 손을 가져다대니 비교적 뜨거운 체온이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다. 왜 그래 추운 밤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서 사람을 기다렸는지 영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야.
아픈 사람을 내버려둘 수 없어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와 흐트러진 앞머리를 치우고 그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잠을 자지 못해 뻐근한 목과 지끈거리는 두통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울리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었을 이 안쓰러운 이가 고열에 침대 위에서 끙끙대며 잠을 설치는 것을 조금 진정시켜주기 위해 그 곁에 조심스럽게 몸을 뉘이고 작고 가냘픈 그의 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숨을 내쉴 수 있도록. 조금은 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느슨한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속눈썹이 길었나. 나를 향해 웃을 때마다 폭 들어가는 보조개는 자고 있을 때에도 그 자취를 다 감추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살짝 그늘진 보조개를 검지로 찔러보려다 뒤척이는 탓에 다급히 손을 거두고 그를 지켜보니 잠꼬대로 중얼거리며 끝내는 눈물까지 머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 다정… 다정아.”
안 다정? 누구야 그게? 그저 나를 따라다니는 귀찮은 스토커인 줄 알았는데…, 다른 이의 이름이 그것도 보통 그가 말하던 싸늘하며 냉랭한 목소리가 아닌 무척이나 그리워하는 다정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이름이라니. 계획적인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할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에서 이미 썩은 채로 싹틔운 채 조용히 욕망을 먹이 삼아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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