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5]

PARALLEL WORLD by I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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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은 도영의 말에 누가 들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선 기우가 흐믓한 얼굴로 시현과 도영을 쳐다보고 있으면서 갔다오라고 친히 이 둘의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그 순간 숨고 싶은 심정이 한가득 몰려드는 느낌에 시현은 그대로 한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 이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야…. 등떠밀려 가는 상황에 의문이 든 시현이 궁금증에 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근데요….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거에요?”

“현시현씨껜 죄송하지만 뒷조사 좀 했습니다.”

“네? 뭔 조사요…? 뒷조사? …제 뒷조사요?”

듣는 사람은 경악스러운 상황인데 정작 말한 당사자는 참 뻔뻔한 얼굴로 사과까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낸다. 사람이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구나. 경악에 젖은 얼굴로 도영을 바라보니 그저 시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럼 그냥 물어보지 그러셨어요….”

“습관이다 보니.”

아니,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사람 뒷조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아무튼, 그냥 대놓고 물어보세요. 뒷조사 하지말고요. 이거 당하는 사람 무지무지 불쾌하다구요.”

“참고하도록 하죠. 그럼 오늘 데이트는 가실 건가요?”

이렇게 된 거 어쩌겠나. 사람들 시선은 이미 몰려있고, 기우는 이미 도영을 시현의 애인으로 알고서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상황인 것을….

“네. 이렇게 된 거 가야죠 어떡해요. 사장님, 저,”

“어어~. 갔다와.”

시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기우에게 해탈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하며 카페 밖으로 나섰다. 힘없는 걸음으로 터덜터덜 카페 밖으로 나온 시현은 도영이 말한 데이트고 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희 진짜 오늘 데이트 하는 거에요?”

“네. 오늘 수련그룹에서 파티가 있거든요. 아, 현시현씨는 어떤 것일지 아마 아실 겁니다.”

“근데, 제가 거기 왜… 가는 거에요…?”

“입소문은 거기만큼 잘 퍼지는 곳이 없죠.”

도영의 웃는 모습에 잘생겼다….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그 웃음이 무섭게 느껴지는 시현이었다. 나 잘 선택한 거 맞겠지…?

-

도영은 시현을 차에 태우고선 수련 백화점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 이게 맞는 건가…? 긴가민가 하면서 따라가는 시현은 그저 조용히 눈치만 보면서 도영만 따라갈 뿐이다.

“저기 박도영씨, 이래도 괜찮은 거에요?”

“뭐가 말이죠?”

“아니 그냥…. 불안불안해서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저 제 옆에 가만히 서 계시는 게 오늘 현시현씨가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뭐야. 그냥 장식용처럼 서있으면 된다는 건가? 시현은 알파, 오메가들에게 이런 취급을 많이 당해보았던 터라 도영이 이런다고 해서 크게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기분이었다.

“아참, 현시현씨. 줄 게 있어요.”

“네? 뭔데요?”

“계약서요.”

“계약..서요..?”

“네.”

주차를 마친 도영의 입에서 시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시현이 옆에서 놀라든 말든 도영은 제 안주머니 속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시현에게 건넸다. 계약서라고 적힌 종이에는 간단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 시간부로 갑 박도영, 갑 현시현은 애인 대행을 시행한다.

갑 박도영은, 갑 현시현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다.

갑은 얼마든지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상대방이 납득 해야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강렬한 문장이었다. 근데 이상한 점은,

“이 계약서엔 을이 없네요?”

“애인 사이에 갑과 을이 필요한가요? 전 그런 연애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 네…. 맞긴 맞네요.”

시현은 생각보다 도영의 생각이 바르게 잡혀있다는 것에 놀랐다. 보통이면 갑과 을이 나뉘어져 있을 텐데 이 계약에는 갑과 갑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다가 얼마든지 계약 해지도 할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도영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현에게 맞춰주고 있는 듯한 계약서였다.

“근데, 박도영씨. 얼마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건….”

“제가 하든지 현시현씨가 하든지 둘 중 하나가 하면 끝나는 거죠. 물론 납득이 되야하는 이유여야 하지만요.”

“그럼 돈은,”

“그대로 가지셔도 됩니다. 제가 계약금을 현시현씨에게 주는 거니까요. 줬다 뺐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대박. 나 어쩌면 땡잡은 걸수도…! 이런 알파가 세상에 존재하겠냐만 시현의 눈 앞에 이런 알파가 로또처럼 나타났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일이!! 시현은 속으로 많이 놀라면서도 기쁨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 시현은 돈이면 눈이 돌아가는 뼛속부터 자본주의의 노예였다.

“박도영씨. 저 열심히 할게요!”

도영은 시현의 맑고 고운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며 다소 황당한 눈으로 시현을 쳐다보다가 어이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시현은 도영의 의외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저, 박도영씨….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오바하는 거라고 생각 안 들어요?”

“중요한 파티라서요. 이렇게까지 해야 뭐라도 소문날 것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여긴 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우리 박도영씨는 애초부터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래…. 곱게 올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었지.

수련백화점 내에 있는 유명 브랜드는 한 번씩은 다 돌아보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쳐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도영의 광기가 돋보이는 이 쇼핑현장 때문이겠지.

“하나 더 입어보시죠. 아까 그걸로 한 벌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정중한 모습으로 직원에게 부탁하는 도영의 모습은 정말 말로만 듣던 재벌같아 보였다. 그런데 왜 전화매너는 왜 그럴까…. 시현은 심란한 표정으로 또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근데 나 진짜 이래도 돼…? 어디 잡혀가는 거 아니지? 자본주의에 못 이겨 한다고 하긴 했다만 충동적인 선택이 아닐까 하는 시현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기 있습니다. 이것도 고객님께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직원은 시현에게 옷을 가져다 주면서 형식적인 말을 내뱉었다. 물론 시현은 직원의 저 말을 믿지 않았다. 직원에게 건네받은 옷을 들고 어색하게 서있자, 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 번 입고 나와보시죠.”

“네? 네.”

여기 오기 전에 도영은 시현에게 어색하게 굴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했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시현의 모습은 뚝딱거리는 호두깎이 인형처럼 뻣뻣한 모습이다. 도영은 그런 시현에 불만을 갖기는 커녕 저럴 줄 알았다는 듯 재미있는 눈빛으로 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되는데에-! 내가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아니, 저 인간은 그럼 요정인가? 옷을 왜 자꾸 입어보래. 불편하기만 하구만.

탈의실 안에서 참아왔던 불만을 쏟아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시현은 손에 들린 회색 정장을 울상인 얼굴로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이건 과거의 내가 불러들여온 결과라고 속으로 되세기며 말이다.

- 촤락.

“어때요?…. 이상하지 않아요?”

시현이 어색한 몸짓으로 도영의 앞에서 빙그르르 돌면서 모습을 보여주자 도영은 시현에게 답을 하는 대신 주변에 있던 직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거랑 아까 크림색 수트로 하죠. 다른 건….”

그냥 주시죠. 흘러나오는 도영의 말에 시현이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거 한 벌당 얼만데!!! 탈의실 내에서 이미 가격표를 다 확인한 시현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움이 점점 배가 되어 또 다시 속이 더부룩 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브랜드관을 나올 때까지 시현에게 짐하나 들지 않도록 도영 자신이 쇼핑백들을 두 손 가득히 든 채 돌아다녔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 둘에게 쏟아지게 되었다. 누가봐도 알파처럼 생긴 사람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조합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뿐더러, 저렇게 매너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알파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아주 좋은 관심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이런 관심은 태어나서 처음, 아니, 그들에게 받았던 이후부터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현은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벌써부터 이러는데 나중에 가면 어쩌지….

그런 시현의 이상현상을 눈치챘는지 도영이 시현의 옆으로 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시현을 차단 시켰다. 그리고 작게 사과를 하며 옆에 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갈때도 시현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다.

이 베타에겐 아직까진 무리였나보다. 도영은 약간의 공황발작 형태를 보이는 시현을 자세히 관찰할 뿐이다. 역시 괜히 데려왔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현시현씨, 심호흡 할 수 있겠어요?”

도영은 시현의 등을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내려주며 시현의 호흡이 고르게 쉬어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여기서부터 이러는데 이따가 본게임에 들어가서는 시현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 외의 변수가 도영을 괴롭혔지만 지금은 제 눈 앞에 있는 베타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게 우선이기 때문에 도영은 쇼핑백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시현을 안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시현은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을 쉬는 도영의 템포를 따라 숨을 천천히 따라쉬기 시작했고, 이내 진정이 됐는지 도영을 천천히 밀어냈다.

“이, 이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네. 정말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진이 빠진 얼굴을 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시현은 그 누구보다 괜찮아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도영은 그런 시현을 보며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미련한 건지, 멍청한 건지. 시현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정말 괜찮은 것인지 재차 확인했다.

“그럼 이따 수련호텔 연회장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갈 수 있어요.”

결연한 표정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시현의 표정은 전장에 나가기 직전의 장군처럼 보였다. 이게 저런 표정이 나올 정도인가. 도영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지만 시현이 괜찮다고 하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라고 거기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손만 잡아주세요. 당장 거길 빠져나갈 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나름 도영의 배려가 담긴 것 같은 말에 시현은 역시 이 사람 제법 좋은 사람이잖아!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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