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동행

브롤스타즈 by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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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글피 정도 지나고 나서야 혼자 거닐고 있음을 깨달았다. 혹여 내 발이 타박, 타박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될 지경이다. 글피라는 시간을 걸었으니 거진 마비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 기차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마치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루프. 방금 전 지나친 9번 출구는 또 내가 걸어 앞으로 수백 걸음 갈 즈음에 다시 나타나는 기분 … 마냥 즐겁지는 않구나, 라브린스의 저주에 걸린 것 같다. 나는 순간 내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망상을 한다. 다라락 다라락 바퀴 굴리는 소리만 들린다. 주변의 누군가가 휠체어라도 굴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 다리는 여전히 걷고 있다. 걷고 있어야만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점차 줄어든다. 주린 배는 마지막으로 들이킨 술을 역류하기 직전에 걸쳐 있다. 욱욱거림을 참고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으니 게워낸다 한들 괜찮을 것이다. 난 가만 생각하다가 취한 척 걷기 시작했다. 비틀, 비틀, 그리고 털그럭, 하고 구둣바닥이 넘어지는 소리, 몸이 앞으로 쏠리는 … 그런 불길한 … 쾅.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본성이 말한다. 남자는 천천히 팔과 손바닥을 바닥에 짓이기며 힘이 좀체 들어가지 않는 상체를 겨우 몸뚱이 옮길 의자에 실었다. 곧 기차가 올 시간인데, 이러고 있어선 안 된다. 허무하다. 그는 다시금 휠체어를 굴려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타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타박. 타박. 새벽 네 시의 기차역은 좀체 멈출 줄 모르는 다르락 다르락 ㅡ 드르륵 드르륵 ㅡ 덜컹 ㅡ 덜컹 ㅡ 소리로 메워진다. 사람의 묵음기능이 없는 기차역은 발소리라고 착각하는 음성이 이리저리 웅웅 울릴 뿐이다.

“함께 걷는 건 늘 즐겁단 말이지.”

남자는 웃으며 옆을 바라본다.

“그렇지?”

허공 속에서 같은 남자가 대답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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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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