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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신성식은 욕심이 많다. 소위 말하는 식욕이나 물욕 같은 게 아니다. 내려놔야 하는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 버리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중에 체면과 자존심도 분명히 존재하겠지. 사실 체면이야 버리자면 버릴 수 있는 것이 신성식이지만, 자존심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자신감과는 또 다른 결의 이것은 성식의 치기 어린 마음에 중요한 것 중 하나라서….
“자존심 없인 시체인 사람들이 살기 위해 자존심을 굽혀야 한다니 아이러니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성식은 작게 웃었다. 가만히 시선을 둔 태랑을 본다. 빛 한 점 들지 않게 꽁꽁 싸인 검은색 눈이 닿은 곳을 함께 아무 의미 없이 본다. 그 정도의 거리감이 익숙했다.
천태랑과 신성식은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다르다. 다른 것이 더 많은 둘 사이에서 자존심, 그 의미 없는 것 하나가 같아서 성식은 태랑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굳게 잠긴 성문 하나. 그 앞에 놓인 작은 꽃밭 하나. 그 정도의 거리감에서 성식은 생각했다. 그 자존심이 분명 이 성을 무너트릴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자존심이라는 역병 하나가 성안을 초토화하는 동안에도 이 문은 열리지 않을지 모른다고. 그게 참 안타깝다고. 꽃밖에 없는 좁은 공터에 선 사람이 생각했다.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제가 그렇게 꺾이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술 한 잔 필요한 건 어쩌면 태랑 씨일 것 같은데요.”
신성식과 천태랑은 다르다. 그러면서도 비슷하다. 솔직하지 못한 인간들의 공통점 사이에서 한 가지 다른 점은, 신성식은 영 생각이 깊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언제나 현재를 살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꾼다. 노을처럼 밀려드는 외로움이나 고독은 아침 해가 뜨는 순간 사라지고, 구겨지듯 다가오는 죄책감과 상심은 제멋대로 툭툭 털어 펴고 마는 그런 인간이다. 그래서 신성식은 유독 생각이 많은 사람들과 영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아내처럼…….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스스로의 좌절과 고통을 잊고자 하는 사람은 신성식에게 기만당하곤 한다. 성식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랑을 보며 약간의 측은함을 느낀다. 그것마저 기만이다.
(*타래 줄이기에 실패한 링크입니다…편하게 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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