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짝사랑을 위하여
To. 메르
고래가 내는 평균 주파수는 12~25Hz.
52Hz 고래의 말은 다른 고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52Hz 고래가 가진 외로움은 운명이다.
외면은 언제나 단정해야 한다는 가풍 아래, 예민한 천성을 자극할 요소들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아온 지난날. 단단하게 세운 방패막 뒤에서 고요를 지키려 했던 그 인간은,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순덩어리였다.
이상은 현실의 결핍이었고, 꿈은 실현 불가능한 명제였다. 허상을 좇으며 살아온 시간, 그 끝에는 허무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만을 좇았던 거짓된 삶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텅 빈 삶을 돌이켜 후회하기보다,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눈을 감으면 영원한 휴식이 찾아올 것처럼 편안했다.
“바다를 보러 갈 생각 있습니까.”
메르는 바다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인어의 모든 것인 그 바다는 고래에게도 의미가 깊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함께 바다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뜻은 없었다. 메르가 바다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줄도 당연히 몰랐다.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이 흔한가? 두려워할 줄 알았다면 제안하지 않았을 거다. 유찬은 남을 인도하되, 강요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자신 역시도 현실에 순응하는 인간이었다. 처음은 당황했지만, 머지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유찬 또한 사랑하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므로.
한 사람의 세상을 무너뜨리게 될 줄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피할 수 있는가. 끝까지 현실을 외면한 자신은 남의 세계를 뒤흔들 자격이 없음에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간단히 도망칠 수 있는가.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자신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의도치 않게 절박한 내면까지 부추겼다면 더욱이.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책임을 다했다고 비겁하게 변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손을 잡아 오는 네 용기는 끝까지 그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고작 손에 닿는 온기 하나로 세상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고, 그러지 못했고. 그러니 적어도 당신은….
11월의 바닷바람은 살갗을 에릴 만큼 차갑고, 눈물이 마를 만큼 시리다. 지구와 달의 애틋한 중력 아래 묵묵히 부서져 온 파도가 마음까지도 일렁인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는 고래의 고향이 있고, 인어의 사랑이 있겠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두고 뭍을 헤매는 중이겠다. 두려운 것과 마주하도록 부치기게 된 상황에서 어떤 반응일지 몰라 긴장한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두려움이 전이되어 네 감정을 뺏은 것이라면 좋겠다. 네가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앞지르는 걸음. 불안해진 손에 힘 들어가는 것도 잠시. 미소를 마주하고서야 안도한다.
“바다, 들어가 봐도 됩니까?”
긴장했던 호흡이 돌아온다. 올라가는 입꼬리는 미소에 화답한다.
“그럼요. 들어가도 됩니다.”
설령 헤엄치고 싶다고 말해도 함께 하는 것이 제 책임이다.
“우리 신발부터 벗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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