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미츠]정말 내가 좋아?
*캐붕ㅈㅇ
*포타에 올렸던 거 펜슬에도 백업
카라쨩은 정말 내가 좋아? 그렇게 말해오는 얼굴이 예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마 정색을 하고 한 대 후려쳐줬을 텐데.
여느때와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적어도 오오쿠리카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세안을 한다. 치장을 마치면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거기서 자신의 사랑스러운 이를 만난다. 간밤 꽤나 울린 터라 아마 지금도 여기저기가 나른하고 둔통이 있을 텐데도, 그는 일절 그런 게 있다는 티를 내지 않으며 밝고 상냥한 웃음을 지은 채로 바쁘게 부엌과 식당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우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다. 출진이 정해져있는 이들은 삼삼오오 저들끼리 모여 출진을 하고, 원정을 나가는 이들도 속속들이 자리를 비운다. 내번당번들은 알아서 적당히 도구를 꾸려 밭이며 마굿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오늘, 오오쿠리카라는 비번이었다.
최근에는 무언가 일정이 주어지는 것보다 비번인 날이 많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혼마루가 발족한지도 만 3년. 그 동안 남사의 수도 꽤나 늘어, 필요한 일을 모두 분배하더라도 남는 남사가 생길 정도였다. 거기에 더불어 오오쿠리카라는 수행도 마쳤고, 연도도 최고였다. 내번을 수행하면 늘어난다고 하는 능력의 수치들도 전부 끝을 찍었다.
그랬기에 아주 가끔 주어지는 출진이나 원정, 연련이 없는 이상은 딱히 자신이 나설 일이 없었다. 좋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몰아치는 지루함을 해소할 길이 없다는 게 흠이었다. 아직 쌓아올릴 연도가 남은 츠루마루는 그런 오오쿠리카라를 보고는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놀라움이 없다면 차라리 연도가 낮은 게 낫겠군!'하고 외쳤다. 지금만큼은 그런 츠루마루에게 동의한다.
다시 한 번 새어나오는 하품을 물어죽이며, 오오쿠리카라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켠 채 큰 방으로 넘어왔다. 할 일이 없어 무료하다보니,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 거면 나한테 오지, 하고 조금 씁쓸하게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얼핏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지인이자 연인,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오오쿠리카라와 마찬가지로 이 혼마루에 꽤 일찍 현현한 남사였다. 그랬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수행도 마쳤고 연도도 끝까지 찍었다. 내번으로 올릴 수치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바빴다. 부엌당번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남사가 늘어도 요리나 가사를 솜씨좋게 할 줄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겨우 늘어난 몇몇으로도 백 여명이 넘는 남사들의 요리를 준비하고 넓은 혼마루를 관리하는 것이 벅찼다. 가끔 오오쿠리카라도 가서 돕다가 진이 빠질 정도였다. 그랬기에 쇼쿠다이키리는 자신처럼 한가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하지 못 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팔을 바꿔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던 오오쿠리카라가, 큰 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타도들의 뒷편에 털썩 앉았다. 너 요즘 자주 어울리러 온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를 울리는 이즈미노카미의 말을 모르는 척 흘러넘기던 그의 시선이 커다란 텔레비전의 화면에 머물렀다. 한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 그리고 흘러나오는 대사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뭘 보는 거야..."
"한 낮의 드라마."
"막장이잖아..."
"그게 재밌는 거라고!"
도대체 누가 이 시꺼먼 남사들 사이에 막장드라마의 재미를 퍼트린 걸까. 미다레나 카슈인걸까. 아니면 그나마 이런 문물에 통달한 자신들의 주인? 이제 와서는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도, 오오쿠리카라는 결국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할 일도 없는데 이런 것 좀 본다고 딱히 문제는 없겠지.
주부들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로만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여기 있는 남사들은 몇 백 년 인간들과 어울려 살며 오만 이야기를 접해 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실화보다 자극적일리도 없다. 놀랍게도 언제나 현실은 가상보다 가혹했다.
라이벌인 여자를 없애기 위해 옥상에서 밀어붙이는 다른 여자를 보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주인을 두고 부인들이 암투를 벌였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다른 남사가 그 이야기를 이어받아, 이번에는 아리따웠던 시종을 두고 친척끼리 더러운 물밑 다툼을 벌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자리는 금세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이야기로 가득 찼고, 그 와중에 어중간하게 끝나버린 드라마는 광고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어이, 오오쿠리카라. 넌 뭐 아는 거 없냐?"
"하아. 쓸데없는 것을."
"너네 전 주인도 꽤나 화려하지?"
"알 바냐. 그런 것에 관심없다."
"어쭈."
"애초에 사랑때문에 숙적을 해치운다는 그 발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만. 그런 일을 할 시간도 정성도 없어."
어딘가 질린 듯한 오오쿠리카라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방 안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적지 않은 눈동자가 모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쿠리카라의 어깨 너머였다.
삽시에 쏟아진 시선에 당황한 오오쿠리카라가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딘가 당황과 초조함, 슬픔에 젖어든 금색의 외안과 마주하고 말았다.
한 손에 빨랫감을 가득 든 채 문턱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던 쇼쿠다이키리가, 머쓱하게 웃으면서 큰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 빨랫감을 내려 놓았다. 산더미같은 빨랫감 안에서 자신의 것을 고른 남사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어딘가 어색해진 연인들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쇼쿠다이키리 뿐이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이 방에 들어온 이후부터 어딘가 분위기가 바뀐 쇼쿠다이키리를 이해하지 못 하고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까 아침식사 시간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물러난 다른 남사들도 신경쓰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단 제 빨랫감도 골라낸 오오쿠리카라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딘가 복잡하게 저만 가만히 내려다 보던 쇼쿠다이키리가 자신의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뭐야.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억지로 꿀꺽 삼킨 채, 오오쿠리카라가 한 번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기, 카라쨩."
"어."
"...카라쨩은 정말 내가 좋아?"
"...뭐?"
"나, 나를 정말 좋아하는 게 맞아?"
지금 제가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일까.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것을 물었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귀와 볼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그럼에도 대답은 꼭 들어야겠다는 듯, 촛불을 붙인 듯한 눈은 결의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커다란 슬픔과 두려움, 작은 체념도.
그 순간 오오쿠리카라는, 온 몸에 크게 힘을 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에 몸을 맡길 것만 같았다. 제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에 힘을 주느라 빨랫감이 구겨졌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제 눈 앞에 있는 얼굴이 그토록 아름답고 곱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오오쿠리카라는 있는 힘껏 주먹을 뻗어 그 얼굴을 후려쳤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만큼 밉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미츠타다."
"..."
"나는..."
"...카라쨩..."
"나는...네가...나의 사랑을, 의심할 거라고...생각한 적이...없..."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것은, 몸에 스며든 분노가 슬픔으로 전환되는 것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라도 더 입을 여는 순간 자신은 못보일 꼴을 보일 것만 같았다. 목소리는 잔뜩 떨렸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픈 꼴은 많이 봐 왔다. 기나긴 도생에서 이별을 겪은 적도 많았고, 경애하는 주군의 죽음을 겪은 적도 있었다. 제 앞에 있는 소중한 칼과 이별했을 때도, 그 칼이 타지에서 불에 타버렸을 때도, 그리고 이 곳에서 기적같은 재회를 했을 때조차도-오오쿠리카라는 이렇게까지 서러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어때. 그가, 다른 이도 아닌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는 칼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는 것에 금세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세상이 무너진다. 여태껏 쌓아올리고 디뎌왔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느낌이었다.
그런 오오쿠리카라를 알아챈 것인지 쇼쿠다이키리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바쁘게 뻗어나온 손이 오오쿠리카라를 끌어안고 등을 도닥였다. 미안해, 미안해 카라쨩. 내가 잘못했어. 내가 바보였어. 의심하지 않을게. 언제나 믿어. 정말이야. 마치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귓가에 낮게 내려앉는 그 목소리에 조금 안도를 느낀 제가 우습다. 그러나 오오쿠리카라는 그런 저를 비웃기 전에, 어떻게든 팔을 뻗어 커다란 몸을 마주 끌어안아야만 했다.
진정된 오오쿠리카라가 쇼쿠다이키리의 품에서 떨어져나왔을 때, 쇼쿠다이키리의 눈동자를 잠식하고 있던 슬픔과 두려움은 사라진 상태였다. 남아있는 것은 미안함과 걱정, 그리고 그것을 전부 상회하는-애정.
갈색 피부임에도 잘 보일 정도로 빨갛게 물든 오오쿠리카라의 눈가나, 열이 뜨끈하게 오른 볼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도닥거리는 손길에 겨우 숨이 쉬어진다. 그제서야 오오쿠리카라는 제가 약간이나마 불규칙적인 숨을 쉬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째서 그런 것을 물어보았느냐는 오오쿠리카라의 질문에, 쇼쿠다이키리는 어딘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카라쨩이, 사랑 때문에 숙적을 해치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으니까. 만약 내가 다른 이에게 흔들려도, 카라쨩은 나를 놔주는걸까 해서."
"-네가 원한다면."
"카라쨩."
"미츠타다. 네가 원한다면...나는 언제나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거야."
"카라쨩."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뒤의 나는 필요없어."
낮고 느릿하게 나오는 그 목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거운 진심을 담는다. 이 말에, 거짓은 일절 없다.
오오쿠리카라는 사랑을 위해 숙적을 해치울 생각 따윈 없다. 그것을 행할 시간도 정성도 없다. -미츠타다가 원한다면 모든 것을 들어주고 싶었다. 만약 그것이 자신과의 이별이며, 다른 이와의 사랑일지라도. 그리하여 미츠타다가 행복하다면, 오오쿠리카라는 그 뒤에서 피눈물을 흘릴 자신의 사랑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오오쿠리카라의 말을 들은 미츠타다가, 어딘가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팔을 뻗어 오오쿠리카라를 끌어안았다. 욕심을 좀 내, 바보야. 그렇게 타박하는 말에 오오쿠리카라는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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