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스

[이안] 발견

0.5기

귤차 by 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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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1 작성(추정)

 

1.

발견되었을 때.

 

 

2.

데코르는 리안의 귀족 가문이었다. 카스토드 시대부터 내려온 이름이라고 하면, 그건 믿을 수 없었고 다만 오래된 흔적만은 분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데코르는 리안이 영지의 이름으로써 불리기 전에도 지배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 낡은 기반이 어떻게 그토록 길게 이어질 수 있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아무튼 이안 데코르는 편리한 태생을 부여 받았다. 이안은 높은 데 서서 어린 눈으로 리안의 침묵을 헤아리곤 했다. 리안은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종종 날것의 야만이 꿈틀거렸다. 리안의 영주 레벤 리드는 통치차로서 뛰어난 수완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그럽지는 않았다. 이안은 고결한 양 서 있는 레벤의 내부로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했다.

레벤이 다스리기 시작한 이래 리안에는 유독 역도들이 들끓었다. 대체로 적발된, 이라는 수식이 붙은 자들이었는데 영지의 생활은 더욱 안정되었지만 태워내는 불길은 조금 더 잦아졌다. 나는 고요한 편이 좋아. 레벤 리드는 방 안에 들어차 있던 적막을 잠잠히 갈라냈다. 30대 초반의 젊은 영주는 어린 아이를 벌써 어른으로 대할 줄 알았다.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야. 레벤은 제시해주는 것 이외에 이안이 할 수 있을지 여부를 묻지는 않았다. 이안은 순종처럼 수그러졌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래서 이안 데코르의 삶은 쭉, 처음 대답했던 대로 레벤이 원하는 바를 수행하는 형태로 그려졌다.

 

나를 속이지는 마.

 

그리고, 덧붙여졌던 명령에 대해서도 충실히, 어긋나는 일 없이.

그리하여 이안 데코르는 주인에게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3.

이건 너를 아프지 않게 할 독이야.

 

아버지는 다정으로 말했다. 이안은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본질에서는 비껴가지 않았음을 이해한다. 이안은 타들어가거나 오한을 느끼거나, 마비된 듯이 저릴 때면 몸 안으로 퍼지고 있을 독을 상상해보곤 했다. 몸 안은 온통 붉을 뿐이고 검거나 희었거나, 색을 알 수 없었던 모든 독들이 붉은 데 섞여 들어갔을 때면 이안은 꿈조차 꾸지 않고 잠들었다. 귀족 가의 마법사들은 조금 더 극성으로 내성을 만들어두었다. 번듯한 도구일 수 있게. 마법사는 통제되어야 해. 데코르의 차기 가주는 동생에게 뿌듯한 양 일렀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데코르가 거느리고 있던 수많은 마법사들은 본디 영주의 아래에 놓였을 이들이었지만, 데코르는 한사코 권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들었다. 영주가 가정할 수 있는 위협은 데코르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이안은 중재하기 위한 역할로 알맞게 끼워 맞춰졌다.

이안은 데코르의 예속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된 볼모였고 양자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어냈다. 레벤 리드의 마법사 이안 데코르는 어린 나이부터 영주의 뜻을 먼저 읽고 행동해냈다. 이안은 잘 길들여진 종으로 영주의 길을 가지런하게 정돈해내곤 했다. 레벤은 발 아래로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곳으로 내디디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르는 모습을 확인하려는 듯이. 데코르에게 주어진 지나친 권리는 데코르 저택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을 통해서 자주 구체화되었다. 데코르의 특혜는 지나칩니다. 레벤에게 곧게 향하거나 또는, 통제되지 않은 마법사는 위험해. 왜 그들을 거느리게 두시는 거지? 같이, 웅성거리는 소리. 하지만, 데코르의 차남은 영주님께 신임을 받고 있잖나. 흐려지는 말끝으로 단절되는 소문들. 데코르는 위태로운 영광을, 이안을 통하면 움켜쥘 수 있는 것인 양 행세했다.

이안 데코르는 리안의 영주 레벤 리드에게 종속되어 있었고 그래서, 레벤 리드가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냈다. 레벤은 종종 이안이 뒤따르고 있는지, 뒤돌아보며, 확인했고.

레벤 리드는 이안 데코르를 신뢰하지 않는다.

 

 

4.

레벤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대륙으로 가겠다고.

예.

돌아오지 못한다면?

 

레벤은 돌아오지 않는다, 고는 가정하지 않았다. 레벤은 고민조차 될 수 없는 일인 양 무심하게 이안을 봤다. 예언자의 무리에 동행하고 싶다는 요청은 뜻밖의 일이었지만, 레벤은 허락하는 순간만을 기다렸던 것과 다르지 않은 차분함으로 이안을 대했다.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던 물음 뒤로는, 다시 레벤의 질문이 이어졌다.

 

너는 예언을 믿지 않지.

예.

너는 내게 거짓을 고하지 않아.

예.

 

이안은 레벤이, 신뢰를 말하는 순간 잘게 쌓이는 독을 생각한다. 이제는 감각할 수 없는, 몸의 가장 내밀한 곳들마다 쌓여 있을 흔적들. 이안은 레벤에게 그처럼 쌓여 있을 층을 안다. 이안 데코르는 레벤 리드에게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이안은 단 한 번도, 레벤이 신뢰를 가질 수 있게끔 치장하지 않았다. 변덕과 충동의 결들. 레벤은 이안의 절차에서 많은 것들을 묻지는 않는다. 그저 가늠하다가, 이따금 재차 확인을 할 뿐이었다. 이안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레벤 리드가 허용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물음. 주인에 대한 시험.

 

너를 믿지 않아.

 

레벤은 이번에도 이안의 도박을 허락해주었다. 점점 더 견고해지는 의혹들로, 의심으로. 도리어 그것으로 보장될 수 있는 기반으로써. 레벤은 이조차 단지 변덕일 뿐이라는 걸 안다. 레벤은 느리게 시선을 돌리며 술잔으로 손을 뻗었다. ……영주에게 진상되는 술은 모두 최상읙 것들밖에는 없다. 술잔 아래에, 언젠가는 옅게 깔려 있었을 독들. 지배자를 위해서도 마련되었던 독. 술을, 독을 마실 때와 같이, 여전히 기울어지는 술잔. 이안에게 그러했듯이.

 

너는 네게 돌아갈 독이 무엇일지 알고 있군.

 

 

5.

도련님, 불이 좋으세요? 젊은 마법사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안은 천진하게 웃었다. 응, 나는 불이 좋아. 가장 뜨거운 온도를 씌워보고 싶어. 어디에요? 어디든. 젊은 마법사는 웃어 보였다. 도련님은 정말 불을 좋아하시네요. 젊은 마법사는 얼핏, 곤혹으로 웃었다. 왜, 불일까.

 

 

6.

도련님, 도련님의 물은 아름다워요. 젊은 마법사는 경외로 이안을 바라봤다. 데코르 가의 차남에게 행해지는 마법 수업은, 대개 불을 다루는 데 과중되어 있었다. 이안은 다른 원소에 대한 공부는 불을 진척시키기 위한 대목에서만 간신히 해냈다. 그러므로 그건 드문 장면이었는데, 젊은 마법사는 별안간 이안을 꼬드길 생각을 했다. 이안은 심드렁하게 몇 번을 고개를 젓다가 물을 지어냈고, 깨닫는다. 불을 이끌어냈을 때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감각. 젊은 마법사는 계속 감탄한다. 도련님, 도련님의 물은 가장 차가운 얼음도 만들어낼 수 있겠네요. 내 불은? 이안은 순진한 것처럼 물었다. 젊은 마법사는 찬찬히 생각을 헤아렸다. 젊은 마법사는 온전한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도련님, 물을 빚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지금처럼. 이안은 갸우뚱,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불은? 젊은 마법사는 애매하게 웃었다. 물을, 한 번 더. 이안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괜찮은 것처럼, 물을 빚어낸다.

 

 

7.

생각한 대로예요.

 

이안은 아주 간단히, 만들어내진 워터볼을 본다. 도련님은 뛰어난 물 속성 마법사가 될 수 있으실 거예요. 내가 물 마법사라고?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젊은 마법사는 웃었다. 사실은 알고 계셨잖아요. 마법사들은 종종 잔학으로 군다. 불은, 도련님께서 가지실 수 없는 거예요. 우리 마법사들은 누구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죠. 지극히 소모적이고 필요로 되지 않는 것일 뿐이라도 폭풍우를, 지옥을 불러내고 싶어 해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은 아니죠. 도련님에게 불이 주어지지 않았듯이. 도련님, 도련님은 얼어붙은 지상의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도련님이 부러워요.

 

 

8.

이안 데코르의 붕괴는 절망의 반대편에서 시작되었다. 여지로 마련된 것. 아니지, 그건 내가 가장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안은 난처하게 이야기를 다듬는다. 내게 주어진 것. 내게 주어지 않은 것. 외면하지 말아요, 도련님. 속삭이는 목소리.

명명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 이안 데코르는 물 마법사의 호칭을 달지는 않아도 되었다. 이름을 붙여주었던 입술은 영영 다물렸다. 이안 데코르는 발견되지 않는다.

 

 

9.

나단 던스트는 통각이 무뎠다. 이안은 나단이 몇 번인가 시비에 휘말리는 과정을 보며 웃었다. 너는 독은 필요하지 않겠네. 나단은 붉고 푸르게 얼룩진 몸을 단단히 싸매고 단단히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아파? 나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단에게 향해지는 시비는 대개 장난스럽다가 문득 핏자국으로 남곤 했다. 그나마도, 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으로 그칠 수 있었던 데 이안 데코르의 비호가 있었음을, 나단 던스트 본인도 이해하고 있다. 본인부터가 그저 당하고 있을 성격도 아니기는 했지만. 나가 봐. 나단은 드물게도, 발길을 돌리기를 주저했다. 앙 다물린 입술. 이안은 들여다 보듯 나단을 봤다. 나단은 별안간 허물어졌다가, 다시 단단해졌다. 테오는, 잘 지내고 있었나요? 이안은 웃어보였다. 나단은 며칠씩 자리를 비우게 될 때면, 어쩌지도 못하고 동생의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의 기다림조차도 더는 버거운 듯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단은 고개를 숙여보였다. 나단 던스트의 종속은, 테오 던스트를 뿌리로 한다. 마지막으로 주어져 있는 것. 이안은 방 문이 닫혔을 쯤,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눈.

……리안의 고요는, 풍요는 주민들의 공조로 성립되었다. 던스트 가에서 일어났던 살해 사건은 정갈하게 여며졌다. 던스트 부부의 이웃들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리안은 가끔씩, 잊히지 않도록 비집고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대한 묵인으로 균형을 갖추었다. 지배자와 그 주민들 사이의 공조는 견고하게 짜여 있었다. 부부는 아이들을 두고 죽었다. 던스트 부부는, 예언처럼 예비되었던 일을 통해 리안엑서 지워졌다. 이미 새겨졌던 반골의 자국은 끝내 칼끝으로 들이닥쳤고, 레벤은 슬그머니 손을 물려둔다.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기어이 일어나야 했을 일이 마침내 일어났다는 듯이 지켜보며. 단 아이들만은 살아남을 수 있는 땅 위로 배치해두었다. 레벤은 던스트의 어린 아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안이 막연하게 가져왔던 관심보다 더 뚜렷한 형태로 부풀려졌던 흥미는, 어쨌든 던스트 형제를 살려냈다. 그 애는 제게 주세요. 레벤 리드는 이안 데코르를 본다. 그 애? 이안은 음, 사이를 두었다가 웃었다. 그 애들을 제게 주세요. 제가 잘 맡을 수 있을 겁니다. 레벤은 이안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네가 키워내야겠지.

이안 데코르는 이제 불을 발견해냈다. 움켜쥘 수 있는.

 

 

10.

이안, 이안의 물은 바다를 본 딴 것 같아요.

 

테오 던스트는 웃었다.

 

 

11. 

이안 데코르는 비로소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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