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테라퓨틱 로그

2041년

두번째 스토리 미션 로그 / 공포 3504자

조강유 by 조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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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는 눈앞에 놓여 있던 종이를 들어 글자를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2041년 센티넬 대폭사 사건.

 

짧은 문장이 제목이랍시고 꽤나 크게도 적혀있었다.

그러나 정작 강유는 이 큰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많지 않았다. 2041년에 제정신을 유지한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았던 탓이다.

 

강유는 제가 2041년에 어떤 꼴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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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넷. 한참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뛰어놀고, 공부에 열을 올려야 했을 나이. 그것이 아니라면 제가 좋아하던 농구에 모든 정신이 팔려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라도 들었어야 했을 나이.

 

그러나 정작 강유의 열넷은 온갖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의 연속이었다. 까맣던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차리면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전부 고통에 절여져 있는 느낌이었다.

중독될 위험이 높은 진통제를 끊임없이 밀어 넣어도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저 그 고통을 끝내 못 이겨내고 다시 정신을 어둑한 무의식의 영역에 내던져버려야 그나마 다시 평온해질 수 있었다.

 

그때 강유는 처음으로 죽음을 바랐다.

깨어 있는 동안 느끼는 고통이 그만큼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의식을 잃으면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않기를 바랄 만큼.

 

 

그러나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던 건,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들렸던 자그마한 흐느낌 때문이었다. 그 흐느낌 속에 섞여 있던 불필요한 사과 때문이었다.

 

-형, 미안해…미안해, 아프지 마…형 내가 잘못했어….

 

들려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을 이어갈 만큼의 정신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 네가 사과할까. 네가 뭘 잘못했다는 걸까….

 

동생을 끌고 밖으로 나간 것은 저였다. 그곳에서 던전 웨이브가 터진 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였고. 거기서 처음 보는 괴생명체들이 사람을 공격하는데, 제 동생의 몸이 얼어붙은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니 굳어버린 동생을 감싸고 제 몸이 반쯤 찢겨나간 것은 오로지 제 의지였다.

 

제 의지로 한 일에 왜 동생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결국 여기서 죽어봤자 제 몸만 편해질 뿐, 동생은 평생 쓸데없는 죄책감에 잠겨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 순간, 더 이상 죽음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대로 죽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때 즈음엔, 마냥 끔찍하기만 했던 고통이 어느 정도는 버틸만한 정도로 나아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고, 그제야 겨우 울고 있던 동생을 달랠 수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뭘 잘못했어. 네가 사과할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

 

그 말만 겨우 내뱉고 또다시 곧장 의식을 잃었기에 동생의 답은 듣지 못했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녀석은 울고 있지 않았다.

 

그 이후로 동생은 잘 울지 않았다. 다만 깨어 있는 시간이 짧은 제 형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은 곧잘 짓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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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41년은 그랬다.

깨어 있는 시간조차 얼마 없던 시기였고,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동생에게 할애하기도 모자랐던 시기였다.

 

그러니 센티넬 대폭사 사건에 대해 듣기라도 한 것은 사건이 일어난 후 그 해가 넘어가고도 반년이나 더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또 그동안 진통제로 썼던 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느라 멀쩡한 정신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았기에 그 사건이 저에게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시일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덕분에 그 사건 속에 저와 동생을 구했던 센티넬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보다도 훨씬 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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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무리 제 선택으로 인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는 것에, 이 적나라한 고통 속에 항상 몸부림치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원망할 것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원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강유는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저를 구해주었던 센티넬을 원망했었다. 염치없게도.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아예 그런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올 수는 없었던 걸까. 왜 하필 제 몸의 절반이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나타났을까. 온전하게 구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아예 숨이 끊어졌을 때 오지, 왜 애매한 시기에 와서 사람을 또 살려는 놨을까.

 

말도 안 되는 원망이었다. 그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소리 내 원망을 토해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강유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원망을 품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렇게 염치도, 마땅한 예의도 없는 원망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구해줬던 아이에게서 받고 있었음을 알았더라면 그 센티넬의 폭사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이뤄졌을까?

그랬다면 저렇게 신문에, 여러 자료에 불명예스럽게 대서특필되지 않고 그저 어디선가 조용히 홀로 괴롭게 죽어갔을까?

만약 그것이 선택 가능한 것이었다면, 과연 그 센티넬에게는 어느 쪽이 그나마 더 나은 죽음이었을까.

 

아니, 죽음은 더 낫고 아니고의 차이가 없다. 그것을 이제 강유는 알고 있었다. 죽음은 죽음일 뿐. 그건 덧없고, 의미 없고, 제 주위에 살아 있는 이들에게 상처만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죽은 이후에 그들에게 더해지는 불명예가, 이미 죽은 이들에게 무슨 대수일까. 남은 사람들에게만 아물지 못할 상처가 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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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한 강유는 읽고 있던 종이를 내려놨다. 무언갈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제 손가락을 인지하고 그만두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상담 신청은 안 하시나요?”

 

종이를 내려놓고 그대로 그곳을 벗어나려는 강유를 향해 연구원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동안 센터에서 시키는 것들은 의무나 필수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하면 전부 따랐던 이가 이번엔 상담을 신청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니 의아해할 만도 했다.

 

“저는 별로 상담받고 싶은 일이 없습니다만.”

“꼭 무슨 일이 없더라도요.”

 

연구원의 말에 강유는 잠시 상대를 빤히 바라보며 제 생각을 정리했다. 낯선 타인을 눈앞에 두고 해야 할 말이라…. 적당한 안부 인사 외에 ‘상담’이라고 칭해질 만한 대화를 나눌 것이 있던가?

 

“한…4년? 5년 전이었으면 할 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강유의 말에 연구원은 그게 무슨 뜻이냐는 시선을 보내왔으나, 그 시선에 대해 답을 하지는 않았다. 제게 상담이 필요했던 시기는 5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이지 지금이 아니었다.

 

“그럼 이 사건에 대해서라도 별달리 할 말씀은 없나요?”

“상담에서 그런 것도 물어봅니까?”

 

강유는 잠시 시선을 자신이 내려둔 종이 위로 던지며 물었고, 연구원은 그에 대해 “그건 아닙니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 답을 듣고 나서야 다시 연구원에게 시선을 돌린 강유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저는 할 말이 없다는 답을 대신했다.

 

2041년의 사건에 대해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센티넬을 포함한 그 사건에 휘말린 모든 이들이 안타깝다는 것 외에.

 

당시 저의 아픔에 매몰되어 그들에게 애도 한 마디 표현하지 못했던 제게는 그 사건을 평가하거나 어떤 의견을 내놓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강유는 자리를 완전히 벗어났다. 연구원이 아쉽다는 듯 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외면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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