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너의 이야기
끝매듭.
그 날은 유독 고요했던 것 같다. 아니, 네가 그렇게 떠나갔기에 그렇게 고요했던 것이겠지. 개성이 확고한 모두를 한 데 모았던 것에는 네 덕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록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어 너를 돕지는 못했지만, 너의 모습은 언제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항상 저를 향해 먼저 다가와준 너를 기억했다. 그 온화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차마 너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겠더라. 제 이야기를 숨길 수 없겠더라.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너는 내가 아무리 숨기려 노력해보아도 나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나를 따스히 안아줄 것만 같았다. 어머니라는 것은 그런걸까?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나중에서야 후회되었다. 항상 제게 이야기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보았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했던 사람은 흔치 않았다. 제게 기대던 너의 그 온기가 마치 잔상처럼 남아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때로 다시금 돌아갈 수 있다면 네 그 작은 머리를 쓰담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가 힘들 때는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힘든 이야기였으면 더더욱. 하지만 너는 내게 다가와줬다. 너도 힘들터인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너는 온기를 나눠주었다. 그 다정함이 잊혀지지 않더라. 부러 믿으면 안된다. 밝은 이야기만은 아닐것이다. 이리 말해도 너는 가지 않더라.
무리에서 떨어져 걸음을 옮겼다. 하염없이 발을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이. 그렇게 하릴없이 걷다 보면, 이 곳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초목이 보였다. 작고 여린 가지가 새로 피어나고 있었다. 외딴 곳에서 홀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은 모습이. 작고 여린 가지에 불과하지만 당당히 그 자리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것이 마침 너와 닮았더라. 그 앞에 자리잡아 몸을 숙여 하얀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색조 없는 단조로운 꽃잎을 보고있자면 너와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언제나 은은하니 미소를 피우며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가장 만개하였을 때 꺾여버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의 기억에서 살아있을테니. 다행이라 말해도 되는걸까. 초목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에서 너를 보내주는 것이 가장 너에게 어울릴까 고민해보니 이것만큼 좋은 선택지도 생각나지 않더라. 너는 단단하지만 여리고, 푸르지만 화려한 이 작은 초목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곳에서는 네가 그리 보고싶어하던 이와 만났을까.
그곳에서는 네가 더 이상 울지 않을까.
눈을 감고, 손을 모아, 너를 향한 기도를 올렸다. 비록 이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특별한 종교가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번만큼은 바래왔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기도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부디 그 곳에서는 네가 외롭지 않기를. 그리 보고싶어했던 이들과 마주하기를. 과거의 고통은 모두 잊고 다정한 네가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 부터 바람이 불어왔던 것 같다. 제 분홍빛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다정한 바람.. 네가 말했던 그 다정한 바람이라는 것이 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쩐지 지금만큼은 알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불어온 바람을 타고, 나의 바람도 조금 더 불어넣어주었다. 제 앞에 있는 푸른 초목을 감싸고 지나가 하늘로 날아갔다. 파스스 거리는 나뭇잎이 부대끼는 소리가 제 귓가에 울려퍼졌다. 고요했다. 평온했다. 마치 너의 품처럼.
네가 내게 바랬던 것은 이루어질 것 같아. 아무래도 시간은 나의 편이었던 것 같아서.
너의 이야기는 끝매듭을 지었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직 엮어가는 중이니까.
네 몫의 이야기도 내가 짊어지고 갈게. 그래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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