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선배 말대로, 그 사람을 너무 믿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너무 자만했거나….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사람이 나에게 모든 걸 보여줬다고 믿고 있었던 게… 어쩌면 맞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사람의 정말 진실된 모습은, 오늘에서야 봤는데도. (작은 한숨.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도, 이제 다 내려놨어요. 속이 시원하달까…. …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스스로도, 지 자신이 위태로운 걸 알고 있기 때문에.) … 이미, 저한테 그럴 수 있다고 말했었으면서. (내가 선배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상해요. 가장 믿고 소중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더 솔직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도망가고, 숨기기만 해요. 선배도 똑같네. 소중한 사람일수록, 가감없이 드러내는 건 저뿐인가 봐요. (고개를 으쓱 한다.) … 전 불안할 때 더 거짓말을 할 것 같거든요. 선배랑 반대네요…. … 저, 고백 하나 해도 될까요? 대신,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아니, 말은 해도 되는데, 제가 의지할 수 있게, 원망할 수 있게, 기댈 수 있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냥 얘기하고 싶어요. 저, 결심한대로… 친구의 마지막을 선물하고 왔어요. (씁쓸히 웃는다.) 제게 죽여달라고 했던 게, 그게 진심이더라고요. 발버둥 치지 않는 모습이 너무……. (고개를 푹 숙인다.) 잘한 선택이라고 믿어요. 그걸 원했으니까, 내게 부탁했으니까, 포기한 게 아니라… 부탁을 들어준 거예요. 그렇죠? (고개를 들며, 씩 웃어보인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도 같고…. 일그러진 얼굴이, 웃는 것만 같지도, 우는 것만 같지도 않다. 네 말대로, 체념했을지도.) 하하…. 살인자라며 역겨워해도 돼요. 저도 알아요. 제가 사람을 죽인 거…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거. 그런데, 선배, 죽이기 전에, 진심인가 싶어서 목을 졸라 봤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어요. 그럼, 보내주는 게 맞는 거죠. 그런 거죠?…. (제발 그렇다고 해주길….) … 종용했더라도, 결국 제가 선택한 결과잖아요. (옆에 앉은 네게 살짝, 힘없이 기대어본다. 무릎을 세우고, 깍지 껴 다리를 잡아 몸 가까이 당겨 모아 자세를 고쳐 앉는다.) … 조금만 이러고 있을래요. 지친 것 같아요. (저를 원망하란 말이 귓가에 들려왔으나… 아직 그럴 힘조차 없는 듯하다.) … 정말, 정말 뭐든 들어주실 건가요? 한 번쯤은? 뭐든, 받아주실 건가요? (무어를 해달라 할까. 원망해도 좋다 하였으니, 원망하며 나의 죄까지 떠안으라 할까. 기대도 좋다 하였으니, 속 뒤집어진 나를 모두 받아달라 할까. 의지해도 좋다 하였으니… 무너진 내 정신을 당신에게 의지할테니, 달래달라고 할까. 무어가 좋을까. 조금 찬찬히, 생각해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 들어준다고, 약속하셨어요. 정말이요. (어쩐지, 말로만 살아남겠다며 약속하고 제 손에 죽은 이가 생각나는 건 왜인지.)
(제게만 말하는 이야기, 라는 말에 꽂혀 고개를 들어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쩐지… 익숙하고 자세하게 들려오는 이야기.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인 걸까? 아니면… 선배의 이야기라거나.) … 많이 좋아했나 보네요, 그 여자아이. 얼마나 좋아했으면. (…. 단순히 좋아하는 친구간 데이트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란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듯하다.) … 그래서, 그 뒤는요? 남자아이는… 살았다고 했죠. …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요. 전, 친구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죽는 걸 본 채로, 사흘이라니…. (그럴리는 안 되겠지만.) …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감싸서 더 크게 다치고 죽어버렸다거나ㅡ, 그덕에 남자아이는 덜 다쳐서 살았다거나ㅡ. 그럴 수도 있… 을까요? (조심스레 묻는다.) … 아니에요, 죄송해요. 괜히 물었어요. (그렇지만, 이미 들어버린 상태에서 가볍게 넘기기가 쉽지가 않은걸….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가볍게 넘길 수가 있지.)
… 이야기를 들은 답례로, 저도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소꿉친구 이야기인데… 재미있을 거예요. 커다란 반전이 있거든요. 어때요.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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