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ective.0
Dawn
CP 놔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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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었다. 보통의 바이러스는 더 많은 개체를 남기기 위해 치사율은 낮아지고 전염률은 높아지기 마련이었으나, 좀비 바이러스라 불리는 NV는 날이 갈 수록 강해지기만 했다. 어찌나 영악한지 숙주를 반쯤 살려둔 채로 몸을 지배해 자신을 전국으로 퍼뜨렸다.
학자들이 당황하며 학회에 이런 저런 보고서를 제출하는 동안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경을 폐쇄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발을 묶어버렸다. 지역이탈금지는 결코 권고사항이 아니었다. 가족을 보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필요한 물자가 있어도 지역 간에 주고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는데 부족하다 느끼진 않았다. 정부에서 내려오는 보급품의 양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지를 빼앗긴 사람을 사람이라 볼 수 있던가? 일부 국민들은 감염자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냐며 반발했으나 겨눠지는 총구에 점차 입을 다물었다.
그런 방역 정책으로 2년을 버텼다. 그 2년 동안은 정당방위를 제외하곤 감염자들을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정부는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구역 내부에 있던 감염자들을 모조리 사살했다. 그리고 수도와 그 인근을 중앙특별안전구역으로 지정했다. 바이러스에 걸린 이에게 더 이상의 인권은 없었다.
또한 개인이 감염자를 죽이면 포상을 줬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직업 중 하나가 '좀비 헌터'였다. 좀비 헌터에게는 중앙특별안전구역을 제외한 이주의 자유를 허락했다. 그러나 좀비 헌터는 1년도 채 가지 않아 점차 그 수가 감소하더니 이제는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정부가 내려주는 '돈'이란 포상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물자 부족을 점점 체감하던 그 시기에 종이 쪼가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NV가 발생한 지 고작 3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지역이탈금지법은 여전했으나 좀비 헌터로 인해 그 의미가 바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중앙특별안전구역으로 가길 희망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중앙특별안전구역의 문을 두드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갈 수는 없었다. 아니, 아무도 갈 수 없었다. 안전구역 내부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안전구역이 선포되기 오래 전부터 고위계층들과 재벌들은 이미 동향을 파악이 끝난 상태였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최대한 금으로 바꾸고는 꼭꼭 숨어있었다. 그리고 수도에 안전구역이 선포됨과 동시에 스멀스멀 나타나 자연스레 안전구역 입주에 성공했다. 금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가치가 있었다. 부자가 아니면, 고위계층이 아니면 더 이상 사람으로 살 수 없었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악한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났다.
그 무렵 그나마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 방송이 꺼졌다. 악은 사람들의 불안함을 먹고 자라나 이내 사람들을 삼켰다. 그야말로 외부는 무법지대였다. 정부는 무책임했다. 소량의 보급품 증정과 함께 사태를 진정시켜보려 애쓰고 있다며 다툼을 멈춰달라는 말만을 기계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처음엔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합쳐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인 상황도 잠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단지 빵 하나를 더 가져갔다는 이유에서. 어른이 아이를 죽였다. 청년이 노인을 죽였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그런 사태가 너무 빈번해졌다. 그리고 곧 정부에서 시청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전달했던 보급품이 끊어졌다. 살인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의 원인이 보급품이기에 보급품 조달을 중단한다는 말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참 번지르르했다.
사람들은 또 한 번 분노했다. 마지막 힘과 선을 쥐어짜 중앙특별안전구역으로 돌진했다. 사람이 밀집되어있을 때 감염자가 발생했고, 그대로 그들도 모두 함께 감염자가 되었다. 그 후로 아무도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의지가 생겨날 힘조차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분노도 허기짐을 달래줄 순 없었다. 다시 칼은 가까운 곳을 향했다. NV 발생 4년 차의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5년 차. 며칠 전 전기가 끊어졌다. 전기가 끊어지니 물도 끊어졌다. 전기가 끊기기 전엔 죽을 것 같았어도 살만한 정도였다. 예준은 역 체감을 느끼며 오늘도 힘겹게 눈을 떴다. 동도 트기 전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마실 것까지 구해다 주려면 몸을 두배로 움직여야만 했다. 몸이 고단한 게 느껴졌지만 멈출 순 없었다. 멈추지 않다 보니 또 달리게 되었다. 제가 아니면 다 죽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아주 건강한 것 같다가도 별것 아닌 것에 쉽게 병들고, 쉽게 죽었다.
사람 자체가 많던 동네는 아니었기에 거리에 좀비가 많지는 않았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나 가장 가야 할 큰 마트는 거리에 없던 좀비들이 다 저기에 가 있나 싶을 정도로 좀비가 득시글했다. 그리하여 예준은 늘 버려진 작은 편의점이나 물품이 거의 없다 싶은 가게들, 또는 폐가를 뒤지며 아이들과 제가 하루 이틀 정도 먹을 양의 음식을 구했다. 오늘은 물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겠노라, 예준은 다짐했다. 사실 나름 깨끗한 물을 계속 먹고 쓸 수 있었던 때엔 물이 무게가 있어 기피했었지만, 인제 와서는 물이야 말로 필수 불가결이었다. 나중이 되면 삼 일 치 먹을 음식과 하루치 먹을 물의 가치가 맞먹는 때가 올지도 몰랐다. 지금도 물 경쟁이 엄청나게 심해져 조심하고 있는데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리라.
예준은 현관 앞에 털썩 앉아 다 헤진 운동화를 신으며 끈을 조여 맸다. 밑창이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운동화는 5년 전, NV의 등장 직전에 예준이 처음으로 사치를 부려본 삼만원짜리 운동화였다. 꼭 이 운동화를 신고 보육원을 떠나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이젠 쓸모도 없는 다 지난 이야기였다.
"다 낡았네.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하고."
괜스레 흙먼지가 묻은 운동화를 툭툭 털던 그때, 작은 온기가 예준을 뒤에서 폭 끌어안았다.
"형아... 또 나가아...?"
아직 어두컴컴한데 무섭지도 않은지 잠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준수가 예준을 끌어안았다. 준수는 아이들 중 가장 막내로 이제 고작 아홉살이었다. 준수는 예준의 품이 만족스러운지 자신의 볼을 예준의 등에 마구 문질렀다. 젖살이 빠지지 않아 말캉거리는 촉감이 예준의 등을 타고 따뜻하게 흘러 들어갔다. 예준은 늘 그랬듯 등을 반쯤 돌려 아이를 껴안고 어린 살의 향을 맡았다. 이것만이 예준이 다치지 말아야 할 이유였고, 또 살아 움직여야 할 이유였다.
"응. 형 다녀올게. 가서 더 자, 준수야."
"형아 왜 이렇게 맨날맨날 나가? 어제도 가고, 어제어제도 가고..."
"우리 준수, 형이랑 같이 있고 싶었구나? 형이 오늘 그럼 조금 일찍 들어올까?"
준수가 맑은 눈을 빛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준은 얕은 웃음을 지으며 준수를 재차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놓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열리고 하민이 눈을 비비며 무언갈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현관에 있는 예준과 준수를 보더니 안심하는 듯 큰 숨을 내쉬고는 다가와 준수를 덥석 안아 올렸다.
"이준수, 자다가 너 없어져서 깜짝 놀랐잖아. 형, 가요?"
"응, 다녀올게. 애들 밥 좀 잘 챙겨주고."
"형, 요새 너무 무리하는 거 같은데... 이젠 저도 충분히 나가도 될 나이인 거 알죠?"
"씁, 미자가 말이 많다. 키 크게 들어가서 잠이나 더 주무세요."
"이미 클만큼 컸거든요? 이제 형보다도 크다고요 제가. 아, 잠깐만 있어 봐요."
현관 앞에 서 있는 예준을 두고 하민은 잽싸게 부엌으로 향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준수가 재밌다고 꺄르르 웃었다. 잠시 뒤 하민은 예준에게 종이에 둥글게 싸인 무언가를 건넸다. 어제 먹다 남은 감자였다. 몇 년 전 보급품이 활발히 들어오던 때에 싱싱한 감자 두 알과 고구마 서너개를 아이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보육원 앞의 텃밭에 심기 시작했는데, 근래 들어서야 농사짓는 법을 확실히 깨달아 그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다.
"애들 먹을 거는 어쩌고?"
"일어난 김에 지금 또 찔 거예요. 아니, 그거 뭐 몇 알도 아니고 고작 한 알인데 뭘 애들 걸 생각해요? 형 나가서 하루종일 고생하,"
"하민아."
준수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준은 말을 끊었다. 하민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아내고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예준은 입술에 호선을 그으며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하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잘 먹을게. 챙겨줘서 고마워. 그럼 나 이제 진짜 나간다?"
하민은 예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준수도 함께 흔들었다. 예준은 그들을 향해 한번 크게 웃는 모습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알 수없는 얼룩이 잔뜩 묻은 철제 배트를 집어 들고는 보육원에서 유유히 멀어져갔다.
그렇게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를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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