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저주의 성흔 姓痕

미완성 소설

작은 시 by 태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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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엔 저주받은 피가 흐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듣는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물으시겠지만.

나는 이 저주가 아버지께 물려받은 성(姓)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내 의로운 최후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의롭게 살다가 요절했다는 핏줄을 타고나 아무도 누군가를 위해 나서지 않을 때 제 목숨 아끼지 않고 행동하던

의로운 이들의 흔적은 분명 내 안 어딘가에 새겨져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의로운 자가 머무는 곳에 거룩함 따윈 없다 . 자신의 삶엔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들 고통 말고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아버지가 처음 칼에 맞아 입원한 소식을

직장 동료에게서 전해들었던 날 엄마와 나는 사랑스러운 미소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그의 미련함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닫게 된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전화 한 통에 사색이 된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거리를 질주했던 일, 너무 꽉 잡은 손이 아파

우는 나를 안고선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 딸 하며 소리 내어 울던 그 모습을, 나는 가끔 20년도 더 된 그 날을 떠올리며 아버지에게 묻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는 동안 아무것도 모른 체 지내던 어머니가 당신의 일을 남의 입으로 전해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 것 같냐고.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그 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헤아릴 수 있었다 반대로 어렸기에 넘어갔던 일들은 어른 시각에선 한 없이 미웠다

이젠 알고 있다. 왜 아버지는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는 지 , 다친 건 아버진데 왜 어머니 표정은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

할머니는 우리 집이 저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전부 의로운 일을 하려다 요절했다고 말이다

. 그래서 아들만은 그러지 않길 바랬건만 따라주지 않는 걸보니 내가 죄를 지어도 단단히 지은 게 분명하다 곡소리를 내셨지.

그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는 간간히 이 의로운 사람에 대한 고충을 나누곤 했다. 나는 살아 생전 남편에 대한 할머니의 평가를 기억한다.

할머니가 말하는 할아버지는 그 날 아버지에게 소리치던 어머니의 말과 비슷했다. 그녀는 남편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족 생각 안하고 제 마음 가는 대로 살다 죽었다고, 먹여 살릴 가족과 아내를 생각했다면 그 강물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제 목숨을 아까워 해야 했다고 말이다. 그제서야 나는 할아버지가 물에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강물에 휩쓸려 죽었음을 알게 됐다.

용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롭개 죽은 할아버지는 누가 기억하는가. 죽은 아이를 묻고 살아야 할 부모에게 있어

남자의 용기는 그저 짊어져야 할 또 하나의 십자가였고 남겨진 아내에게 있어 그는 원망과 망각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를 제대로 기억해줄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작은 점 하나로 의로워졌다가 외로워지기도 하는 이 단어 속에 언어의 저주가 서려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떻게보면 의로운 사람은 곧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늘 대가를 바라지 않기에 돌아옴은 희미했고 인간이란 눈 앞의 희미한 것을 지우고

강렬한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니 어떤 시각에서 보면 그들이 쉽게 잊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의로운 자들은 왜 의로우려 할까. 그리고 그런 그는 왜 살해당해야만 했을까.


이러한 난제와 싸우는 것은 결국 의롭게 죽은 사람이 아닌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감정이 없고 세계가 없기에.

그들의 시간은 멈춰 남겨진 이들의 과거 한 편에 또 다시 남겨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겨지는 셈이었으나

이것은 심히 불공평했다. 어머니와 나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지고 또 버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의로움에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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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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