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

끝나지 않은 이야기

기억할게, 언제까지나.

소확행 by rain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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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꼈다. 그 마지막을.

적의 공격을 차마 피하지 못하고 제 심장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용암같이 뜨거운 혈액을 내뿜는 제 몸뚱아리를 갸누지 못했다. 분명 이대로 다시 뜨지 못함을 직감했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이치에 어긋났다. 뜨여질 일 없을 눈꺼풀이 뜨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이 건강했다. 분명 눈을 감기 직전에도 성한 곳이 없었으니까, 순간 꿈을 꾸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치까지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 이 분위기를 가지고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 있던 것 까지는 아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니 네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이리도 네 모습이 선한데,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네가 없었다.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들이 뭐라고. 우리들이 뭐길래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이런 선택을 하였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한 선택은.. 너를 존중하는 것 이었다. 너의 그 선택이 헛된 선택이 아니길. 너의 기대에 보답하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러니 나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한 너를 바람으로 내려주었지. 그 바람을 신기해하던 네가 좋았다.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생각났다. 제가 부탁한 나뭇가지들을 줍기 위해 다니다가 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지. 땅을 바라보았다. 너와 싸우던 때가 생각났다. 힘들어하던 너를 달래주지 못한 게 한이되었다. 같잖은 동정 같은 것은 비단 쓸모 없다고 느꼈는데, 그냥 달래줄 것을 그랬다.

너에겐 이것이 해피엔딩일까. 그래도.. 인사 할 시간 정도는 조금 더 있어주길 바랬는데. 너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지만, 네 덕에 제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져 갈 수 있었다. 그러니 결심했다. 너의 이야기를. 너의 존재를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해서. 이 세상에 남기겠노라고. 제가 여태 모아왔던 이야기들 중. 가장 고귀한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 일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라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아니, 가치로 환산조차 할 수 없었지. 가치로 환산하는 순간 그것은 그 만큼의 명예를 잃는 것이니까.

너는 도망쳤다 고해했지만, 도망친 것이 아니야. 너의 상냥한 마음씨가 다른 이들의 등을 밀어준 것이지.

너를 위해 이 하얀 꽃다발을 바친다. 하얀 꽃다발을 사서, 꽃잎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제 품에 한가득 담긴 낱낱개의 꽃잎들을 바라보다가 바람에 실어 날려보냈다. 부드럽고 다정한, 네가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도록 제 모든 감정을 담아 바람을 만들어낸다. 온전한 꽃의 형태는 잃었지만, 이것은 내 나름대로 너를 위한 추모일지니. 언젠가 네가 활공했던 저 하늘로. 너의 고향이 있을 그 곳으로. 너를 위한, 너에 의한 감정을 담아 하늘 저 멀리. 네가 이어준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게. 네가 이어준 인연을 소중히 여길게. 네가 이어준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거야. 너의 시계는 내 심장 안에서 뛰어갈테니.

클락.

명예로운 시간의 이치여.

부디 시간의 틈새에서 평안하길.

— 그러니 푹 쉬어.

이것은, 너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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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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