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테라퓨틱 로그

축제

세번째 스토리 미션 로그 / 공포 17559자

조강유 by 조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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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자살), 약물 중독에 관한 언급이 조금 있습니다.

축제란 몹시 소란스러운 것이라는 걸 강유는 요즘 깨닫고 있었다. 소란스러움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고.

 

아침마다 뛰던 조깅 코스를 축제가 열리는 방향으로 바꾸고 난 뒤에는 뛰다가 그곳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곧잘 붙잡히곤 했다. 센티멘탈 테라퓨틱에 있는 사람이라며 이것저것 부탁해오는 사람들에게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 없어 몇 가지 일을 도왔고, 또 도움의 대가라며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았다. 꽃장식, 먹을 것, 간단한 소품…. 어제도 받았으니 이만 되었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것도 하나의 재미라며 뭐라도 더 얹어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강유가 당황스러웠던 점은, 아직 축제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런 거야?”

-형은 학교 다니면서 축제 참가도 안 하고 뭐 했냐?

“…….”

 

동생과의 통화에서 괜히 신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가, 괜한 타박만 들었다. 물론 ‘뭘 했는지’ 모르지 않을 테니 괜히 저에게 한 번 시비 거는 말임을 알면서도 당해야만 했고.

 

-그런데 대체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축제는 또 뭐고?

“내가 알겠냐….”

-그래도 덕분에 평생 못 해볼 경험을 다 해보네. 무슨 축제라고?

“…등나무 축제?”

-왜 의문형인데?

“축제란 게 원래 이런 건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렇지, 뭐….”

-축제에 ‘원래’라는 게 어딨어. 정해진 형식 같은 거 없으니까 그냥 있는 대로 즐겨봐. 재미없어?

“재미?”

 

요 며칠 간의 일을 재미있음과 없음 중 고르라 한다면 그야 재미있음을 고를 수밖에 없긴 했다. 누군가에게 감사와 선물을 받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강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축제를 즐기는 형이라니, 진짜 상상도 안 된다.

“…그럼 와서 직접 보던가.”

-외부인 출입 제한된다고 하지 않았어? 좀 완화됐나?

“풀렸지. 그게 아니고서 어떻게 축제를 벌이겠어.”

-아하….

 

그럼 가볼까? 하는 쾌활한 목소리에 강유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먼 길일 텐데도 선뜻 오겠다 하는 이가 고맙고 반가워서.

 

 

 

===========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단언컨대.

 

“…….”

“…….”

“…….”

“…다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왜 이렇게 말들이 없어?”

 

강유는 잠시 여기서 도망치는 것과 동생의 멱살을 잡는 것 중, 어느 쪽이 제 스트레스 해소에 더 효과적일지 고민했다.

 

‘야, 이 XX야, 너 놀러 오랬지, 누가 부모님까지 모셔 오랬어?’

‘뭐, 이 기회에 화해 좀 해라, 인간아.’

‘그걸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킨다고 되겠냐?’

‘너 저번에 편지도 보냈잖아? 부모님도 그거 보고 오신 거니까 알아서 수습해.’

‘저 도움 안 되는 XX….’

“크흠!”

 

차마 제 부모님 앞에서 정말로 제 동생 멱살을 잡을 순 없었기에 눈이나 부라리던 강유는 동생의 뻔뻔한 눈짓에 눈싸움을 이어갔으나, 아버지의 헛기침 한 번으로 그 모든 상황은 정리되고 말았다.

 

강유는 결국 오랜만에 보는 제 부모님에게로 눈을 돌려야만 했고, 어색함을 견디며 그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얼마 만에 직접 뵙는 건지는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충 햇수로 5년은 넘었다는 것만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예….”

 

그리고 또 침묵. 강유는 어색하게 서서 눈도 겨우 마주친 채로 서로 섣불리 아무 말도 먼저 건네지 못하는 제 가족을 바라보며, 상담을 어색해해 아무 말도 시작하지 못하던 수많은 센티넬들을 떠올렸다. 지금의 저와 제 가족의 꼴이 그 센티넬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축제를 즐기러 오시기에는 바쁜 두 분께 여긴 꽤 먼 거리였을 텐데요. 저 녀석 데려다주신 김에 한 번 둘러보시려면….”

“…널 보러 왔지.”

 

어색함에 짓눌려 아무 말이나 일단 꺼내던 강유는 아버지의 말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런 분이셨지.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시는, 언제나 직설적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시던 분. 제 부족한 화술은 아버지의 유전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강유는 한숨을 삼켰다.

 

“편지 때문이라면 답장…아니, 문자나 전화로도 충분했을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린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네가 이 녀석더러 와도 괜찮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고.”

 

강유가 ‘역시 저 녀석이 원흉이구나’, 라는 의미를 담은 시선을 잠깐 동생에게 보내는 동안, 그의 손을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갑자기 느껴진 온기에 강유가 움찔거리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더 힘을 줘 손을 꽉 잡았다. 다시는 그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어머니.”

“그때…우리가 일방적으로 너에게 목소리 높여가며 입대를 뜯어말린 이후에는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잖니…. 그때는….”

“…….”

“네 편지를 받은 후에야 용기가 생긴 우리를 용서하렴…. 우린…아니, 나는, 네 편지를 받기 전까진 너와 함부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조차 못 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너를 더 자극할 바에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서….”

 

결국 제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기 시작하고 나서야 강유는 어머니가 힘껏 붙잡은 제 손에 힘을 줘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용기가 없는 게 비단 제 어머니뿐이었을까. 저 역시 용기가 없어 제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연락 한번 하지 못한 것을.

 

“…이렇게 서서 할 이야긴 아닌 것 같네요. 어디든 들어가죠.”

 

강유는 제 아버지와 동생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하고는 제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준비 기간 동안 익숙해진 노점들 사이를 지나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지만, 동생이 음료를 사 오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해야만 할 이야기가 있었기에 강유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와서, 제 부모님이 겨우 용기를 낸 지금 이 순간에, 제가 도망갈 수는 없었으므로.

 

“예전엔…. 맞아요, 두 분이 반대하셨을 땐, 두 분이 생각하신 게 맞아요. 죽고 싶었어요.”

“강유야,”

“지금 생각하면, 고작 꿈 좀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극단적이었다는 게 좀 우스울 지경이지만…그땐 그랬어요. 살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 죽고 싶었어요. 아파서 죽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게 없어져서 죽고 싶었고….”

“…….”

“그런데 승유가…사과를 하더라고요. 미안하다고. 거기까지 끌고 갔던 건 저였는데. 고작 본인을 감싸다 제가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녀석이 사과를 하더라고요.”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는지 강유는 허탈하게 웃음을 뱉어냈고, 어머니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떤 말도 더하지 않은 채 가만히 모자를 지켜볼 뿐이었으나, 그 속내가 어떨지 강유 저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와 멈추기엔 늦기도 했고.

 

“그래서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대로 죽으면 승유가 정말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할 게 뻔해서.”

“…….”

“재활할 때도 정말 딱 죽고만 싶었어요. 중독되었던 약물을 끊을 때도. 어차피 이제 농구를 할 수도 없는데, 이걸 왜 힘들게 하나 싶어서. 죽으면 편해질 텐데, 그런 생각만 들어서. 그런데 그때마다 옆에서 제가 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는 승유를 볼 때마다, 그리고 차마 힘내라는 말도 못 하는 두 분을 볼 때마다, 지금 죽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싶어서 살았어요.”

“…….”

“그 뒤에 다 낫고 나서 억지로 학교에 갔잖아요. 거기서 꿈을 좇는 애들을 봤어요. 그게 너무 부러웠는데, 부러워하다 보니 제가 비참해져서 살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전부 그만뒀었어요. 이러다간 진짜 언제고 충동적으로 콱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럼 승유도, 두 분도 지고 있을 필요 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될 테니까.”

“…강유야.”

“그런 제게 군에 들어가는 건 선택이 아니라 희망이고 기회였어요. ‘어쩔 수 없이’, ‘사고’로 죽을 수 있는 기회. 죽을 수 있는 희망. 두 분이 뜯어말린 이유 그대로였죠. 죽을 자리를 알아보러 가는 것.”

“…지금은…지금은 아니라고 했잖아, 응?”

 

계속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강유를 이젠 양손으로 붙잡은 어머니는 절박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했다. 강유는 그제야 초점 없이 허공에 던지던 시선을 돌려 제대로 제 어머니의 눈을 마주했다. 언젠가 모든 의지가 없어 흐릿했던 표정과는 많은 것이 달라진 얼굴로.

 

“…죽을 수가 없게 됐어요.”

 

한 번은, 정말로 죽을 기회가 있었다. 이제 드디어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이 지겹고 무의미한 생을 더 이어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그러나 그 순간은 그대로 목숨 빚이 되어 돌아왔다.

 

강유는 이 모든 사실을 곧이곧대로 부모님께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제가 죽음을 얘기하지 않아도 제가 죽을 자리를 찾으러 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자식에 대해 잘 파악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전부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목숨 빚을 졌거든요.”

 

그래서 강유는 많은 이야기 중 일부분만을 드러내기로 했다. 적당히, 너무 충격적이지 않을 부분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제 부모님은 능히 추론해낼 것이라 짐작하고 있기도 했다.

 

“함부로 제 목숨을 버릴 수가 없게 됐어요. 제 목숨이, 온전히 제 것만이 아니게 됐어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려던 순간 저를 구하고 대신 죽은 이만을 일컫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엔 저를 구한 그를 원망하며 곧 뒤따라갈 거라 울부짖기도 했었다. 그랬던 다짐이 ‘죽은 이의 몫까지 살아가야 한다’로 바뀐 건, 이후로도 몇 명이나 더 죽고 난 후의 일이었다.

 

죽기 싫다며 울부짖으며 죽어가던 이, 덤덤하게 제 죽음을 맞이하던 이, 그런 단말마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은 이…. 그런 이들이 쌓이고 쌓여, 제가 죽음을 바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

“…그래서 이제는 죽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하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사는 게 아닌 강유의 얼굴은 평온했다. 몇인지도 모를 사람의 목숨을 끌어안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주제에, 언젠가 무기력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의지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는, 그런 얼굴을.

 

“우린 네가 더 안전하길 바라지만…그래도 지금은, 그거면 됐어.”

 

아버지는 그렇게만 말하며 강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서 느껴진 건 안도감이었을까, 안타까움이었을까.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유는 제 아버지의 손도 잡아드려야 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아버지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수건을 찾는 것을 보곤 남은 손은 가만히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음료 네 잔과 가벼운 주전부리들을 바리바리 챙겨오느라 낑낑거리는 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손을 빌려줘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어머니는 여전히 강유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강유는 그런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동생이 겨우 가져온 것들을 내려놓자마자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손을 넘겼다.

 

“잠깐 뭐 좀 갖고 올게요.”

“강유야…!”

“잠깐이면 돼요. 승유 넌 따라오고.”

“난 또 왜…!”

 

억지로 동생을 일으켜 질질 끌고 순식간에 부모님에게서 멀어진 강유는 툴툴대는 동생의 말을 무시하며 걸었다. 반쯤은 제 형의 힘에 기대 걸으며 끊임없이 툴툴거리던 승유는, 강유가 어느 장소에서 걸음을 멈추자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여기 오더니 진짜 사람이 이상해졌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강유가 멈춘 곳은 꽃으로 만든 장식물들이 늘어져 있는 곳이었다. 평소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제 형을 알기에 승유는 짐짓 신기하단 눈으로 제 형을 가만히 바라봤다. 강유는 그런 승유의 눈이 부담스럽다는 듯 얼굴을 강제로 꽃장식 쪽으로 돌려주고는, 무안함을 숨기기 위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좀 골라보라는 말을 툭 던졌다.

 

“형이 준 거라면 길가에 밟힌 꽃이라도 좋아하실 텐데, 왜.”

“…시들어도 색이 유지가 된대. 그러니까 이왕이면 좋아하시는 색을 드리면 좋잖아.”

“형 설마 아빠랑 엄마가 좋아하시는 색 모르냐?”

“…두 분이 같은 색을 좋아하진 않으실 거 아냐.”

“이야…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또 있을까 싶다, 나는….”

“…….”

 

……같은 색을 좋아하셨나?

 

“니가 그러고도 장남이냐? 응?”

“…….”

“쟤를 낳고도 우리 엄마가 미역국을 드셨어…이야….”

“…1절만 해라.”

“왜? 이런 건 3절, 4절까지 해도 모자란 일이라고.”

“……나중에 하고, 좋아하시는 색이나 말해.”

 

차마 하지 말란 말은 못 하는 강유를 보며 낄낄대던 승유는, 정작 색을 말할 때는 웃음기가 사그라들었다.

 

“초록색.”

“…….”

“보라색도 좋아하시지만, 오늘은 초록색을 더 좋아하실 거야.”

 

강유는 저를 빤히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하는 제 동생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그의 조언대로 꽃팔찌 중 초록색으로 된 것들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으응?”

“너는 무슨 색이 좋냐고.”

 

갑자기 저에 관한 건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는 제 동생을 힐끔 쳐다본 강유는, 초록색 말고도 보라색으로 이뤄진 팔찌 하나를 골라 제 동생에게 건넸다.

 

“아니다, 너는 그냥 이걸로 해라.”

“뭔데…. 아예 물어보질 말던가, 어이가 없네?”

“…….”

“왜 나만 보라색인데.”

“내가 받은 것도 보라색이었어.”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강유가 내민 팔찌를 받지 않은 채, 승유는 그저 가만히 제 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답을 들을 때까지 받을 생각이 없다는, 그 고집 어린 표정은 저와 꼭 닮아 있어 강유는 작게 웃어버렸다.

 

“이제 나한테 그만 신경 쏟아도 괜찮아.”

“…….”

“나는 이제 정말 괜찮아. 괴롭지도 않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아, 이젠.”

“…….”

“네가 그런 표정을 하지만 않는다면.”

 

강유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승유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제 표정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에 강유로부터 감춰야만 한다는 듯이.

 

“형은 여름에도 반팔을 안 입잖아.”

“…….”

“아니, 못 입잖아. 그 흉터 때문에.”

“…그건….”

“그런데 나만 괜찮아지면 다 괜찮아?”

“나는 네가 죄책감을 가지는 게 싫어.”

 

몇 마디 더 크게 항의하려던 승유는, 강유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로 네가 죄책감을 갖는 게 싫어, 승유야.”

“…….”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아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

“…….”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이제 나는 아프지도 않고, 정작 나는 내 삶을 잘만 살고 있는데.”

“…….”

“그런데 왜 네가 아직도 아파하고 있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죄책감을 갖고 살아. 왜 네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해, 자꾸.”

 

강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제 동생의 손을 붙잡아 보라색 꽃팔찌를 쥐여줬다. 고집스레 받지 않으려는 손을 억지로 펴서 쥐여주니, 정작 그 팔찌는 우그러뜨릴 수 없었던지 더 이상 손에 힘을 주지 못하는 꼴이 우습고 안쓰러웠다.

 

“나 때문이잖아…. 내가, 그때 뜀박질만 제대로 했어도, 형이 그렇게 다치지는 않았어….”

“그건 모를 일이지.”

“형,”

“모를 일이야. 오히려 네가 뛰어서 우리 둘 다 다쳤을 수도 있었고, 뛰는 너를 보호하려다 내가 그때보다 더 심하게 다치거나, 죽었을 수도 있는 거고.”

“…….”

“그런 결말에 비하면 우리 둘 다 살았으니 괜찮잖아. 우리 둘 다 죽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결국 우리 둘 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았으니 됐잖아. 우리 둘 다 운이 좋았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잖아.”

“…….”

“나는 널 보호하다 다친 걸 후회한 적이 없어.”

 

보라색 꽃팔찌 위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못 본 척하며 강유는 말을 이었다.

 

“너는 오히려 날 살렸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아파서 진짜 그냥 차라리 죽고 싶어졌을 때, 네 목소리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

“아파 죽겠는 와중에 들리는 네 사과가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부모님께 이야기할 때도 그랬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허탈한 웃음만 나오게 하는 사과였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말하는 목소리가 의아했는지, 승유는 제가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왜…내가 얼마나 미안했는데…. 형이 아파할 때마다, 나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왜 너 때문이냐고. 누가 너 때문이라고 말하기라도 했어?”

“…….”

“아무도 주지 않은 죄책감을 왜 혼자 만들어 이고 있냐고.”

“어떻게 죄책감을 안 가져. 형이 그때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알기나 해? 깼을 때마다 아프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쳐댔는지 기억은 나?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조차 제대로 못 했어. 그러다 기절하면 쇼크사한 건 아닐까 싶어서 숨 쉬는 게 맞는지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알아?”

“…그래도 살았잖아.”

“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못 봤어. 그런데 살았으니까 됐다고? 그러니까 나더러 아무렇지도 않게 살라고?”

“…….”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나한테 잘못 없다는 말이나 하던 사람을 보고, ‘이제 다 나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라고?”

 

하지만 저는 이제 정말 괜찮은데. 아프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고.

 

“그런가 보다, 라기보다는…이제 안심해도 괜찮다는 거지. 불안해하면서 수시로 나한테 연락하고, 겨우 안심하고 부모님께 내 안부를 전하고.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

“나와 부모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느라 온 신경을 쏟지 않아도 괜찮다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다가, 가끔 부모님으로부터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떠오르는, 그런 삶을 살라고.”

“…….”

“네 인생의 중심은 너여야 하는 거잖아. 내가 아니라.”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제 동생을 보고, 강유는 제 손을 뻗어 동생의 얼굴을 붙잡았다. 꼭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꼴이 보기 싫었기에. 그리고 손으로 대충 동생의 눈물 자국을 벅벅 지워냈다. 이렇게 우는 녀석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제가 그 옛날 정신없던 와중에 울지 말라 했다고 제 앞에선 함부로 울지도 못하던 동생이 안쓰러워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프거든? 네 힘 좀 생각해라, 군인 놈아.”

 

그리고 강유와는 달리 물리적인 이유로 얼굴을 찡그린 승유는, 아프다고 투덜대는 와중에도 강유의 손을 치워내지는 않았다. 그런 제 동생이 우스워 괜히 더 얼굴을 짜부라트린 강유는 그 상태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잘살고 있어. 친구도 사귀고 있고, 취미 생활도 뭐…그럭저럭하고 있고….”

 

강유의 말에 승유의 눈이 크게 뜨이더니, 저를 짜부라트리고 있던 제 형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어이 없다는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를 냈다.

 

“형 니 사회성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내가 뻔히 아는데, 친구?”

“…….”

“네가 아는 친구라는 의미가 아무래도 나랑 다른 것 같은데, 국어사전 좀 찾아보지?”

“…….”

“그리고 취미? 네가 취미가 어딨냐? 맨날 대외적으로 책 읽고 음악 듣는다고 하고 다니는 거?”

“그건 진짠데….”

“너 읽은 책 제대로 기억하는 것도 몇 권 없잖아.”

“…….”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있어?”

“…….”

“어디 가서 취미 있다고 하지 마라, 진짜….”

 

제 동생의 계속되는 팩트폭력에 불퉁한 표정을 짓던 강유는, 승유의 말이 끝날 때쯤에서야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진짜야. 여기서 새로 생겼다, 뭐. 네가 친구 아니라고 하면 펑펑 울걸.”

“…? 어떤 사람을 사귄 거야, 대체?”

“있어, 착한 사람. 그리고 취미…그래, 뭐 취미라기보다는 새로 공부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공부? 네가?”

“자꾸 너, 너 거릴래? 그래, 공부. 음악 치료에 관한 공부 할 거야.”

“…….”

“얼마 전엔 피아노도 쳐봤거든?”

 

강유의 말에 승유는 ‘네가?’라는 표정을 차마 숨기지 못했다. 악기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사람들이 있다면 단언컨대 제 형은 그 사람들의 선봉에 설 위인이 아니던가.

 

“……뭐냐, 그 표정은. 뭐…혼자 친 건 아닌데, 하여튼. 해보니까 음악치료가 더 궁금하더라고. 이걸로 진짜 심리치료가 되는지. 그래서 이번에 휴가도 생기겠다, 좀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해.”

“…가이딩은…계속할 생각이구나.”

“가이드가 가이딩을 해야지, 그럼 뭘 하겠어.”

“군에도 계속 있을 거고?”

 

강유는 따로 답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만 지었으나, 승유에겐 그 표정이 어떤 대답보다도 확실한 답이 되었다.

 

“그런데도 부모님과 형의 중재를 내가 할 필요가 없다고?”

“…이번에는 전과 다를 거야. 내가 직접 부모님과 제대로 이야기를 할 거고, 쫓겨나듯이 군으로 가지 않을 거야.”

“…….”

“네 도움이 아주 필요 없진 않겠지. 난 부모님에 관해 잘 모르는 게 많고, 그때마다 네게 조언을 구하겠지만. 그래도 여태 해왔던 것처럼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승유는 강유의 말에 제가 받은 보라색 꽃팔찌를 만지작거릴 뿐, 더 이상 어떤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강유 역시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초록색 꽃팔찌를 두 개 고른 뒤 제 동생에게 돌아가자는 듯 고갯짓이나 해 보였다. 승유는 순순히 제 형을 뒤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반팔은 언제 입을 건데?”

“안 입을 건데?”

“여름마다 더워 죽으려고 하면서 왜.”

“뭐…징그러우니까.”

“안 징그러워.”

“너나 그렇게 생각하지. 보통 다 징그럽다고 할걸.”

“어떤 놈이 징그럽다고 해?”

“왜? 알면, 가서 따지기라도 하려고?”

“그건….”

“내 주위가 거의 다 군인에 센티넬인데?”

“……그럼 가서 따지는 건 생각 좀 해 보고….”

 

슬쩍 시선까지 피하며 웅얼거리는 제 동생을 보며 강유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기는 승유는 꽤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강유는 첫술에 전부 만족할 만큼 배부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제가 바뀐 모습을 보이고, 계속해서 그러지 말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것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세상에, 너 울었니?”

“……아냐.”

 

동생을 울린 강유는 부모님이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간식이나 집어 먹으며 딴청을 부렸고, 승유는 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눈치가 비상한 것을 처음으로 원망하며 딴청 부리는 제 형이나 노려봤다. 그런 승유의 행동에 제 자식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나눴음을 깨달은 어머니는 제 얼굴을 닦았던 손수건의 마른 부분을 사용해 승유의 얼굴을 톡톡 두드려주곤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네 사람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강유는 제가 골라온 꽃팔찌를 제 부모에게 내밀었다.

 

“여기 축제에서 파는 거예요. 색깔이 다양하게 있는데…승유가 부모님 두분 다 초록색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골라왔어요.”

“…그래….”

“축제 기간 동안 갖고 있으면 행복해진대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두 분이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강유야.”

“알아요. 제가 아직 군에 있는 게 불안하실 거라는 걸. 하지만…죄송해요. 아직은 제대할 생각이 없어요.”

“…….”

“저는 아직 조금 더 센티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를 살려줬던 사람들 대신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

 

강유의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에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더 단단해진 표정으로 강유를 마주했다.

 

“그럼…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

“만약에…정말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만약에 말이다….”

“…….”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게 되면….”

 

그저 가정을 말할 뿐인데도 끔찍한 모양인지, 어머니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까지 했다. 강유는 그런 제 어머니의 심경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한 번 사경을 헤맨 적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

 

“그럼 그땐, 제대를 생각해보지 않겠니?”

 

그러나 이해와는 별개로 강유는 아직 수긍할 수 없었다. 제가 쓸모 있는 곳에 쓰이고 싶다는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이라는 건 너무 추상적인데요.”

“지금 어미와 거래라도 하자고?”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랬기에 순순히 수긍하는 답을 내놓기보다는, 농담으로 위장한 거절을 입에 담았다. 그 뜻을 바로 알아차린 어머니가 불만을 표했지만, 강유는 제 말을 물리지는 않았다.

 

“제대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여기서 그 이야기의 끝을 보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으니.”

 

결국 길어졌을지도 모를 모자의 입씨름은 아버지의 중재로 멈췄고, 그제야 어머니는 강유가 가져온 꽃팔찌를 천천히 자기 팔목에 채워보았다. 색이 하필이면 초록색이라 꽃보다는 풀로 만든 팔찌 같은 느낌이었으나, 어머니의 표정은 꽤 만족스러워 보였기에 강유는 그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옆에서 승유 역시 제가 받은 꽃팔찌를 주섬주섬 차더니, 강유가 몇 입 먹었던 간식들을 집어 먹고는 제 어머니께도 권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버지 역시 꽃팔찌를 채우고는, 강유의 손을 툭툭 두드리고 아직 손대지 않은 음료수를 슥 밀어주셨다.

 

강유는 부모님을 아주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의 어색함이 어느 순간 사라졌음을 깨닫고는,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제 아버지에게서 받아든 음료를 홀짝였다.

 

 

 

===========

 

“여기 축제에 볼만한 건 뭐가 있니?”

 

어머니는 원래 쾌활한 분이셨다. 목소리 톤도 높은 편이셨고, 늘 호기심도 많으셨던 데다, 새로운 것을 늘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이셨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본 강유는 새삼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정말이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저도 잘은…. 저기 등나무 길이 좀 볼만한 것 같고, 아, 무슨 캠프파이어도 있다고 하던데요.”

“너는 여기서 지내면서 축제에 대해 자세히는 잘 모르니?”

“저도 얼마 전에야 공지 받았는데요….”

 

어머니의 타박 아닌 타박에 강유가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승유가 때는 이때라는 듯 제 어머니에게 붙어 얄밉게도 속삭였다.

 

“엄마, 엄마. 형이 축제에 대해 뭘 알겠어. 나한테 전화해서는 ‘원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라고 했다니까? 그냥 묻지 말고 다니다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편이 알기 쉬울걸?”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띄워보려는 제 동생의 노력임을 아는 것과는 별개로, 강유는 저놈을 딱 한 대만 때렸으면 싶기도 했다. 어쩜 저렇게 얄미울 수가 있는지. 그러나 이어진 어머니의 “그건 그렇네.”라는 동의에 강유는 그저 한숨을 내쉬는 걸로 제 불만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등나무 길부터 가볼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뭐든 나오지 않겠어?”

“…언제 돌아가시려고요?”

“응? 여기까지 왔는데 이 축제 볼거리는 다 보고 가야지. 어머, 저기서 사진 찍으면 잘 나오겠다.”

 

어머니의 페이스대로 움직인다면 늦은 밤에 운전하게 될 제 아버지를 ‘고생하신다’라는 표정으로 보던 강유는, 결국 앞서 걸어가는 어머니와 동생의 뒤를 아버지와 함께 천천히 뒤따라갔다.

 

“여기 근처에 숙소도 있어요?”

“있어도 못 묶지. 내일부터 바로 또 근무해야 하니까.”

“그런데도 오셨어요?”

“네가 편지까지 보냈잖냐.”

“…여기서 사귄 친구의 강권이었어요.”

“그럼 그 친구에게 감사해야겠구나.”

“…….”

“네가 먼저 연락을 해왔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그냥 지나가겠어. 마침 여긴 축제라고도 하고, 우리도 하루쯤은 시간 낼 수 있었으니 온 거지. 결국 네 진심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 충분히 감내할 만한 고생이었다.”

“…….”

“걱정 마라. 네 엄마가 널 오랜만에 봐서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겠지만…그렇다고 내일 근무마저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그건…그렇죠.”

“아마 저기서 사진 좀 찍고, 저녁 무렵이면 갈 거다.”

 

아버지의 말에 강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될지 고민하느라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다가, 아주 오랜만에 보는 제 동생과 어머니의 웃음에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다음에….”

“……?”

“여기 프로젝트 끝나면 휴가가 나오거든요. 그럼 그때…집으로 갈게요. 오랜만에.”

 

강유의 말을 가만히 기다리던 아버지는 정작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눈앞의 가족과 비슷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그래.”

 

선선한 동의와 함께.

강유는 제가 말해놓고, 꼭 가출했던 자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민망해진 탓에,

 

“…이사는 안 가셨죠?”

 

따위의 농담이나 건네며 제 입가를 긁적였다. 그런 강유의 행동마저 이해한다는 듯,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네가 지내던 방도 그대로다.”라는 답을 돌려주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향해 휙 몸을 돌린 어머니가,

 

“사진 찍을 거니까 얼른 와!”

 

라고 외치고, 승유가 옆에서 “느려, 느려!” 따위의 소리를 한 덕분에 강유의 민망함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제 어머니의 진두지휘하에 사진을 찍게 된 강유는, 사진이란 게 그냥 대충 셔터만 눌러대면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강유야, 너 사진 정말 못 찍는구나….”

“…….”

“이건 각도가 이렇게…어휴, 세상에….”

“…….”

“이건 아예 역광인데?!”

“…….”

 

등나무 길을 걷는 내내 어머니의 타박을 듣고 그걸 옆에서 비웃는 동생에게 시달리던 강유는, 캠프파이어가 이뤄지고 있는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뭔가 먹을 것을 사 오겠다는 명분으로 그 가시방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고, 광장에서 피어오르는 캠프파이어 덕분에 유난히 노을이 짙게 느껴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강유는 꼭 땅부터 하늘까지 죄다 불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제 부모님의 입맛이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기를 바라며 몇 가지 음식을 골랐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가볍게 배를 채우기 좋은 음식들로, 축제 준비 기간에 얻어먹다가 기억에 남았던 음식들로.

 

늘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었기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나르는 것에 익숙한 강유의 움직임을 보던 승유는 웨이터 같다는 실없는 감상평을 내놓으며 제 앞에 놓인 음식을 생각 없이 입에 넣었다.

 

“매워ㅡ!”

 

유난히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동생에게 부러 매운 음식을 갖다주는 것으로 내내 제게 비웃음을 날리던 것에 대한 복수를 마친 강유는, 남은 음식을 처리하며 제 부모님께 이런저런 음식들을 권했다.

 

“아까 승유가 그러던데, 우리가 좋아하는 색은 몰랐다면서 입맛은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거니?”

“…그걸 또 일렀어요? 입맛이야 뭐…제 입맛이랑 동생 입맛으로 추측해본 거죠. 옛날 기억도 있고요.”

 

어머니가 “맛있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지?”, “이거 장식 너무 예쁘지 않니?”의 감상을 내놓으며 감탄을 연발하는 동안, 강유는 다시 한번 매운 음식을 제 동생에게 쑤셔 넣었다. 괴로워하는 승유에게 아버지가 음료와 달콤한 맛이 나는 음식을 건넸고, 강유는 그런 상황을 모른 척하며 다른 꽃장식이 더해져 있는 음식을 어머니 앞에 슬쩍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는 동안 모든 접시가 비워졌고,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예상보다 과식했다는 어머니의 주장에 따라 마지막으로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해는 완전히 떨어졌으나 가운데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캠프파이어 덕분에 주위는 환했고, 작은 불이 아니었기에 춥지도 않았다.

 

“이렇게 큰불은 처음 봐요.”

“그러니? 근데 나도 처음 봐.”

“축제 땐 다 이렇게 불 피우는 게 아니에요?”

“축제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모든 축제가 그렇지는 않지.”

“…그렇군요.”

 

등나무길을 걸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강유가 제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강유의 팔에 팔짱을 꼈고, 강유는 그 스킨십이 어색했으나 굳이 빼려고 들지는 않았다.

 

“강유 네가 이곳에 와서 다행이야.”

“…이 프로젝트요?”

“이것도 무슨 프로젝트였니? 뭘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너를 볼 수 있었잖니. 대화도 했고. 그리고 네가 처음으로 축제도 즐겨보고.”

“…….”

“그리고 그런 장소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고.”

“…….”

“너무 좋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 정말…너무 좋아.”

“…여기 마지막 날에요, 무슨 특별 전골을 먹는대요.”

“전골?”

 

그건 또 뭐냐는 표정으로 어머니가 반문했고, 강유는 여전히 붙잡힌 팔은 내버려 둔 채 다른 한 손으로 로비에 놓여있던 냄비 크기를 대충 표현하면서, 그만한 냄비에 이것저것 다 넣고, 이상한 것도 넣어서 일주일간 끓이는 거라는 대답을 내놓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두 분이랑 승유는 당장 오늘 돌아가셔야 하니까…. 이 프로젝트 끝나면 휴가거든요. 그때 집에 찾아갈 테니까, 우리끼리도 전골 해 먹어요.”

“…….”

“제 군대 얘기도 그때 마저 하고요. 어머니와 제 의견이 정반대잖아요. 서로 타협점을 찾아봐야죠. 제 휴가 끝나기 전에.”

“…강유야….”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굴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다른 약속 잡은 게 또 많아서 휴가 내내 집에 있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대화할 시간은 충분할 거예요.”

“…그래….”

 

불 주위를 걸으며 강유가 조곤조곤 건네는 말에, 어머니는 뭐든 좋다고, 그러자고 대답하며 붙잡고 있는 강유의 팔을 토닥였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과 약속도 잡는구나?”

“……어머니도 제 사회성에 대해 말씀하시려고요?”

“아하하, 아냐. 네가 군에서 몇 년을 지내고 있는데 설마 사회성에 문제가 있겠니. 그냥 거기서도 친구가 생긴 게 신기해서 그러지.”

“…이번 휴가 때 약속 잡은 사람들은 전부 여기서 사귄 사람들이에요. 여기 사람들은 다 착하거든요.”

“그러니….”

 

이후에도 여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라도 조금 더 이야기해보라는 어머니의 채근에 강유는 매번 쳇바퀴 같았던 일상 속에서 간간이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털어놨고, 어머니는 그걸 몹시 즐겁고 흐뭇하게 들어주셨다.

 

“이따 돌아가는 길에 네 아버지에게도 이야기해줘야지.”

“…이걸요…?”

“재밌잖아~”

 

등나무길에서보다도 더 환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강유는 좋을 대로 하시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강유의 움직임을 기꺼운 허락으로 알아들은 어머니는, 그제야 아들과 팔짱 꼈던 팔을 빼내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가야겠다. 더 늦으면 정말 내일 네 아버지 큰일나겠어.”

“…….”

“정말 너무 아쉬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강유 네가 ‘다음’을 기약해줬으니까.”

 

그러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덜 수 있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강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는 동안 그들의 곁으로 온 아버지 역시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동생이란 놈은….

 

“진짜 집에 올 거야?”

“왜, 싫어?”

“큰일 날 소리 하네! 아니라고 할 거 뻔히 알면서!”

“맞지, 알지.”

“번복하면 안 된다? 진짜, 꼭 와라?”

“그사이에 이사나 가지 마라.”

“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 안 오면 진짜 군부대 쳐들어갈 거야.”

“너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는데, 지금.”

“아니거든, 나 진지하거든, 지금.”

 

실없는 소리를 하며 이곳에서의 마지막을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강유는 제 동생을 억지로 뒤돌게 만들어 부모님의 방향으로 쭉 밀어버리며, “더 늦으면 안 되니까 2절은 전화로 해라.”라는 말을 남겼다. 승유는 쭉 밀리면서도 “내가 못 할 것 같냐?”, “전화하면 받아라?” 따위의 협박성 말을 외쳐댔고, 그런 아들들을 보며 부모님은 크게 웃었다.

 

멀어지는 세 명의 뒷모습을 보며 강유는 새삼 축제란 건 좋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이곳에서 사귄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것으로 제 부모님과의 관계가 양호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본 탓이었다. 사람 일은 역시 알 수 없는 거라는 말을 되새기며, 강유는 제가 축제가 열리고 나서 받았던 보라색 팔찌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제 생에 처음으로 참여해본 축제는 앞으로 죽기 전까지 절대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강유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머리 위로는 조명이 걸린 등나무가 반짝이고 있었고, 발아래로는 보랏빛 제비꽃들이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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