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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

크레페 베더@3ed1vere 커미션

KKN5 by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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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케 카카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능숙했다. 정말로 능숙하다는 것은 아니고, 대외적으로 말이다. 일할 때라든가, 진심이 아닌 것들 말이다.

“카카시 씨. 차를 내왔어요.”

“감사합니다, 나오하라 씨.”

임무가 끝난 뒤 늘 그랬듯 나오하라 아야카가 차를 내온다. 딱히 차를 마시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나뭇잎 마을에 의뢰를 맡기는 상단 후계자의 성의를 내칠 순 없었다. 하타케 카카시는 매우 뛰어난 닌자였으니까.

“이, 이번 임무도 감사했어요. 덕분에 거래를 하러 갈 때 늘 안심이에요.”

“뭘요, 언제나 의뢰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 이렇게 신세만 지는 것이 맞는지…….”

“아유, 신세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의뢰를 받는 입장인걸요.”

“저, 저도 카카시 씨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어,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의지해주세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서둘러서 허둥지둥 자리를 피한다. 하타케 카카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저리 구는 것을 보면 저를 좋아하는 것이 맞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사실 어떻게 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나오하라 씨가 제게 고백을 해올 법도 한데, 결코 선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해 오질 않으니 자신은 임무가 끝난 후 향이 좋은 차 한 잔 얻어 마시면서 계속 임무를 받아오면 그것으로 잘된 일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이 드는 것은 나오하라 아야카의 행동이 불편하기 때문이겠지.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진심이 아니라면 -사실 진심일지라도 감정을 죽이고- 적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으니 대인관계 관리 또한 닌자의 소양 중 하나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 하타케 카카시’였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방적인 진심 어린 눈길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오하라 아야카와는 제3차 닌자 대전에서 처음 마주했다. 그것이 끝이다. 뭐가 더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게 있어선 잊을 수 없는 친우들과 했던 임무들 중 하나. 기억 깊은 곳으로 밀려나 더 꺼내 볼 일도 없던 것. 제 친우들을 그리워할 때 스치듯 생각한 적은 있나. 그래봤자 나오하라 아야카가 아닌 우치하 오비토와 노하라 린의 생각뿐이다. 정말 자신은 다시 마주할 때까지 나오하라 아야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기억력이 나쁜 것은 아니니 다시 조우한 순간 누구인지 알아보기는 하였다. 하지만 스쳐 지나간 인연이 아닌가. 상대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야기를 꺼낼 생각도 없었건만, 저를 바라보는 나오하라 아야카의 눈이…….

사실 다시 조우한 그 순간부터 눈치챘다. 그 얼굴, 눈을 보고 있자면 눈치가 어지간히 없지 않은 이상 저가 하타케 카카시가 아니라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경과 애정 섞인 눈, 마음. 나름대로 전달하려 하지 않으려고 하나 제 감정을 감추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노력이 의미 없이 줄줄 새어 나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되었더라. 2년인가……. 아무리 저일지라도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애당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저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닌자고, 나오하라 아야카는 언제 죽음을 맞이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민간인. 그래서 저를 동경할 수 있는 것이겠지. 같은 닌자였다면 제 실력이라면 모를까 다른 것으로 저를 동경할 수 있겠나. 저를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카피닌자 하타케 카카시’라는 이명을 가진 엘리트 닌자, 그것도 어린 시절에 도와주어 기억이 왜곡되고 과장된. 사실 저는 닌자라는 것을 떼고 보면 굉장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라, 닌자로서의 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하타케 카카시를 마주한다면 나오하라 아야카 역시 실망할 것이다. 그리되면 아무리 진심이라 할지라도 식고 말겠지.

그래도 별다른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제게 반한 이들이 적은 것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애정을 받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저가 관심을 주지 않아 어느 정도 사그라들기 마련이었는데, 나오하라 아야카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다른 이들에 비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한순간의 열오름이 아니었다. 그저 잔잔하게, 마음 깊이 의지하고 있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그래, 나오하라 아야카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편할 수밖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능숙한 하타케 카카시일지라도 제게 진심으로 대하는 이에게 내심 불편한 마음이 들고 만다. 이거 엘리트 닌자라는 칭호는 이제 떼야 하나.

제 인생 통틀어 진심으로 사랑함이 있을 수 있을까? 아주 어릴 적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비가 그리 끝을 내고, 동료이자 친우를 잃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제 손으로 거두며, 스승조차 떠나보내고. 보내고. 보내고. 제게 동료라 부를만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친우라 부를만한 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애정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심은 언제나 어려웠다. 제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와 제 발목을 붙잡곤 했다. 쓰레기, 라거나. 카카시, 라거나. 약속, 이라거나. 저는 닌자이니 감정을 죽여 티를 낸 적은 없지만, 그것들은 늘 제게 들러붙어 있었다. 떼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것들이 전부 나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과거의 상흔들을 몸에 새긴 채 진심이 되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때때로 상흔이 욱신거려 진심도 사랑도 챙길 수 없었다. 그러니 상대가 나오하라 씨가 아닐지라도 저는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내긴 어려울 것이다.

욱신.

하지만 나오하라 아야카가 제게 더 다가오지 않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부러 먼저 이야기해 거리를 두는 것만큼 웃긴 것이 또 어디에 있나. 나르시시즘도 적당히 해야지. 차라리 진심을 이용하여 득이라도 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 거래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고, 부러 상처입히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계속 차나 얻어 마시며 애매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어진 듯 그어지지 않은 듯 명확하지 못한 선. 계속되는 진심 어린 눈빛. 어디서부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편함. 그것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감정을 죽이고 다시 차를 입에 머금는다. 아, 향 하나는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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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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