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테라퓨틱 일지

2055년 4월 7일

날씨 - 맑음

조강유 by 조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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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기분이 저조하든 말든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봄꽃도 만개했고, 온도는 적당히 따뜻했고, 햇빛은 아주 환하게 빛났으며, 낮도 조금 더 길어졌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겠지만.

누군가의 던전으로부터의 부고 소식은 언제나 그랬듯 습관적으로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게 했고, 덕분에 잔뜩 피곤한 낯으로 방을 나갔을 땐 뤽셀 씨가 프렌치 토스트를 잔뜩 구워내고 계셨고 체이스가 시답잖은 농담이나 던져대고 있었다.

다들 나와서 토스트를 집어가는 동안, 마찬가지로 뤽셀 씨가 우려 주신 밀크티나 받아다가 홀짝이며 체이스와 되도 않는 농담이나 주고 받았고. 덕분에 어제부터 내내 저조했던 기분은 어느 정도 나아졌다. 하여간 그 이능 때문에 사람 기분은 귀신같이 알아채가지고는….

다들 괜히 부러 더 소란스럽게 굴었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말이 많았던 것도 같다.

그렇게 나름대로 소란 속에서 평온을 찾고 있다가, 점심 때가 됐다며 서문 씨가 요한 씨를 알차게 부려먹…아니, 이렇게 쓰면 안될 것 같은데. 손등에 뭔가를 그려주는 대신 점심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을 뿐이긴 한데…. 그래, 등가교환 정도로 하자.

여하간, 그렇게 요한 씨가 만들어 준 점심은……뭐였더라? 이름이 생소했어…아니 음식 자체가 생소했는데. 육회 같은 고기에 뭐 이것저것 넣고 노른자 올라가 있었던…. 아. 스테이크 타르타르? 하여튼 이 사람, 사람 자체도 특이하더니 만들어내는 것도 특이해. 그리고 늘 데코를 한다. 먹을 음식 만드는데 데코에 저렇게 정성 들이는 건 식당 아니고서는 처음 봤다.

그렇게 점심 먹고 있는데 뤽셀 씨가 본인은 점심 이미 드셨다면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뤽셀 씨가 방에 들어가는 건 처음 봐서 놀란 김에 여기다 적어둔다. 매번 소파가 본인 방인 것 마냥 누워계시더니, 그래서 본인 방을 잊어버리신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는데, 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언제 나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이라고 피자를 사오셔서 그렇게 저녁까지 해결했다. 페퍼로니 파인애플 반반. 페퍼로니는 좀 짰고, 파인애플은 달달해서 같이 먹으면 맛있었다.

오, 오늘은 메뉴를 좀 구체적으로 적었네. 하…근데 적고 보니 하루종일 처먹기만 한 것 같아서 암담한데…? 심지어 오늘은 기분 나빠서 운동도 안했는데. 먹은 것들을 쓰고 나니 좀 움직여야 되겠다 싶기도 하고.

아. 단체 상담실에서 있었던 일들도 기분을 바닥으로 내리꽂게 하는데 일조하긴 했는데…밖에 나가서 기분을 풀고 오긴 해야겠다. 오늘도 술 마시고 억지로 잠들 거 아니라면.

그래도 단체 상담실 일을 몇 자 적어놓자면, 들어갈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는데. 누군가가 부러 켜놓은 건지, 그저 실수였는지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누마의 부모님이 가셨던 그곳에 관한 것이었겠지. 급하게 끊겨 제대로 된 내용을 다 듣진 못했지만, 본래 생성되던 위치가 아닌 곳에서 열렸다는 던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유추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별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는데-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도, 기분은 또 다른 문제인게 당연하지 않은가-, 책임자란 사람이 갑자기 2041년에 일어난 사건 얘기를 꺼내들었다. 뭐, 사실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신문으로 접한 정도가 전부라 그것만으로는 크게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거의 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뭐….

그냥 그 뒤에 이어졌던 ‘시한 폭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건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센티넬이 악의를 갖고 일으킨 사건도 아닌데 그렇게 악의적인 단어를 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압도적인 힘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보다도 더 두려울 몬스터에게는 그런 단어를 붙이지도 않으면서.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지.

센터의 책임자란 사람이 별 생각 없이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항의나 해볼까…. 제레미 님도 심심하면 관계자 찾아가서 괴롭히신다는데, 뭐.

하여튼…어제부터 좋은 일이 없다, 딱히. 그저 잔잔하게 평화로우니 기분 나쁜 일을 잊어버리기도 어렵고. 자꾸 되새김질만 하게 돼.

적어도 몸이라도 움직여야겠다. 몸이 지치면…좀 잘 수 있겠지. 뭐, 이젠 꿈도 꾸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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