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않은 길

아니여기가어디고

우리 마을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이 하나 있다.

발그레한 미소를 띄며 피는 능소화가

여름비와 만나 떨어졌을때,

우리는 그 능소화를 가지런히 손바닥 안에 올려놓은 채.

한 무덤 앞으로 가져가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그렇게 여름이 끝날 때 즈음이면,

그 무덤은 주홍빛 색채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

“앗, 비온다”

투둑투둑 거리며 땅을 밟는 빗소리

붉은 빛 눈동자에 빗방울이 투영된다.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것 같던 그 비는 곧 기관총을 쏘듯 무섭게 돌변했다.

“흠, 이번 장마는 꽤 빨리 왔네”

진저색 머리의 남자가 빨래를 털며 말했다.

“그러게 이제 곧 능소화도 떨어지겠다.”

삑-

습하고 꿉꿉해진 공기를 전환하기 위해 에어컨을 틀었다.

.

조심조심

사뿐사뿐

능소화를 든 귀여운 아이

갈색의 곱게 딴 머리, 머리는 바람 따라 살랑살랑

붉은 눈. 흰 피부.

발그레한 뺨,

아이의 시선은 오직 손안의 능소화만을 향한다.

찰박찰박

비온 뒤의 흙길을 밟고 밟고 밟아서 향한 그곳엔,

듬성듬성

염색하다 만 듯 놓인 능소화가.

곧이어 새 능소화가 톡!

떨어진다

“여기 는소화 임니다. 안녀하세여~”

능소화를 놓은 아이가 오밀조밀한 입을 열며 말한다.

쿡쿡

아이의 보호자는 어설픈 발음에 미소를 짓고

“는소화가 아니라 능소화야~ 그리고 허리 숙여 인사해야지?”

꾸벅

“이제 됫찌?”

“그래 이제 빠빠이 하고 가자. 능소화 빠빠이~”

“빠바이~”

철벅철벅

“아조씨”

“응?”

“긍데 이거 왜 하는거야아?”

남자는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감고 음- 따위의 진동음을 낸다.

“아마 조상님을 기리기 위해서 일껄?”

머리가 갸우뚱

머리카락이 갈대 처럼 살랑.

“기려?”

“응, 그니까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하고 존경한다는 거지”

“음~ 왜에?”

“그 분이 우리 마을사람들을 외부로 부터 지켜주셨거든.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기리는 거야~”

“왜~애~?”

아이가 원하는 대답이 뭔지 알고있던 남자는 결국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옛날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필 적에 도화라는 사람이 있었어. 도화는 도술을 부릴 줄 알았는데, 그 신비한 힘을 이롭게 써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지. 그런데 어느날, 전쟁이 일어났어. 도화는 힘겹게 도술로 자신이 살던 마을을 지켰지, 하지만 도술로도 모든걸 해결할 순 없었어. 한순간의 실수로 도화의 연인이 죽어버린거야. 그리고 그 사람을 잃은 도화는 엄~청나게 슬퍼했지”

처벅처벅

“왜~~애~?”

히히 웃으며 아이는 다음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실수로 죽었으니까~”

흠흠

목을 다시 가다듬고

”쨌든 그 뒤의 도화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어. 사람을 되살리려 한거야. 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화는 자신의 도술을 이용해 사람을 살릴 방법을 찾았어.”

“어떳게~?”

차박차박

“그 사람을 살리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바치는 거지,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 그리고 도화는 결국 그 사람을 되살리는데 성공했어.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도 그 사람을 살리기엔 부족했던 걸까? 그 사람은 온전치 못하게 살아났고 자기대신 죽은 도화를 보고 절망했어”

“헤엑, 다음믄~??”

저벅저벅

“그 사람은 도화의 죽음이 쓸모없는 죽음이 되게 하지않기 위해 능소화를 만들었어”

어느덧 그들은 한 담벼락에 서게 된다.

담벼락은 흐드러진 화려한 능소화

“그리고”

“능소화에 마법을 불어넣었지”

.

“비.

‘비가 온다

“하늘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철벅철벅

“나는 걷는다

‘아무도 없는길

“아무도 오지않은 길을

‘아무도 가지않은 길

“찰박찰박

‘왜

“왜그랬을까

‘난 왜 그를 지키지 못했을까

“왜 나를 살렸을까

‘여기는 마을의 반대편

“반대편이자 마을의 가장자리

‘ “ 아무도 가지 않는 곳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곳에만 오면 사람이 죽었다.

과연 사람이 ‘죽은걸까’

‘나는 왔다. 그를 살리기 위해

“사람이 죽었다면, 반대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부디, 나를 죽여도 좋으니 제발 그 만큼은

“나 대신 살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화야, 가라, 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너는 머물러 있니

“화야, 가라, 왜 아무도 오지 않았던 길에 네가 왔니

‘ “화야, 가라,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나는 왔다. 다시 돌아왔다.

“도화야, 내사랑

.

여기는 본래 아무도 가지 않아 우거진 수풀길

나는 여기 살아있다

“화야, 왜그랬니. 왜 나를 살렸어”

대답없는 나의 사람

갈색의 곱게 딴 머리, 머리는 바람 따라 살랑살랑

붉은 눈은 굳게 감겨있고

시체같이 흰 피부.

“왜…왜…나를 왜…살렸어 화야…”

숨이 가빠온다.

눈물이 앞을 가려 온 세상이 뿌옇다.

“으..아아……..아아아아……….화야..화야….”

아무리 흔들어도

대답없는 나의 사랑

겨울 눈송이 처럼 찬 피부를 느끼고

더이상 뛰지 않는 심장 소리를 듣고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몸이,

몸이 흐트러진다

이 몸은 완전한 몸이 아니다

이렇게 도화가 준 내 삶을, 도화의 목숨을

헛되이 할 수 없다.

나는 소화, 능소화

무더운 여름에, 가장 어두운 장마에

홀로

주홍빛으로 거리를 매우는, 빛나는 사람.

.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도화의 죽음을 알리고, 그들앞에서 능소화를 만들어, 매년 비에 의해 떨어진 능소화를 도화의 무덤 앞으로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도화에 의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러겠노라 답했다.

이제 그녀는 다시 살아갈수 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도화야,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 비록 니가 나를 기억 못해도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 매년 여름. 우리 매년 여름에 만나자”

.

담벼락

위에는 흐드러진 화려한 능소화

이젠 끝난 이야기

“그나저나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랬지! 이 녀석 이름을 알려줘도 자꾸 아저씨라고 부르고 말이야. 설마 또 까먹은건 아니겠지~?”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는 진저색 머리, 약간의 녹빛을 띄는 눈동자.

“안니야~! 알고있거든?? 아져씨 이름”

“흥! 알고 있다면 어디 한 번 말해보시지!”

“아 진쨔!! 는소화 잔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바보야, 는소화가 아니라 능소화라고. 몇번을 말해!”

터벅터벅

두 사람은 집으로 걸어간다

그 남자의

손을 잡고 걷던 아이.

아이의 이름은

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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