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테라퓨틱 로그

농구

첫번째 스토리 미션 로그 / 공포 5036자

조강유 by 조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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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공놀이! 공 갖고 놀자!”

 

강유는 아이가 해맑게 들고 온 공을 보고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공을 보는 게 얼마만 인지.

 

“누마야, 다른 공은 없었어?”

 

왜 하필, 세상에 공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그중에서 제일 무겁고 큰 걸 들고 왔어.

 

“응! 이것밖에 안 보였는데?”

 

아마 대충 눈에 보이는 공을 들고 왔으리라 여기면서도, 차마 다시 갖다 놓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본다면, 누구라도 거절을 입에 담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

 

그렇게 결국 마지못해 받아든 공은 여전히 묵직했고, 여전히 표면이 까칠했으며, 여전히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아저씨, 이거 할 줄 알아?”

“…농구, 라고 하는 거야.”

“농구?”

 

아이는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그래서 공 이름이 무엇인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공이 바닥과 제 손바닥 사이를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오가는 것 자체에만 흥미가 있었다.

강유는 그런 아이에게 농구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냥 공 그 자체를 가지고 노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 낫겠다는, 현실적이고 나름대로 정확한 판단을 내린 후에,

 

“공을 튕기면서 가지고 다니다가….”

 

골대…는 없으니 적당한 대체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곳에 정확히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는 설명까지 마쳤다. 그러고 나서야 강유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툭, 쳤다. 직접 해보라는 듯.

그러나 아이는 정작 공을 강유에게 내밀며,

 

“아저씨가 먼저 해 봐!”

 

라는 제안을 해맑게 하고 있었다.

 

-형, 형이 먼저 해 봐!

 

언젠가 제 동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잘 될지 모르겠는데.”

 

억지로 받아든 공을 몇 번 튕겨보는 손은, 애석하게도 그 감각을 기민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을 쓰다듬듯이, 뒤로 살짝 잡아 앞으로 밀어내듯이 튕기는 감각. 이 공을 잡지 않은 지 10년도 훌쩍 넘었는데, 어째서.

 

강유는 피어오르는 쓴웃음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로, 같은 동작은 서너 번 반복하다 그대로 제가 가리켰던 골대의 대체품을 향해 공을 던져버렸다.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 그러나 늘 기대 없이 하는 행위는 긍정적인 결과가 돌아오기 마련이라 공은 골대의 대체품 안으로 쏙 들어갔고, 그에 옆에서 아이의 감탄 어린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와아! 아저씨 대단해!”

“별거 아니야. 누마도 할 수 있어.”

 

응, 나도 해볼게! 라는 대답과 함께 공을 가지러 우다다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강유는 마지막으로 농구공을 잡았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던전 웨이브가 발생했던 날, 저 아이보다는 조금 더 컸던 동생을 데리고 농구장에 갔을 때를.

 

-형! 대단해! 어떻게 저기에 공을 넣어?

-너도 금방 할 수 있어. 다시 해 봐.

 

유난히 형을 잘 따랐던 동생이었고, 저는 그런 동생에게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농구를 가르쳐 줄 수 있음에 한껏 들떴던 평범한 이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날 중 하루였을 뿐이었다. 그 사고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여즉 자신은 공을 튕기고 있었을 테고, 동생도 조금 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테다.

 

텅, 텅, 텅-….

 

아이가 공을 튕기는 소리에 그제야 다시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온 이는, 눈앞의 아이가 공을 던지고 그 공이 목표물에 들어가지 못한 채 옆으로 튕겨 나오는 것을 눈으로 담았다.

 

“아저씨, 이거 어려워!”

“가까이에서 먼저 넣어봐야지. 그렇게 다짜고짜 멀리서 던지니까 당연히 어렵지.”

“그치만 아저씨는 여기서 넣었잖아!”

“나는 누마보다 크잖아.”

“에이, 그게 뭐야!”

 

아이는 잠시 토라진 체를 하며 굴러가 버린 공을 줍기 위해 다시 우다다 뛰어갔다. 아이는 몇 번이고 공을 튕기고, 던지고, 다시 줍기를 반복했다. 지겹지도 않은지, 정말이지 계속해서.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렸던 제가 생각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도 저렇게 정신없이 공에만 몰두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꽤 여러 날을. 물론 저 아이보다는 조금 큰 뒤의 일이었긴 하지만.

 

“누마야, 적당히 해. 손목 다친다.”

“응? 왜?”

“공이 너무 크고 무겁잖아.”

“그치만, 그치만 아직 한 번도 성공 못 했어!”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아프면 앞으로 다시는 이거 못 해.”

 

아이는 그제야 납득했는지 순순히 공을 강유에게 넘겼다. 다시금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강유는 살짝 웃었다.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냥 막 던지지 말고, 이렇게.”

“으응….”

“이따가 누마가 공 잡고 있으면 내가 다시 자세를 잡아줄게.”

 

시범과 설명을 동시에 하며 다시 던진 공은, 이번엔 제대로 목표에 들어가지 못한 채 튕겨 나왔다. 역시 아까는 요행이었나.

 

“아저씨도 못 넣는다!”

“…그러게.”

 

아이와 마주 웃으며 강유는 공을 주우러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주 오랜만에 공을 만지고 던지는 감각이 이상했다. 아니, 생소했다. 그러나…즐거웠다. 놀랍게도.

 

“이제 내가 해볼래!”

“그럼 패스해 줄 테니까 받아봐.”

“패스?”

“공을 이렇게…응, 그렇게 주고받는 거야.”

 

공을 바닥에 퉁겨 아이를 향해 보내주자, 얼결에 공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이의 얼굴이 다시 한번 상기됐다.

 

“우와아! 나도, 나도!”

 

반짝이는 눈과 함께 있는 힘껏 공을 바닥으로만 내려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린 강유는, 아이가 공에 잘못 맞아 다치기라도 할까 서둘러 공을 잡으러 달려갔다.

 

농구공만 보면, 지나가다 농구대만 보면 우울해하던, 비참해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그랬던 적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평생 그저 취미로만 여겨왔던 것처럼 공을 잡고 던지고 놀고 있었다.

 

“아하하! 아저씨가 잡았으니까 된 거지? 패스? 된 거지!”

“그래. 누마 잘하네.”

 

아이의 어림 없는 소리에도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강유는 누마에게 다시 공을 쥐여줬다. 이번엔 제대로 누마가 목표물 안에 공을 던져 넣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준 뒤 제 손을 뗐고, 곧 누마의 손을 떠난 공은 제대로 그들이 노린 곳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공이 날아가는 동안 강유는 문득, 저도 모르게 누마를 바라봤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에 간절함이 어린 찰나, 강유는 다시 한번 지나간 날을 떠올렸다.

 

동생 손에 의해 날아가던 공, 허공에서 터져버리던 공,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이상하게 생긴 생물,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혼비백산한 꼴로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들…. 와중에 다리가 굳어 꼼짝도 못 하고 있던 동생과 그 동생을 온몸으로 감쌌던 자신. 그 뒤로 이어진 암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따위는 기억에 없다. 그저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동생은 울부짖고 있었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곧바로 다시 혼절해버렸을 뿐.

 

“들어갔어! 아저씨, 봤어?! 들어갔어!!”

 

잔뜩 흥분해 저를 온몸으로 붙잡고 흔들어대는 아이를 보며, 강유는 언젠가 짓지 못했던 미소를 그제야 지어 보일 수 있었다.

 

“그래, 잘했어. 대단하네, 누마.”

 

아이의 머리를 토닥이며, 어느 날 제 동생에게는 끝내 해주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내뱉을 수 있었다.

 

“아저씨, 나 또 해볼래, 또!”

“손목 안 아파?”

“안 아파!”

“그래.”

 

안 아플 리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기뻐하는 누마의 모습에 강유는 몇 번이 정도만 더 던지게 하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공을 주워 누마에게 다시 한번 ‘패스’를 해줬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튀지 못한 덕분에 누마가 서둘러 공을 잡으러 달려가야 했으나, 그마저도 즐거워하는 낯이었기에 강유 역시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어설프게나마 ‘농구’를 하며 웃을 수 있었다.

 

+++

 

실컷 뛰어다닌 덕분일까, 결국 제 품에 안겨 잠들어버린 누마를 조심스럽게 안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온 강유는 방금까지 공을 튕기고 놀던 밖에 잠시 시선을 던졌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다시 공을 잡고 던져보라 한다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역시 시간이 답이었을까. 아니면, 아이의 빛나던 얼굴이 답이었을까.

아니, 사실 답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젠 과거에 제가 잃어버렸던 꿈에 매몰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중요할 뿐.

 

다만, 제 의지로 공을 다시 잡으려 했다면 아마 평생 잡을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것이 설령 취미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강유는 누마에게 고마웠다. 제가 저도 모르는 새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음을 이 아이 덕분에 알게 됐으므로.

 

강유는 누마를 조심스레 소파 위에 누이고 담요를 끌어와 아이 몸 위에 덮어줬다. 잠시 뒤에 저녁도 먹어야 할 테고, 지금 너무 자버리면 밤에 분명 잠이 오지 않을 테니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깨울 요량으로 침대로는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저도 아이 옆에 앉아 아이의 머리를 제 허벅지 위에 올리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홀로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래, 이를테면 제가 다시 농구공을 잡고, 튕기고, 던졌다는 것을 뒤늦게 들을 동생 녀석의 대단한 표정이라던가. 그리고 내심 기뻐하실 부모님…의 표정은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강유는 자연스럽게 웃는 낯이 되어 있었고, 그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가 이쯤이면 쉴 만큼 쉬었다 생각되었을 때 누마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아이는 일어나기 힘들어하면서도 처음의 ‘말 잘 들을 테니까….’라는 말을 기억하기라도 하는 듯,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강유는 그런 아이를 가볍게 안아 들며 주방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저녁 먹고, 돌아가서 자자. 오늘 많이 움직여서 푹 잘 수 있을 거야.”

“아저씨….”

“응. 저녁은….”

“오늘 재밌었어요….”

 

저녁 메뉴에 관해서나 설명해 주려던 강유는 누마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곧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다. 고마워. 나도 재밌었어.”라는 말을 돌려줬다.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기쁜 하루가 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오늘 있었던 일, 오늘 깨달은 것만으로도 이 프로젝트에 온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고.

 

이곳을 나가서 휴가를 받으면, 아주 오랜만에……사고 이후 처음으로, 동생과 함께 농구장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강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속 움직였고, 아이는 어느새 완전히 잠에서 깬 모습으로 강유에게 안겨 두서없이 여러 이야기들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고 여느 날과 같이 평화롭고 그럭저럭 소란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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