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테라퓨틱 일지

2055년 3월 26일

날씨 - 비 온 뒤 맑음

조강유 by 조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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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비가 와서 조깅을 건너 뛰었다. 핑계라고? 뭐 그럴지도 모르지. 일어나자마자 손에 붕대 감긴 꼴을 보고 있자니 어제 나빠진 기분이 자고 일어나서도 그대로였거든.

내가 너무 한심하고 쪽팔려서 진짜….

그래도 손목을 좀 돌려보니 내일 정도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올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굳어도 회복하는 속도는 여전해서. 손목 다 낫고 나면 단련실에 틀어박혀 있던가 해야지, 원.

아, 그러기에는 아이 돌봐야 하는 임무가 있었지.

그러고보니 어제 다짐했듯이 아이 이름을 외워뒀다. 아니, 외워뒀다고 하니 너무 의무감으로만 애를 대할 것 같잖아. 기억해냈다? 이것도 이상한데. 하여튼.

알 누마이르 윤.

짧게, 소위 말하는 애칭으로 누마.

아이는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이 시커멓고 큰 어른들 사이에서 무섭지도 않은가? 다들 친절한 사람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한 걸까? 하긴, 아이만 보면, 아니지. 누마만 보면 다들 뭐라도 쥐여주지 못해 난리니, 누마도 쉽게 마음을 푸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곧잘 사람들 품에 안겨있기도 하던데. 처음 아이 돌보라고 했다고 황당해하며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갔는지.

매번 도서관에만 틀어박혀있는 걸 그만두니까 이제는 누마 이야기밖에 일지에 쓸 게 없다.

어제부터는 기분이 워낙 바닥을 기어다녀서 제대로 끼니도 챙기지 않았더니 끼니 얘기조차 쓸 게 없군. 아침은 늘 안 챙겨 먹고 있고, 점심은 매번 빵으로 간단히 때웠었는데 오늘은 아예 건너 뛰었고. 아, 대신 저녁은 제대로 먹었다. 루카스 씨가 해주신 순두부찌개.

그러고보면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음식을 꽤나 많이도 얻어먹었다. 해주는 사람들은 또 손이 얼마나 큰 지…. 받아 먹고만 있는 게 염치 없게 느껴지기도 하다가, 또 다른 사람들도 받아 먹으니 그냥 그러려니 휩쓸리다가….아직 당당하게 뭐 해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정도는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 기준이 왜 이 모양이 됐지? 싶어지고.

하여간 여기 생활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이게 이 센터 목적이냐고.

일에 정신 팔려서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게 뭐든 '임무'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여태 주어진 '임무'를 상기시켜보면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시키지 말아라, 싶기도 하고. 오히려 여기서 주는 임무는 잡생각이 많아지는 것들 뿐이다. 자아성찰이라도 하라는걸까. 자아성찰 잘 하고 나면 가이딩 효율이라도 올라가려나.

그러고보면 항상 누군가를 상담하려고만 했지, 내가 상담받으려고 한 적은 없긴 하네. 뭐, 내가 뇌파가 불안정한 것도 아닌데 상담 받아서 어디다 쓰겠냐만은.

하여튼 생각이 많아지니까 쓸데없는 부분에까지 사고가 뻗어나간다.

이래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니까, 사람은.

아, 역시 조깅을 건너뛰는게 아니었나. 지금이라도 조금 뛰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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