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놀이와 유령 소동

유진 by bamnamu
11
0
0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네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는데.

유령은 수많은 곳에서 생겨난다. 탄생하거나 혹은, 만들어지거나. 지금은 마법사가 실재한다면 유령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참이지만…, 뭐, 어쨌거나.

미안하게도, 너는 미안할 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네 경험을 듣고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령의 장난. 다만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괴담 같은 것은 아니다.

예전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고, 거기선 유독 ‘유령의 장난’이 자주 일어났어. 이를테면,

-유진, 일어나. 여기 귀신이 있어!

-저기 다락방에서…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런 일이라거나.

깊은 밤에 흔들어 깨우는 손을 느끼면, 정작 불려진 이유는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니었지. 아무리 세심히 관리하더라도 오래된 집의 다락방에는 삐꺽이는 바닥이 있기 마련이야. 어린애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군데 군데 구멍이 뚫렸다면 더욱 그렇지. 놀다가 열어두고 잊었을 창문으로 스며든 바람에 빈 공간이 울리면, 어린애들은 저기 귀신이 있는 게 아니냐며 어둠을 가리키고 울어버리기도 해.

옛 집의 다락방은 그렇게, 이따금씩 유령 소동의 무대가 되곤 했었다. 호들갑을 떨던 동생들이 유령의 정체를 확인하겠다면서도 저를 앞세우면, 유진은 긴 한숨을 몰아쉬고 휴대등을 들었던가. 다락방 문 손잡이를 돌리고 나무로 짜인 문을 밀고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휴대등의 나지막한 빛 너머로 어둠과, 더욱 짙은 어둠이 그리는 그림자의 중첩. 간혹 그중 어느 것이 괴물을 닮았다 하더라도, 대단히 놀라고 겁내지 않은 것은 믿음직한 맏이인 탓이 아니었다. 애들에게 들려주려고 찾아본, 그림자의 속성과 생성 원리를 아는 탓이었지만...

지금은 어떨까. 낯선 공간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벽을 보면. 탁자나 선반, 그 위에 놓인 물건들에서 뻗었을 그림자는 원형을 왜곡하는 모습으로 엉킨다.

밤마다 부유하는 것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그리며,옛 기억을 떠올리다, 밤마다 떠오르는 물건들까지 그 다락방에 있었다면…, 집의 동생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가. 다만 돌이켜보면 목소리의 주인인 네게는 현실의 사건이자 일상에 일어난 일이지.

조명 아래에서 은빛을 띄는 회색 머리칼. 긴 속눈썹 아래 그늘에 가려지지만, 가까이에 앉은 제게 쉬이 비치는 나른한 검은 눈. 리본을 조여 단정히 교복을 차려입은 소년을 곁에 두고 떠올린다.

그게 네가 경험한 마법사로서의 첫 번째 경험 혹은 기억. 너는 그 무렵에는 아직 그것이 네가 ‘마법사’라는 증명이라는 걸 몰랐다지만. 그런 일, 그러니까,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마법사 혹은 기이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최초의 사건. 너는 그런 것을 경험했던 모양이라고. 지나치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시작된 발현은 필연적인 소란을 불러왔겠으나, 네게는 ‘그런 일’, 말하자면, 평범한 삶에 일어난 대단히 놀라운 사건은 아니었다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흐르는 네 부모님에 관한 묘사를 들으며 생각한다. 어른이라도 무서울 게 있겠구나. 특히나 그것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의 일이라면. 다만 그분들의 염려와 걱정이나 두려움은 아이를 잃을까 하는 것이라, 어쩌면 그 애정은 네가 두려워 할 겨를이 없도록 너를 감쌌던 걸까.

어느 애정과 염려는 따스한 족쇄가 되기도 하겠으나,적어도 어느 밤, 모빌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물건들을 발견했을 네게는 그런 붙잡음이 필요했을까. 그 품과 잡은 손의, 체온을 닮은 어둠과 진동의 다정조차 너는 경험으로 알았을까.

그런 종류의 생각은, 어쩌면 네 무심을 닮은 다정에서조차 까닭을 찾고자 하는 내 억측일지 모르지만.

다만 그런 밤에 너보다 놀라고 두려워한 부모님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주제넘은 일일까. 그렇지만 내가 네 부모님이라면, 정말로 유령이 나타난 밤에 아들을 끌어안아 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거야. 내가 내 꼬마들을 데리고 기어이 다락방의 유령을 확인하러 갔던 밤이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처럼.

그러나 누군가가 네 방문을 열때, 문이 바깥에서 열어 방으로 들어오는 매개가 된다면. 네가 그림자를 타고 훌쩍 떠나는 자유에 조금 더 관심을 두는 이유가 되기도 했을까? 물론 이것도 억측이야. 나는 너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는 게 없으니까.

낯선 방에서 아직은 낯선 너를 대하며, 그러나 거리가 가까운 채 어쩌면 눈이 마주쳤을까.


니콜라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신나게 썼으니 부담없이 즐겁게 읽어주세요:)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