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오래 된 서울의 도깨비

To by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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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의 생김새를 따져보자.

머리는 시커먼 것이 어둡기 짝이 없어 서울의 밤보다도 어둡기 마련이고, 머리는 항시 헝클어져있는 것이 제 마음대로 머리를 들쑤시는 모양새였다. 그런가 싶으면 손을 가만 대보면 사락사락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관리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도통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피부는 어떠한가 살펴보면 그 태생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매끄럽기만 하다. 어디 하나 티 처럼 점일랑 한군데도 찍힘 없이 백옥같이 하얗기만 한 것이 같은 햇볕아래를 걸었나 의심케 할 정도로 하얗기만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무척이나 단정한 눈썹이 검고 일정하게 그어져 있었다. 눈썹털 하나 모나게 삐져나온 곳 없이 그어진 것은 꼭 수묵으로 그어둔 듯 하다. 그리고 도깨비라는 제 이름에 걸맞게 선명하고 부리부리한 눈이 그 아래에 쿡 박혀있다. 쌍꺼풀은 보이지 않는 눈인가 싶다가도 눈을 감고 뜰 적에 아주 옅게 보이는 선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쌍꺼풀도 그 눈으로 죄 잡아먹은 모양새였다. 콧날은 또 어찌나 곧고 잘 생겼는지. 입매는 그 끝이 슬쩍 올라간게 얼마나 웃음기가 입가에 묻어나는지 한 번 마주친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보고 감탄하기 바빴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조차 신묘한 도깨비라 뒤돌아서면 어땠더라 희미하게 잊혀지곤 했다.

키는 180을 조금 넘겼던가. 예전에는 그 키면 무척이나 커서 김서방이다!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뭐 고만고만 하다고 끌끌 웃기나 한다. 모습을 바꿀 적마다 제 마음대로 키가 커졌다 줄었다가 하는 탓에 제 집에는 제 키만큼 그어둔 선이 있었다. 딱 그만치 크게 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해놓은 선은 언제 그어두었는지 퍽 오래 된 흔적으로 남았다.

손이며 발이며 모나지도 않고, 몸의 살결도 곱기만 해서 벗겨놓고 보면 적당한 근육과 살이 해결사가 아니라 모델을 했어도 대성할 팔자였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깨비는 괜히 입술 끝을 씰룩거렸다. 내가 옥가락지인 도깨비인데 어련히 예쁘겠지. 하는 투였다.


그래, 태어나기를 옥가락지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 자 또한 옥이름 가珂 에 빛날 빈彬을 써서 가빈이 아닌가. 오래 전 달빛 아래에서 외롭지 않기를 바라던 소원으로 태어난 옥가락지 도깨비는 처음으로 가족을 잃은 후에. 그리고 남은 가족 마저 천륜을 따라 떠나보낸 후에 꾸준히도 도를 닦았다. 신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사실 도를 닦는 것도 자신이 신이 되려고 닦아온 것은 아니고 천륜에 흘러간 제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빌어주다보니 도가 닦였다.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정성 위로 시간이 쌓이니 자연스럽게 도깨비 주제에 하급신에 버금가는 신력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몸도 있고 도를 닦으며 바라는 것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는 신들의 해결사가 되었다. 그리고 종종 인간들의 해결사도 되었다. 그래야만 이 행정으로 미쳐버린 나라에서 오래오래 불멸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인간들만 도깨비에게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 하급 신만큼 힘이 좋아진 오래 된 도깨비는 온갖 곳에서 다 러브콜을 받았다. 내 무당도 아닌데 왜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야 하냐며 고래고래 바다와 산에 대고 펄쩍펄쩍 소리를 질러대고 나서는 에잇, 제기랄! 소리 한 번 지르고 그 사이에서 부지런히 제 할일을 하는 것이 해결사의 일이라.

한번의 삶이 끝날 때마다 다시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야 하니 신에게 잘 보일 수 밖에 없단다. 자신이 찾는 인연이 있으니 또 신에게 잘 보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스스로 목줄을 맨 도깨비가 흔치 않으니 신들만 신이 나서 오래 된 도깨비를 쥐고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 다 낡아빠진 도깨비를 휘두르니 도깨비만 허리가 휜다.

그러나 싫단 소리도 못하는 성격이 된 것은 언젠가 돌아올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보고 싶어서. 애닳은 마음을 풀 곳이 없어서이다. 그저 그것들을 모두 도를 닦듯 일로 닦아내며 풀어왔던 터다. 자신이 쌓은 공덕 모두 돌아올 사람들의 몫으로 미뤄두고 끝없이 속죄하는 삶을 사는 도깨비가 서울 한복판에서 뛰어 노나니. 그나마 잡귀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은 그 속죄가 낳은 산물이겠다.


나랏님네 심부름꾼부터 흘러 세월에 따라 기업들의 심부름꾼까지 해주니 새로운 몸을 만들고 자라고 그간 쌓아왔던 부를 계승해 지내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니까 알짜배기 부자도 이런 부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에 비해 사는 곳은 적당하고 작은 오피스텔이다. 본인이 도깨비 소굴로 쓰는 공간은 또 따로 있단다. 당연한 일이다. 지나온 세월이 많으니 쌓여있는 물건도 많아서 인간의 부동산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터다. 다 합쳐 10평은 되려나. 생각보다 작은 곳인데 그게 또 그렇게 안정감이 있단다. 고층인데다 베란다가 있어서 구매했다고 한다.

나라가 현대화가 되며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를 꼬오오오옥 다녀와야 했던 터라서, 군대이야기를 하면 학을 떼고 싫어한다. 그러나 모든 경험은 쌓이면 축적되는 법으로, 도가빈은 총술에 도가 텄다. 그러니까 이번 대의 도가빈은 군대 다녀오던 시절에는 특등사수로 복무기간의 절반 정도는 휴가 나왔다. 군대 가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말뚝 박아도 되겠다는 소리와 추근덕거리는 소리들이다. 대충 체육시간에 날잡고 집어던지면 쏙 들어가는 그 소리들이 얼마나 웃긴지.

돈이 많으니 귀한 음식도 잔뜩 먹을 수 있을텐데 그나마 자주 먹는 것은 끽해봐야 오이나 맛살 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달달한 것들을 좋아하는 데 또 팥은 못 먹는다. 그 외에도 빨간 음식은 좀 피하는 편이고. 그런데 한국은 언제부턴가 매운걸 좋아해서 문제다. 그러니 죄 없는 오이나 생으로 씹어먹는 날이 많았는데, 이제는 애인이 말랑말랑하고 맛 좋은 맛살을 계속 사다주니 그거나 입에 물고 있는다.

아아,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애인이 직접 먹여주는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애인에게는 말한 적이 없으나 애인이 먹여준다면 팥죽이든 선지든 먹고 죽으라고 해도 죽을 수도 있을터다. 물론 그런 소리를 하면 애인이 인간이면서도 눈을 도깨비처럼 뜨고 저를 바라볼 것이 뻔해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잘 하는 것을 세어보는 것보다 못 하는 것을 세어보는 것이 빠르긴 하다. 집안일도 대부분 잘 하는 편이고, 이것저것 시간이 남아 배운 것도 많아서 쓸데없는 것을 사부작사부작 하는 것도 잘 하고. 반짝거리는 것들 보며 멀거니 좋아하는 것도 잘 한다. 못 하는 건... 육류요리는 조금 힘들긴 하지. 다 조리된 상태로 오면 좋겠다마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면 역시 입맛이 뚝 떨어진다.

무리 하면 그대로 깊게 잠들어버리거나 반지로 돌아가 어딘가에 꿍겨 잠들고 만다.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는 소리인데. 원체 안 자던 도깨비가 자고 있노라면 슬슬 무리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다. 애인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눈치 채겠지. 허나 가장 좋은 것은 눈치 챌 일도 없게 애인 곁에서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남자로 태어나 군대를 다녀오는 이유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한국에 뿌리깊게 박힌 남자를 좋아하는 시류 때문일거라고 도깨비는 생각한다.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데에 제약이 너무 많다. 혼자 돌아다니는 순간에도 귀찮은 일이 많고. 당신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가장 큰 에러긴 하지만 또 이번처럼 사랑에 빠져줄 거라고 믿는 구석도 어느정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여자로의 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키는 170 정도일까. 멀쑥하니 커서 사람들이 한번쯤 돌아보는 키에, 늘씬늘씬 잘 빠진 것은 남자일 때와 매한가지였다. 머리는 가슴팍 쯤 내려올까. 남자일 적과 달리 헝클어져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새카만 것이 염색 한 번 해본 적 없는 머리칼과 같다. 똑같이 새하얀 피부에 새카만 눈은 수묵화에 나오는 그린듯한 미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이 처음봤던 옥가락지의 주인 - 마님과 굉장히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제 눈에는 마님이 제일 미녀였던 것을.

남자일 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한 목소리에, 차분한 기색이 있다. 남자일 때가 너무 가벼운가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지. 너무 무거우면 무섭지 않나.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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