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e Morgeso] 원죄
原罪; 성서에서 말하는 인류 최초의 죄
12살, 그란데 모르게소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눈 앞에 새파란 빛을 발하는 창으로부터 사람들이 그리도 떠들어대던 에스퍼라는 명함을 부여받은 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란데는 자신의 힘이 위험함을 알았다. 원죄原罪, 에스퍼나 몬스터의 힘을 제한하는 능력. 몬스터의 힘이야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제한에는 에스퍼마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요즘에야 많은 이들이 능력에 국한되지 않고, 본인을 단련한다지만은 여전히 능력에만 의존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한 상황에 자신의 능력이 밝혀진다면? …그란데는 눈을 감았다. 부모에게조차 밝힐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혼자 전전긍긍하던 중, 사촌인 아모리를 만나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가족모임, 그 흔한 명목 아래 만난 20살 초반의 아모리는 한 쪽 눈에 붕대를 감은 채였다. 그란데는 지금 와서는 그날이 자신의 죄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센티넬로 일하고 있는 네 사촌 형, 아모리야. 어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하, 요즘 어두워졌다는 아들이 얘에요? 어머니 걱정시키고 말이야~”
그림자에 가려 안광에 빛 없는 아모리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란데는 거대한 손이 조금 무섭다. 마주 손 잡은 그란데를 보는 아모리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잠깐 인사 다녀올게. 여기 형이랑 있어. 어머니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아모리는 여전히 손이 잡혀있음을 깨닫는다. 고개를 올리자, 비릿한 웃음을 지은 남자가 보인다. 형? 그란데가 불안하게 부른다.
“그란데, 너… 에스퍼지?”
그란데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알았어? 알지, 그럼. 가이드인데. 그란데는 자신이 가이드의 역할마저 부여받았음에 얼굴을 망가트린다. 원죄,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걸까? 아니면 그런 능력이기 때문인가. 이대로 들켜서 어딘가에서 제 능력을 알게된다면? 그란데의 눈동자가 떨린다. 아모리는 몸을 낮춰 그란데의 귀에 속삭인다.
“알리기 싫어?”
“으응….”
“그래, 마냥 좋은게 아니긴 하지. 그럼 형한테만 네 능력을 알려줄래? 비밀로 해줄게.”
그란데가 한참 입을 뻐끔거린다. 아모리는 느긋하게 기다린다. 이미 거의 다 잡힌 물고기를 흩어놓을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은 말이지…. 그란데의 목소리가 자작 타는 소리처럼 들린다. 오랜 계획에 불을 지피는 소리다. 아모리의 입꼬리가 하늘에 닿을 듯 하다. 자신이 꿈꿔왔던 인재가 눈 앞에 있다. 이 눈 앞에! 천재일우의 기회에 아모리는 전율한다. 여전히 불안한 듯 일렁이는 눈동자 위를 손으로 덮는다. 비밀로 해줄게. 지금은.
그런 날이 무색하게도 그란데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며 도덕적으로 자랐다. 그렇지만 완전히 정의롭지도 않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 뭐라 할 수 있지만, 총 들고 길 나다니는 깡패에게는 목숨 아까워 뭐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 합리적이고, 조금은 행동력이 있는 사람. 가끔은 이기적으로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 과정에서 아모리라는 남자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란데는 경찰 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먼 곳에 있는 몬스터나 에스퍼들보다도 당장의 삶이 중요하다. 그란데가 평범한 이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란 나름의 속죄가 살짝 담긴 그런 것이다.
…아니, 따지자면 완전히 그란데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어머니는 그란데가 경찰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총이 합법화 되어있고, 몬스터가 쏟아져나오며, 에스퍼라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돌아다니는 땅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경찰 따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란데는 그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란데는 평범하지 않은 에스퍼이고, 여전히 그의 능력을 알리는 창은 흉흉하기만 하고, 그의 살갗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언젠가 닿았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에스퍼임을 알아차린 누군가 덕분에, 그는 결벽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감싸게 되었다. 그러한 강박에 가까운 증세마저도 그의 어머니의 걱정을 증폭시킨 것 중 하나일 것이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란데 또한 유감따위 가지지 않으려고 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아니, 아니다. 이제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완전히 자신을 뒤흔들고는 그 모든 것이 우스운듯 사라졌다. 사랑했나? 아니다, 사랑이라면 이렇게까지 숨이 막히지 않는다. 아끼는가? 아니다, 아낀다면 이렇게까지 다시는 보고싶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념과 인생을 송두리째 들고 나른 그 아이는 대체 무엇인가. 그란데의 삶은 이곳에 없었다. 타성과 관성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괜찮은 것이 경찰이라는 선택지 였을 뿐이다. 그 뿐이다.
하지만, 모든 우연은 겹치고 겹쳐 운명으로 돌변한다. 돌변한 운명은 인간을 그 물레 안에 넣고는 웃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따지자면 인간은 그저 휘말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도라, 이브. 원죄라 불리는 죄를 지은 인간들 모두 그랬을 것이다. 욕망이라는 우연을 내걸고는 파멸이라는 운명을 내어준다. 그란데에게 심판과 같은 능력을 주고, 원죄라는 이름을 주어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것은 죄 없이 불가함을 굳이 소리내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판도라의 상자가 결국 열린 것처럼, 이브가 선악과를 입에 벨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다시금 그란데에게 당도한다.
악마가 나를 보고 있다. 그란데는 약 십 년하고도 오륙년의 시간동안 그 아이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러나, 십여년을 보지 못한 지금에서야 그 때의 감상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밤색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버렸고, 긴 머리카락이 단발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변해버린 앞의 사람은 여유로운 낯으로 제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다. 너무 쓰다. 왜 그런 걸 시켰어? 그야… 궁금하니까! 짐짓 밝게만 들리는 목소리 속 숨어있는 검은 속내를 눈치챈 그란데의 인상은 사정없이 구겨진다.
“괜한 소리 하지말고. 뭐가 문제인데?”
그란데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피해 녹색 눈동자를 마주본다. 그 아이가 길게 눈가를 휘면서 당연한듯이 손을 내민다. 그란데는 한숨을 내쉬며 장갑을 벗는다. 한참 같은 순간을 고민하다 그 손을 잡는다. 쾅! 폭팔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너…! 그란데의 눈동자가 경악과 충격으로 물든다. 폭발에 휘말려 붉은 것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손 같은 것은 관심 밖이다. 하얀 머리카락에 핏방울이 튀었다. 하하, 역시나! 린데, 들어 봐. 나는 이걸 원했다고!
익숙한 애칭 속에서 그란데의 시야가 이지러진다. 너도 원했잖아. 그렇지? 그래서 나한테 ‘그걸’ 맡긴거잖아! 학창시절의 이야기다. 그란데는 이제 학생이 아니고, 앞의 백발 성성한 사람도 학생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란데의 목숨은 여전히 그 사람의 것이다. 목숨은 신념이다, 신념은 방향이다, 방향을 맡기면 그것으로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것이 온전히 그란데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상관 없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그란데였다. 사람의 아이야, 나는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품을 수 있을만큼의 것을 준단다. 하지만 네가 네 몫을 이 아이에게 넘겨버렸으니, 대신하여 이 아이가 미쳐버렸구나. 사람이란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 하거늘, 네 죄는 깊고도 깊어 원죄와 맞닿아 있음을 모르느냐? 신인가, 악마인가, 천사인가? 이러한 목소리들은 언제나 그란데가 선택해야할 순간에 그란데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악마가 나를 보고 있다! 물레 속에서 툭 튀어나왔던 남자가 운명에 끼워 맞춰진다. 악마고, 천사고, 신이고. 그것이 그리 중요하던가? 결국은 악마마저도 신의 종이다. 정해진 배역들을 연극 위로 올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란데가 참았던 숨을 겨우 뱉는다. 경찰인— 뭐라고? 다시 말해봐. …센티넬, 가이드, 에스퍼. 그런 것들이 되었어야 할 남자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얼마가 필요해? 턱이 떨려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말을 앞의 사람은 정확히 받아들인다. 최소 300억! 경쾌한 목소리에 그란데가 어느날처럼 눈을 감는다.
“그래서, 찾아온 이유가 그거야? 돈?”
몇십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남자는 어느샌가 뒷세계에 손을 벌려, 대부호가 되었다. 아모리 씨. 딱딱하게 떨어지는 경칭에, 이제는 눈의 흉터를 가리지 않게 된 남자가 지겨운 듯 귀를 후벼판다. 10년 전 막 경찰이 되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이 에스퍼 대응 부서로 떨어진 그란데가 가장 먼저 맡았던 일은 그였다. 모르게소 카지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적인 행위를 조사할 것. 그때 마주쳤던 아모리는 반가운 낯으로 형을 자청해가며 협조하는 척 했다.
물론, 실상은 그란데를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에 불과했다. 에스퍼조차 아닌 신입이 왜 굳이 에스퍼 대응 부서로 발령 났겠는가? 물론, 그란데는 확실하게 거절했다. 거절만 했는가? 의절까지 했다. 다시 형 같은 소리를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던가. 그의 아버지는 힘과 돈이 넘쳐나는 에스퍼들의 놀잇감에 휘말려 죽었다. 어차피 경찰 측에서는 건드리지도 못할 남자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나름 정상으로 보였지만, 정상이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고. 정상이 아니라면… 그저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그 여자는 애를 낳고 1년 뒤에 도망쳤다고 한다. 현명한 선택이다.) 미련 따위 없었다. 그래야할 터였다.
“그래, 돈. 대신 일시불로 300억.”
아모리는 의심스러운 기척을 내비춘다. 그란데는 느리게 제 앞에 놓인 블랙티를 들이킨다. 커피는 끊었다. 그날 이후로 검은 물들을 보면 미친듯이 웃음 짓던 사람이 생각나서 마실 수가 없었다. 아모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원죄를 꺼내들고 싶어했다. 어쩌면, 그 사람도. 그런 의미에서 따지자면, 그란데는 판도라도 이브도 아니다. 이브는 그 아이고, 판도라는 아모리다. 그란데는 그들이 저지르고 마는 원죄다. 그러니까, 죄 그 자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란데는 차라리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벌함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닌 그저 그가 죄인 것이다. 열어선 안될 잠금쇠가 걸려있어야만 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자물쇠는 채울 수 없다. 그것이 재앙을 불러올 만악의 근원이라 하더라도.
앞의 남자는 계산이라도 해보는 듯 손가락을 두들긴다. 꼭 옆에 산판이라도 둔 모양새다. 장사치, 제 삼촌을 죽인 것으로 돈을 벌어먹는 인간성과 도덕 따위는 멍청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듯한 최악의 쓰레기. 하지만 그란데는 멈출 수 없다. 멈출 기회 따위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버렸다.
“좋아, 거래를 하자! 300억으로는 부족해. 네 인생에 그 정도의 가격을 붙일 수는 없지. 그래도 나름 가족인데.”
“가족 같은 소리 하지 마. 죽여버릴거야.”
“하하, 팔 게 없어서 본인의 생을 파는 주제에 말이 험하구나? 뭐…. 그럴 수 있지. 이해해. 나는 너를 얻음으로써 할 수 있는게 아주 많이 늘어나거든! 천박한 사기꾼의 옆에 있는 무결하고 고귀한 인간! 좋아, 좋아. 네가 물들어버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나를, 그리고 너를 오래오래 싫어하길 바라. 너는 그 모든 것을 증오하는 것만이 가치가 될테니까!”
선연하게 웃는 낯에 찻잔이 깨진다. 그란데는 이제 엇비슷해진 크기를 지닌 손이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럽다. 마주 잡은 손에 아득바득 힘이 들어간다. 무결하고 고귀한 죄는 그렇게 포장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속죄의 길을 혼자 걷는다. 만악의 근원임고 동시에 변치 않을 선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이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는 오로지 악을 위해 존재하는 선이 될 것이다. 남에게 신념을 넘긴 자의 최후란 변변치 못한 것이라.
트친이랑 디코하면서 썼는데요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자꾸 난리쳐서 다시 못읽엇어요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잇다면 아하 이때 말을 하면서 썼군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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