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과제 1

마법의 역사

Aporia by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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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짧은 지식으로나마 생각하기에, 마법의 역사는 마법 그 자체와는 달리 신비롭지도, 다채롭지도 않다.

아킬리즈는 과제 첫머리에 꽤나 도전적인 문장을 썼다. 글자 역시도 그의 표정처럼 한 자 한자 고집스레 꾹꾹 눌러서. 어쩌면 이 과제를 낸 후에 교수님께 불려가서 면담을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아킬리즈에게 자각이 있든 없든 간에― “새벽의 아이들”이라는 것은 이제 혈통을 넘어 어떠한 특권 내지는 주시 대상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어둠의 마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을 쓴대도 눈감아줄 테다. 마왕은 지는 해였고 아이들은 밝아오는 새벽이므로.

역사는 온통 반복되는 분쟁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거인을 몰아냈고, 고블린을 굴복시켰으며, 더 이상 외부의 존재들과 맞설 필요가 없어지자 혈통으로 동족을 갈라 세력을 다퉜다.

아킬리즈에게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제 심장에서 싹틔운 믿음이 있다. 그는 익숙한 예언의 시구(詩句)를 적고 마법 사회가 오늘까지 그 예언을 해석하기 위해 분투해온 결과를 그 아래에 적었다. 모든 정보는 하나의 단어로 취합되었다. 희망.

아킬리즈는 마지막에 한 문단을 덧붙였다.

어쩌면 이 비극적인 멸망의 징조는 기회다. 마법사 사회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 혈통을, 종족을 넘어 평등하게 들이닥친 재앙 앞에서, 타인과 손을 잡고 함께 맞서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기를. 그 새로운 페이지를 쓸 자격이 내게 있다면 결코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리 하고자 한다.

참으로 치기 어린, 순진한 문장이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킬리즈 헤르모드는 아주 오래 전에 썼던 과제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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