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서

生死

죽음을 욕망하는 것은 산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요? 김이서는 내내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사유현에게로 옮겼다. 답을 바라고 뱉은 물음이 아니라는 것 즈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말에 어떻게든 답할 참이었다. 고작 연명하는 것이 전부인 삶일지라도 언젠가는 의미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누군가가 알려준 적이 있다고. 그리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제 뒤로 오세요, 이서."

"……."

어떤 언어도 뱉어내지 못한 채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깐의 머뭇거림 후에야 걸음을 한 발짝 뒤로 물렸다. 이어 인간을 물어뜯고자 하는 욕망에 의거해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존재가 탁한 눈에 들어찼다. 그마저도 찰나였지만. 잠시만 눈 감고 있으세요. 김이서는 그 속삭임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요, 유현 씨. 손이 떨리고 있어요. 괜찮으신 건가요……. 그런 말조차 제대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김이서는 결국 눈을 감았다.

찾아오는 암흑은 지옥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과 죽어가는 목소리가 더욱 선연하게 들리는 탓이다. 그것이 못내 듣고 싶지 않아 양손으로 제 귀를 막을 생각도 했으나 곧 관두었다. 대신 세게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제 살을 파고드는 감각을 느꼈다. 둔탁한 소리를 듣고, 짙은 혈 향을 맡고, 치미는 구역감을 어찌하지 못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고……. 그 끝에, 찾아오는, 기이한 침묵 속에서, 다시 눈을 뜨면…… 불 안 정 한 모습의, 네가, ……아.

김이서는 스스로가 잠시 공황 상태에 있었음을 가까스로 깨달았다. 의도치 않게 타인의 고통을 방관한 꼴이 되어 버린 탓에 순간 무력감과 공포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버석하게 갈라져 피가 고인 입술을 잘근거리던 것을 멈추고 손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났으나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곧 사라질 흔적이었다. 그보다도 김이서는 사유현의 상태를 살피고 싶었다. 이미 숨이 끊긴 좀비를 다시 한번 내리치는 그 행동이 김이서가 보기에 분명 너 다운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주저앉은 네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앞에 앉는다. 무감한 눈으로 네 모습을 살피듯 한다.

"……무슨 생각 해요?"

짧게 건넨 말에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김이서는 제 무릎을 끌어안았다. 곁눈으로 네 표정을 보고, 순간적으로 흘러내린 눈물이 눈에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제 앞의 이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있잖아요……."

멈칫. 상대에게 채 닿지 못한 손짓이 허공을 가른다. 빛 하나 들어올 틈 없이 탁한 회색이 이어 제 시야에 담긴다. 어울리지 않는 그 이질적인 웃음까지. 있지, 그렇게 웃어봤자 네 표정은 결국 무채색에 불과하잖아…… 왜 그런 떨리는 눈빛으로 내게 미소 지어 보이는 거야? 나는 여전히 네가 이해가 안 돼…….

"저희…… 오늘 해가 지면 죽을까요?"

"……."

"저 더 이상 못 살겠어요."

툭.

못내 그에게 제대로 닿지 못한 손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내내 상대를 바라보던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눈빛을 애써 진정시키려 두 눈을 꾹 감았다 뜬다. 흐리게 번지던 시야가 다시 선명해진다.

김이서를 살게 하는 것은 쉽다. 늘상 죽는 일을 생각하며 존재할 뿐이지만 어쨌건 고작 살아남으라는 타인의 말 한마디만을 삶의 이유로 삼아 여태 살아남은 사람이다. 비록 그런 삶에 남은 것이라곤 비참함 뿐일지라도……. 하지만 너를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너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 수가 있는 거야? 내가 어찌해야 너의 유일한 중력이 되어 너를 이 지구에 묶어 둘 수 있는 건데?

그런 생각의 끝에 작게 헛웃음을 흘린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김이서.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그런 거 못 해. 그런 재능 따위 내게 없어. 배운 적도 없고…….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 목숨의 경중이 당신에게 달려 있노라고 말하는 것 뿐인데. 내가 어떻게 나의 이기심만으로 너를 살릴 수가 있겠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바닥으로 툭, 툭 낙루하기 시작한 눈물을 무시한 채 김이서는 양손을 사유현에게로 뻗었다. 곧 네 목을 감싸듯 너를 끌어안는다.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작게 떨리는 숨만을 뱉어낸다. 긴 침묵 후에 나오는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진다.

"……원하신다면요. 저는 언제든 함께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유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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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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