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엘도&엘라 에스피노사 남매

창고 by 니네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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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 엘도라도 산체스 사파테로 마르티네즈 플로레스 실바 페레즈 에스피노사. 그는 그다지 군대에 어울리는 남자는 아니었다. 아니면, 어울리기는 어울려도 그 길고 긴 이름만큼이나 툭 튀는 인물이라는게 좀 더 들어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엘도는 골격부터가 커다랗고 건장했으며, 그만큼 시야가 주변보다 손가락 하나부터 머리 둘만큼도 높았다. 목소리가 걸고 호탕하여 크게 웃기라도 하는 때에는 주변의 시선을 전부 잡아챘고, 맞은편 참호의 적군에게 쩌렁쩌렁 도발할 때는 아군까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눈가로 총탄이 스치고도 살아남았음을 과시하듯이 찬 안대는 부상병이라기보다 격투가의 훈장에 가깝게 보였다. 그러니까 군인의 미덕이라고 할만한 것들, 규율이니 통제니 상명하복 따위와는 영 연이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 욱하는 성격도 어디 가질 않으니, 전시가 아니었다면 상관 폭행으로 불명예제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엘라는 눈에 띄지 않는 여자였다. 단지 엘도의 동생, 그 뿐. 대다수가 이름조차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 엘라라는 애칭이 엘비라에서 왔다는 것마저도. 몇 번이나 얘기를 들어봤어도 정작 누구인지는 찾기 어려울 정도라 하면 설명이 쉬울까. 수수한 갈색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려 묶어다 막사 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간호사는 널리고 널려 있었다. 피로 얼룩져 아무리 세탁해도 자국이 지지 않는 앞치마를 두른 채 두건을 질끈 묶은 착장은 풍경에 조용히 묻히기 딱 좋았다. 엘도가 걸핏하면 엘라의 이름을 입에 담고 제 여동생이 얼마나 훌륭한 여성인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 것과 대조되게 엘라는 도통 엘도에 대한 주제를 먼저 꺼내는 법이 없으니 더 그랬다.

하지만 아무도 둘이 남매라는 사실을 의심치는 않았다. 엘도가 말을 끝까지 맺지 않아도 엘라는 이미 알아들어 고개를 끄덕였고, 엘도는 엘라의 표정에서 순종을 읽었다. 그 사이에는 한두 해 쌓아서는 성립되지 않는 이해도가 있었다. 동시에 둘에게는 남매라고 느껴지지 않는 긴장감이 섞여 있기도 하였는데, 아마 그것은 둘의 나이 차이 탓이리라. 엘도가 어렸을 적부터 업어 키웠다는 소리를 괜히 하는 게 아닌마냥 남매간에는 부녀에도 가까운 위계가 보였다. 그 긴장감은 이 장소가 언제라도 적군이 돌진해 올 수 있는 최전선이고, 엘도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장교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더 강해졌을지 모른다.

엘도도, 엘라도, 총포 소리에는 이골이 났다. 병사들은 종종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엘도는 식사를 할 때마다 엘라의 클램차우더 수프가 그립다고 불평을 늘어놓아 주변에서 야유를 들어먹었다. 엘라, 라는 이름까지만 꺼내도 "그 망할 놈의 클램차우더가 그리우시겠지!" 하고 틀어막혔을 정도다. 물론 엘도는 그런다고 머쓱해하며 선선히 물러날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고 받아쳐 제 말을 막는 것을 포기하게 하면 모를까. 엘라, 엘라, 이 험한 전장까지 따라와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는 여동생의 클램차우더 수프가.

참호전은 정신을 소비하고 신경을 갉아먹었다. 모두가 하루 빨리 종전을 맞이하길 원했다. 단, 엘라만은 아니었다. 엘라 혼자만이 종전보다도 전사 소식을 원했다. 그것이 누구의 전사소식이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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