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역적 선택
IF 리퀘스트, 역전검사2 약 스포일러 주의
꼭 네 번째의 매무시였다. 좀처럼 태가 살지 않는 정장의 목깃을 다시 한 번 매만지며 눈앞의 여자를 응시했다. 날카로운 인상을 덜어보려 고친 화장법은 눈에도, 얼굴에도 좀처럼 익지 않았다. 장식성 없이 밋밋한 옷소매를 가다듬는 양손은 아무 것에도 감싸이지 않았으며 오른손은 비어 있기까지 하다. 거울 속의 여자는 반전상이므로 그것이 곧 자신의 모습이었다. 부자연스럽게 읽히는 스스로의 행색을 못마땅해하다 말고 카르마 메이는 멈칫하였다. 미간이 좁혀질 때마다 으레 듣곤 하였던 호들갑스러운 잔소리가 쓸데없게도 기억에 밴 까닭이었다.
“안 돼요, 안 돼. 아저씨가 말했잖아?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신뢰는 얼굴이 아닌 실력으로 얻어내는 것일 텐데. 그 이상의 완벽한 증명 수단이 있나?”
더는 채찍을 들지 않는 왼손을 들어보이며 반문하는 그녀에게 소장은 말했었다. 우리는 어떤 곤란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웃어야 하거든. 아저씨는 변호사의 자세에 대해 그렇게 배웠어. 그러니까 메이 양도 이렇게, 어때? 싱글거리는 얼굴로 스스로의 입가를 톡톡 가리켜보이는 이를 향해 카르마 메이는 곧바로 반박했다. 복수를 다짐한 자가 웃는 순간은 복수를 이루었을 때뿐이야. 구깃구깃한 낯을 한층 더 굳힌 채,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각오를 피력하는 그녀에게 소장은 그것도 그렇네, 하며 고개를 주억거려보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의 채 여물지 못한 지점을 건드리기를 잊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웃는 게 아직 익숙지 않다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마음으로 웃어보는 건 어떠려나? 두 사람 모두 솔직하지 못한 줄은 잘 알지만, 아저씨는 너희의 접견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거든. ‘복수’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메이 양으로서도 바라는 바일 테고 말이지.”
드물게도 그녀의 현재 처지를 헤아리며 조력해주는 사람인 만큼 과히 나쁘지 않은 조언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접견실의 창 너머, 수인의 차림새를 한 남자에게 꽂아줄 첫마디는 검사국을 떠나게 되었을 때부터 정해두었던 것이다. 머릿속으로 수십, 수백, 수천 번 발화했던 자신의 비가역을 전하기 위해,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움직임은 그의 쪽이 더 빨랐다. 나는 시가라키 씨의 이름을 듣고 나왔다만. 어째서 여기에 네가 있는지 모르겠군. 할 이야기는 없다. 이만 돌아가 다오. 한심하리만치 예상대로 도출되는 반응이 결국 도화선이 되었다. 언제나와 같이 홀로 멀어져가려는 남자의 등을 향해 카르마 메이가 일갈했다.
“당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왔어, 미츠루기 레이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부친의 업적을 부정하려 드는 건가?”
문간에서 간신히 두 발이 멎었다. 되돌아선 수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앉아. 이제부터 허투루 쓸 시간 따위는 없으니까. 무릎맡에 올려두었던 브리프케이스의 지퍼를 열며 그녀가 착석을 재촉했다. 마지막 페이지의 서명란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일방적인 의사로써 완성되어 있는 서류가 교도관의 손을 거쳐 그에게로 넘어갔다. 무언가에 골몰할 때의 버릇만큼은 아직 그대로인지, 종잇장들을 받아든 남자의 미간에 실금이 그였다.
“메이, 이건…….”
“DL-6 케이스의 재심 청구 서류지. 보다시피.”
“이해할 수가 없군. 도대체 왜 네가 이걸,”
“나루호도 류이치는 당신의 재판에서 패소한 이후 종적을 감췄어. 협회에서 제명을 당한 이상 더는 변호사도 아니지. 놈을 정 만나고 싶다면 자유의 몸이 된 다음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해. 나조차도 행방을 추적하는 데 실패했으니, 찾게 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을 테지만.”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나! 네가 내게 이런 것을 권할 이유 따윈!”
“……그게 아니라면. 눈앞에 뻔히 보이는 것을 일일이 설명해 줘야 알아들을 정도로 미츠루기 레이지라는 인간의 근저가 녹슬어버린 건가?”
돌연 사위어버린 불꽃과도 같이 몰락한 남자를 일깨울 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며 끝내 여기까지 왔다. 자신이 택한 바를 이제는 그도 알아야만 했다. 실로 오랜만에 채찍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꾹 참으며 속으로 숫자를 열만큼 세었다. 그제야 그녀의 옷깃에 달려 있는 배지를 일별한 미츠루기 레이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보답게 아슬아슬한, 일견 초라하게까지 여겨지는 동요에 발 맞추어 카르마 메이는 새로 맞춘 명함을 꺼내들었다. 소개가 늦었군. 나는. 버려 마땅하다 여기게 된 것을 첫머리에 내세우는 목이 바짝 죄어들었다.
“카르마 메이. 미츠루기 법률사무소 소속의. ……천재 변호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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