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천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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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 어둠 속에 파묻힌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쓰러진 위에 홀로 곧게 몸을 세우고 빳빳이 고개 든 것이 있다. 불길한 그림자 안에서 붉은 눈을 빛내며 붉은 옷을 입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붉은 것을 움켜쥔 것이 있다. 창백하기 짝이 없는 얼굴엔 선혈이 튀어 어지럽고 가슴팍은 뻥 뚫려 심장이 없고 내딛는 걸음걸음엔 뚜렷한 발자욱이 찍힌다. 뚝, 뚝
키리에멜리카 갈락샤스 보다임은 마술사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마술 가계의 일원으로서 그, 키리에는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아마 고만고만한 집안에 태어났다면 가문을 일으킬 천재로 추앙받거나 어린 것의 반항을 염려한 이에 의해 어느 순간 목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다만 비극적인 점이 있다면, 이 오랜 마술사 가문은 절대 이곳저곳 굴러다니는 뜨내기 같
그가 탄생한 날 하늘이 이르길, 누구도 너를 적대하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모두가 발드르를 아끼고 사랑했다. 아름다운 발드르, 태양 같은 발드르, 사랑받는 발드르, 창공 같은 푸른 머리칼과 황금 같은 금빛 눈의 발드르……. 그러나 발드르에게 내려진 것은 결코 사랑의 운명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으나, 예언은 발드르의 승리에 대해 노래했지 사랑에 대해
흩날리는 눈발 속을 여자는 걷는다. 눈 밟는 소리도, 기척도 없다. 두툼한 겉옷 아래 이따금 나부끼는 흰 자락엔 붉은 자욱이 점점이 튀어 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에 들린 칼날엔 피가 얼어붙어 간다. 흰 입김이 흘러나와 허공에 흩어진다. 유령이 아닌, 산 사람이다. 여자는 기억한다. 여자가 방랑 끝에 오래된 수도원에 도착했던 날도 눈이 내렸다. 군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위풍당당하게 지나는 태양은 세상을 덮은 모래를 내려다본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빛이 주변을 메운다. 방랑자는 머리 위에 드리운 검은 베일을 조금 당겨 쓴다. 내딛는 걸음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진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 무게 없는 깃털처럼 사구 위를 총총 걸어다닐 수 있긴 하다. 실제로 몇 번 해 본 적도 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