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해?
아ㅡ,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또다시 쓴 웃음을 내건다. 분명 잘 웃고, 언제나 낙천적인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소녀를 이리 내몰았는가. 사태의 발단이 된 마녀? 개입도 않고 손을 내려놓고 방관하는 어른들? 한없이 믿고 좋아했던 친구들? 원인 불명의 불안과 우울이 이미 마음을 장악했을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속이 시원하다는 이유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맞아요. 선배 말이 다 맞아요. 저랑,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했을지도 모르죠.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숨겨왔을 거예요. 바보같이…. 말해도 됐었을텐데 말이에요. 도망가지 않아도 됐을텐데. 속마음이 어떻든…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미련한 사람 같네요, 그쵸? 나는 이 선배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그와 닮았다는 이유로 겹쳐보기라도 하는 건가? … 그럴리는 없지 않은가. 하하… 선배도 숨기고 있는 게 있구나. 그럼, 저도 이제 나름ㅡ (잘?) 아는 사이니까, 어리광도 피우지 않겠네요. 난 이미 잔뜩 그러고 있는데. 잠깐의 정적. 그 친구분, 많이 걱정되세요? 그럼… 왜 개구리를 보살펴-보살펴라는 말이 이상한 것 같기도- 주지 않으신 거예요? … 다른 사람들도 그러고 있지 않으니, 개구리를 데리고 있는 건 역시 좀, 이상하려나…. 그럼, 만약에… 그 친구분이 다시 돌아온다든가, 해서 죽여달라고 하면… 선배, 죽여줄 수 있으세요? 어떨 것 같아요? 저는 이미 저질렀으니까ㅡ 할 말이 없는데. ㅡ 어쩌면, 선배도 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고해 끝에 의외의 말이다. 수고했다… 라. 사람을 죽이고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는 없는 말. 표정이 어떻게 보이고 있으려나. 조금ㅡ 어쩌면 많이 이상할테지. ㅡ 안아 주실 수 있나요? 그대로 기댄 채, 고개만 들어 바라보자 네 얼굴이 보인다. 표정을 읽기가 싫었다. 잠시나마 너를 향했던 시선을 정면으로 고치고, 그나마 맞닿은 곳에서 전해져오는 체온을 느낀다. … 쉴래요. 선배 말대로 쉴래요. 오래 쉴래요. 쉬고 싶어요…. 좀, 지친 것 같기도 해요. 우리 최근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ㅡ. 죽음을 달래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해보여서, 기분이 이상하다. 이런 경험이 또 있는 걸까. 역시, 죽었다던 그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선배의 이야기인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상실도 먼저 느껴본 사람이 달랠 수 있다는 걸까. 하하… 그럼 나도 이제 누군가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으음, 뭘 해달라고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음을 못 내렸거든요…. ㅡ그런데, 선배가 죽는 거랑, 사는 건 선배를 위한 거니까… 저를 위한 걸 해주세요. 그래 주실 수 있죠? 선배가 먼저 해주시겠다고 했으니까, 그냥 선배를 믿을래요. 막무가내다. 당신이 잘하지 못하는 건 내게 상관이 없으니. 난 그저 당신의 말대로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할 뿐…. 하하… 실은, 저도 목을 졸려 보면,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ㅡ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럼, 제가 그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아서요. 이런 부탁은 곤란하려나?
첫사랑…. 그럴 만하네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학생의 첫사랑이라니. 풋풋하고 예뻐야 할 그 사랑이 피로 물들었으니,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뭐라 말을 하기도 어렵네.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아마 못 버텼을지도요….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걸, 죽은 걸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니…. 세상을 미워할 것 같은데. 따라 죽고 싶었을지도요. 버티지 못 해서. 정말,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가볍게 들으라는 건지…. 작게 중얼거린다. 바보 같아ㅡ. 선배도 바보예요. 그 친구도, 선배도 다 바보고, 멍청이예요. 죽고 싶다느니, 가볍게 흘려들으라느니ㅡ, 선배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요. 다들 바보야….
으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기대하지는 마요. 재미없을 수도 있어. 흐음… 어디 보자, 십 년? 십오 년 쯤 됐을까. 한 여자아이가 한 살 많은 친구를 사귀었어요. 한 살 많으니까, 오빠라 해야 하려나… 어쨌든, 둘은 좋은 친구로 지냈으니까요. 매일 같이 만나서 놀고, 그랬어요. 이름에 같은 한자가 들어가기도 하고, 부모님이 불러주는 애칭도 같고, 무엇보다ㅡ 살짝, 닮은 게 친오빠가 생긴 것 같았거든요. 좋아하는 것도 닮았고… 그래서 종종 둘이 놀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다가 남매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근데, 남매 치고는 또 안 닮았고, 머리색도 달랐거든요. 그래서 정말 우리 오빠였으면 좋겠다! 하고, 그 친구한테 얘기한 적도 있었더래요. 그렇게 함께 지내기를 몇 년,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머리가 조금 크고 한자를 배우기 시작하니, 그런 생각이 들더래요. 정말로 우리는 이름에 한자가 같네? 부모님 한 분이 이혼하신 것도 같네? 하면서요. ㅡ그런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ㅡ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하나도 몰랐으니, 그냥 좋아서 그런 얘기도 막, 나누고 그랬을 거예요. … 너무 이상해서, 부모님 이름을 알려주니, 아버지 이름이 같았던 거예요. 인상도, 좋아하는 것들도… 같은 사람이었던 거죠.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저 때문에 급히 결혼을 했다 하더래요.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불륜 상대가 있었고, 그 상대가 아이를 가져서 이혼했다 하고요. 하하, 우연의 일치가 이렇게 들어맞을 수도 없어요. 그렇죠?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사랑해서 더없는 사랑을 주었거든요. 그런데 남자아이는, 그 여자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자신의 가정이 파탄났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가장 친하고 좋아하는 동생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순간, 남자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여자아이를 밀치면서,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망가졌다고, 너 때문에 나랑 엄마가 불행해졌다고. 그렇게 얘기했대요. 그런데 하필 그날, 강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빠를 잡으려다 밀쳐진 여자아이는 그대로 풍덩ㅡ…. 그렇게 꼬박 죽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다행히 그 오빠가 다시 구해줘서 살고, 그 뒤로도 잘 지냈다나 뭐라나…. 대신 여자애는 그걸로 종종 물에 불안증 같은 거라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생겨서, 약도 먹었다나 봐. 이 이야기의 교훈은ㅡ 으음, 가족 얘기는 잘하지 말 것? 이려나요. 아니면, 물 옆에서 놀지 말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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