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화] 평범한 아침

별 특별할 것 없는 아침

To by 이선
3
0
0

직장인이라는 건 대부분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사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선화도 다를 바가 없다.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이선화의 핸드폰은 아침을 알린다. 매일을 뒤척이며 잠들기 때문에 이선화는 늘 아침이 버거웠다. 당연하게도 첫 알람은 헛울음만 뱉을 뿐이다. 이선화는 첫 알람에는 잘 일어나지 못해서 그 다음 알람이 다시 울려서야 겨우 일어났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일어나서는 일어난 보람이 없게 앞으로 고꾸러진다. 그리곤 이불에 얼굴을 묻고 덜 거추장스럽게 자기 위해 묶어둔 사과 꼭지 같은 머리 묶은 것을 풀어낸다. 손끝에 머리 끈을 걸고 미적미적 풀어내고 나면 묶여있던 머리 약간이 삐죽이며 천천히 가라앉는다. 비죽이며 서있던 머리칼이 천천히 내려앉을 쯤이면 낑낑거리던 이선화도 몸을 일으킨다. 여기까지가 매일 혼자 있을 때에 반복되는 아침이었다.

이선화의 침대는 혼자 쓰기에는 확실히 큰 사이즈였다. 슈퍼 싱글 사이즈도 충분한 체격이었으면서 굳이굳이 퀸사이즈의 침대를 침실에 짜넣었다. 그렇게 넓은 침대의 귀퉁이에서 자는 취미도 없었으니 침대를 내려오기 위해서는 한바퀴 반 바퀴정도 굴러내려와야 했다.

요즘 이선화의 새로운 취미는 자기 애인이 곁에 없을 때에도 애인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선화는, 침대에서 뒹굴 굴러내려오면서도 이 모습을 자기 애인이 봤으면 엄청 웃었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분명 저를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 안 그래도 올라간 입꼬리를 죽 늘여 웃으며 좋아하겠지. 어쩔 수 없다니까. 하고 큭큭 상상하면서 웃고 나면 그제야 침실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이선화의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비로소 이선화의 하루도 시작된다. 양치질을 하면서 연락이 온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샤워가운을 챙겨 미적미적 욕실로 들어가며 이강이를 메신저 가장 높은 곳에서 찾아 아침인사를 보낸다.

이선화의 착해빠진 -물론 강이는 이 표현을 싫어하겠지만- 애인은 이선화가 밤에 잠을 못자고 메신저로 치근덕거리면 거리가 이만큼이나 먼데도 금방 제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아니 어떤 애인사이는, 으응? 그러면 밤새 통화를 하다 스르르 잠이 드는 그런 통화도 한다는데. 이강이는 그런 것도 없이 달려와서는 꽉 끌어안아주곤 했다. 이선화는 그런 애인이 정말정말 좋았다. 너무 좋아서 만날 때마다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떨어지는 거라서. 이선화는 밤에 연락하지 않기 위해 머리에 힘을 열심히 주어야 했다. 이 사실을 알면 또 “왜애! 그냥 연락해도 되는데!” 라고 칭얼거리겠지만 어쩌겠나. 원래 이런건 누나가 더 신경쓰는 거라고 이선화는 혼자 이죽였다. 본인의 정신건강이 축축하다못해 지하로 파고들 때에는 그럴 생각도 못하고 전화해서 쿨쩍거리기나 했던 것은 새카맣게 까먹은 양 굴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그저그런 보통의 밤과 아침이 지날 때에는 이렇게 아침이 되어서야 연락하는 것이다. 하여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도 이런 개구리가 없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흥얼거리면서 샤워를 마치고 나면 일어났나아, 하고 괜히 핸드폰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곤 없으면 얼굴에 팩도 올리고 머리도 말리고 옷도 입고 화장도 한다.

출근 준비를 하는 플레이리스트가 끝날 때 쯤이면 전신거울 앞에서 차림새를 한 번 살핀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집을 나선다. 출근길은 늘 비장해질 수 밖에 없다. 일단 강남 주변에는 사람이 정말 많고, 출근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이리저리 치이기도 쉽다. 버스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열심히 버티고, 사람들 사이를 민첩한 날다람쥐처럼 빠져나가서 겨우 회사 건물에 도착하고 나면 진이 쏙 빠졌다.

 

“내가 진짜 일 다니기 빡시면 언젠가 때려친다.”

“또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

“진심이야. 제가 일 그만두면 애인은 좋아할걸.”

“백수 여자친구는 인기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잘 나가는 변호사 여자친구로 있지 그래?”

 

출근하자마자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채우는데 옆 방 파트너가 와서는 선화에게 이죽거렸다. 이선화는 저 자식에게 한대 먹여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픽 웃었다. 예전이었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응수했겠지만 이선화는 이제 예전의 이선화가 아니었다. 응? 이몸은 이래보여도 강이가 잘 물고 빨고, 아니 이게 아니라. 잘 쓸고 닦고? 이것도 이상한데. 아무튼 예쁘게 잘 돌봐서 예전보다는 둥글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단 말이지. 이선화는 가만 파트너를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백수일 때부터 썸탄 사이라 상관 없을걸? 그리고…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해서 인기가 좋으리라는 법도 없고.”

 

이선화의 시선이 파트너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느릿하게 쓸어올렸다. 픽, 웃으며 마침 다 채워진 텀블러를 거둬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얄미운 얼굴로 먼저 총총 제 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괜히 핸드폰을 들어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강이야. 내가 백수 되면 너는 뭐 하고 싶어?]

그리고는 애인에게 어리광 같은 메세지나 보내둔다. 30여 년간 부려본 적 없는 어리광을 처음으로 부려보는, 서툰 마음도 제 애인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잘만 받아주는지. 자신의 모습이 어리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른스러움은 다 때려치고 어리광이나 부리게 되었는지. 괜히 민망한 기분에 슬리퍼로 갈아신은 발을 책상 아래에서 동동거리다가 서류를 집어든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어느 날의 오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뭐어? 나? 글쎄? 나는 백수가 되면 일단 오전 내내 푹 잤다가, 너 일하는 데 놀러가서 약국에서 네가 챙겨주는 간식이나 먹으면서 옆에서 뒹굴거리다가, 너 퇴근할 시간 되면 같이 퇴근할 건데? 같이 운동가는 것도 좋고. 운동 가기 싫은 날에는 같이 산책가자고 꼬셔서 너랑 같이 여기 저기 돌아다닐건데? 왜? 나 백수되면 안 놀아줄거야? 바빠? 흐으음.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이 누나가 돈 많이 벌어오는 수 밖에.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