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5년 3월 24일
날씨 - 맑음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뭐…느긋한 하루였다는 뜻이다.
아침엔 스트레칭 후 가벼운 조깅.
점심엔, 아. 머핀으로 때우고는 밖에 산책을 나갔었다. 아직 소나무를 제외하곤 푸른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혼자 꽃을 피워낸 나무가 있기에 눈길이 갔었다. 아마 벚꽃이겠지. 좀 번화한 도시에서는 축제도 열리고 있으려나.
저녁은 왠일로 조용하기에 된장국-찌개가 아니다-에 밥으로 한 끼를 먹고, 이대로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그래, 이 사람들이 조용하게 지나갈 리가 없었지.
지금은 이제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데, 처음 시작이 뭐였더라? 가볍게 티격태격 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지나가다 봤으면 싸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딱히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
하여튼 그렇게 '오늘도 소란스럽구나.'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나타났다.
그래, 오늘의 가장 큰 이슈는 의외로 종일 잠잠했던 사람들도, 저녁에 일어났던 가벼운 말싸움도 아닌 '아이'다.
목소리가 우렁차 그 근처에 있던 센티넬이고 가이드 귀청을 전부 찢어먹을 뻔 한 그 '아이'.
엄마도 아빠도 바쁘고, 그들의 친구인 연구원들도 바쁘고, 덕분에 외로움에 허덕이는 것 같아 보인던 '아이'.
집에서 혼자이기 싫다고 말하던 '아이'.
말을 잘 듣겠다며 훌쩍이던 아이는, 처음 기세 좋게 싫다고 소리치던 아이와는 사뭇 달라 보였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이런 환경에 두는게 정말 괜찮으냐고 거듭 연구원을 말리기도 했지만, 그리고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와중에 이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뭐 다들 표현 방식이 다채롭고 좀 정신 없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부모의 빈자리를 타인이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겠지만. 혼자 빈집에서 쓸쓸히 두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저 정신 없이 활발하고, 쾌활하고, 밝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면서 휩쓸리다가, 정신을 차릴 때 쯤 부모가 자신을 찾으러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저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아이가 저들 곁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근데……그러고보니 나도 돌봐줘야 하는 입장이네.
…동생을 돌봤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주도적으로 다섯 살 아이를 돌봤던 기억은 없는데.
나는 재밌는 사람이 아닌데. 아이가 옆에서 울기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위에다 경험 어쩌고 써놓은 것 치고는…애한테 경험시킬 만한 뭣도 없는데.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여차하면 동화책…읽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럼 내일은 도서관에서 애한테 읽어줄 만한 동화책 좀 찾아봐야겠다. 근데 애가 책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나저나 가이딩 관련된 거라든가, 이능에 관한 거라든가, 두 가지에 관련된 실험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이 돌보기라니. 이 센터,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이제 함부로 예상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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