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란 이름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To. 메르
고래에게는 눈물샘이 없다.
고래만이 아니라 해양 생물 대부분에게는 눈물샘이 없다. 눈물은 눈을 보호하기 위한 존재다. 지방성 물질을 눈에 두른 해양 생물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생명체의 몸은 기능으로서 구성된다. 쓸모없는 기능은 세대를 거듭해 소멸한다. 눈물은 살아남은 기능일 뿐인데, 인간은 그것을 슬픔의 증표로 혼동한다. 그러면 울지 못하는 고래는 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전 속으로 자주 울어서요. 저보다 당신이 더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이 운다고 약한 걸까요.”
“보통은 울면 약하다고 하는데, 다른 의견입니까?”
“울지 못하는 사람이 더 약할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바친 첫사랑과 이별하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 제 성격에 마주하기 어려울 것은 각오했다. 책임지기 위한 선택이었으니 도망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동기화된 감정이 각오 이상으로 서글프다고 할지라도.
무너져버린 네 무릎 아래 여전히 찰랑이는 파도 사이로 네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흐르는 눈물방울들이 바다에 떨어져 조금씩 네가 깎여나갈 것만 같다. 네 첫사랑의 끝은 이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대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게 둘 순 없다. 연결된 손 정도로 네가 사라지지 않도록 막을 수 없어 옆자리에 함께 무릎 꿇고 앉았다. 발 담그기 전 젖지 않기 위해 걷었던 밑단은 소용없게 되었다. 시린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이 아직 남아있음이 감사했다. 추위를 아는 사람만이 온기를 전해줄 수 있고,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위로해 줄 수 있다.
“마음 편할 때까지 울어요….”
그 말 한마디가 위로의 전부인 사람은. 정말로 약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네 뒷덜미를 감싸 품에 끌어안고 날개뼈 아래 느리게 토닥인다. 이럴 때 같이 울어서 네 슬픔의 절반을 가져가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어느 정도 자란 후부터 강한 감정에 직면하면 몸이 반발했다. 예민한 천성 보호 목적 혹은 학습된 절제. 공감해 주지 못할망정 명치 부근 추를 올려놓은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이번에도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실패다. 어쩔 수 없어진 손길만이 하염없이 달랜다.
그러다 사람의 온기만으로 버틸 수 없을 만큼 차가워질 때, 어깨 조심히 감싸고 일으켰다.
“입술이 푸릅니다. 그만 가야 해요.”
마지막의 마지막 작별. 첫사랑과의 이별 후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여태 붙잡고 있던 손을 끌어 다시 뭍으로 올린다.
*타 캐 역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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