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조디 팬케이크 썰
새벽부터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알람을 모조리 끄고 조디는 오랜만의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달달하고 포근한 냄새와 몸을 감싸는 푹신한 감촉, 나른한 감각을 한데 묶어 카테고리에 넣자면 행복에 들어갈 것이다.
조디는 이 기분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딱딱하고 어두운 관이 아니라 솜에 둘러싸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웅크리고 이불로 감쌌다.
다시 잠에 빠질 무렵, 꿈에서만 존재해야하는 행복을 눈치채고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집에서 달달한 냄새라니 꿈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집에서 흘러 들어왔을 수 있으나 이렇게 후각을, 그리고 식욕을 자극할 정도로 선명할 수 없었다. 달달한 냄새가 위협적일리 없으나 그녀 성격에 상황을 확인을 해야했다.
머리맡에 둔 총을 등 뒤에 숨기고 기척을 숨겼다. 한걸음 딛을수록 그녀의 조심성을 알리기라도 하듯 배에서 허기짐을 알렸다. 긴장을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음식을 뺏으러 가는 모양새 같다 느꼈지만.
매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뒷모습이 주방에 서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때 맞춰 왔어." 하고 말을 건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조디는 의자에 풀썩 앉았다.
"놀랐잖아. 아직 안 갔어?"
맥이 풀려 식탁에 엎드리자 오키야가 뒤를 돌았다.
"내가 가길 바라는건가?"
"슈. 한 번도 자고 간 적없잖아."
"네가 바로 잠드니 허락 구할 사람이 없더군."
어제처럼 단정한 얼굴과 차림 그대로다. 조디는 어깨에서 흘러내린 끈을 올리며 컵에 물을 채웠다.
"다음엔 그냥 가도록 하지."
아카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상대가 말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서운한 감정 하나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기에 조디는 다급해보이지 않도록 물을 천천히 마시고 "그럴것까진 없어."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또 휘말려선 안된다.
그가 이 집에 있는 이유도 자신이 먼저 제안을 했지만, 이것도 아마 아카이의 의도였다. 언젠가 조디 집에 놀러왔던 어린이 탐정단 아이들이 조잘대는걸 참을성 있게 들어주더니 '재밌었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조디 선생님 집에 가보고 싶네요' 하고 눈웃음을 치는데 조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반칙도 서슴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뭐하는거야?"
"보시다시피 팬케이크 만들어. 아이들이 또 만들러 온다고 했잖아. 네 성격에 뭘 해먹진 않았을거고. 찾아보니 역시 그대로 있더군. 넌 뭘 먹기는 하는거야? 이 집에 냉장고는 필요없을 것 같은데 기부라도 하지 그래."
"그러니까 왜 슈가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는지 묻는거야."
"넌 전날 힘들면 아침을 꼭 먹어야 하니까."
아카이는 불을 끄고 팬을 흔들어 내용물을 담았다. 아카이가 그리고 오키야라는 낯선 얼굴이 다가와 심드렁하게 보고있던 조디 앞에 접시를 내놓는다.
달달한 냄새가 조디를 스쳤다. 아카이는 포크와 나이프, 시럽, 커피를 차례로 놓고 맞은 편에 앉았다.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신문을 펼친다. 외모가 바뀌어도 오키야 스바루 안에 아카이 슈이치는 너무나 그대로였지만, 아카이가 자신의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제게 식사를 사다주는 것이 아닌 요리를 해주는 일도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조디는 팬케이크의 따뜻함에 버터가 서서히 녹는걸 지켜봤다. 자로 잰듯 반듯하게 자른 버터가 서서히 제 몸을 뭉그러트리고 팬케이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사방으로 흘러 이내 안으로 스며든다.
"왜 그러지?"
아카이는 어느새 신문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언제나 다정함을 만들어내던 얼굴에 미간이 좁혀든다. 의문 속에 재촉이 담겨있었다.
"이상한 건 넣지 않았으니 안심해."
말하며 조디를 바라 봤는데 담뱃재가 서서히 타고들고 있었다. 재가 흩날리는 걸 싫어하는 집주인 성격을 너무 잘 알기에 그는 어딘가에 둔 재떨이를 찾아왔다.
그때까지 조디가 망설이는 이유가 조디에게 검증되지 않은 요리실력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신문에서 눈을 떼고 담배만 줄곧 태웠다. 한참 뒤, 조디가 시럽을 들고서야 다시 신문에 집중했다. 버터가 사라진 자리에 시럽을 조심스럽게 부었다.
"이것도 유키코 씨한테 배웠어?"
"아니. 설명서대로. 생각보다 쉽던데."
선뜻 입에 넣지 못할정도로 속이 복잡한데 팬케이크를 자를 때마다 푹신함이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조디는 관계를 하고 나면 허기를 느꼈다. 부정하고 싶지만 식을줄 모르는 단내가 그녀의 위를 자극했다. 차라리 일어나지 말 걸. 하지만 식욕으로 후회를 찍어 눌렀다. 여러겹을 한번에 넣기위해 입을 벌리던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손바닥으로 아래턱을 문지르자 아카이가 신문을 내려 얼굴을 보인다. 그녀가 낸 작은 비명소리를 듣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신문을 접었다. 자신이 우려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아파?”하고 물었다. 조디는 몇 번 더 문지르더니 대수롭지 않게 크게 벌려 입안으로 팬케이크를 넣었다.
“오랜만에 해서 뻐근한 것 뿐이야.”
“자주 써줘야겠는데.”
“당신 그런 말 할때마다 늙은이 같다고.”
“그래서 맛은?”
“뭐, 좋았어.”
한참 우물거리던 조디는
“잠깐, 팬케이크 물어본거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사람 헷갈리게 하지마.”
“내가 뭘.”
아카이는 모른척 턱을 괴고 능글맞게 웃는다.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또 말려들게 뻔했다. 종종 오키야 스바루의 모습에서 아카이를 발견할 때면 조디는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런식으로 제 안에 흩어진 아카이의 조각을 하나하나 끼워맞췄다. 목구멍이 너무 달아 커피를 마셔야 했다. 그 순간에도 식지 않은 커피 제게 너무 완벽해서 조디는 나즈막하게 아카이의 이름을 불렀다.
“보통 섹스한 상대가 다음날 아침을 차려주는건 사랑하는 사이거나 잘 보이고 싶은거잖아.“
시럽을 더 얹어 조각을 씹으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마주했다. 아무렇지 않게 찾아와 몸을 섞고, 이제 아침까지 내어오는 남자를.
“내가 더이상 기대하게 하지마.”
여기까지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날씨 얘기하듯 담담한 얼굴을 보고 아카이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잡고는 천천히 손안에서 굴렸다.
“오해하게 했다면 사과하지. 하지만, 언제나 너에게 잘 보이고 싶은건 맞아.”
그리고 불을 붙이며 덧붙였다.
“내겐 당신이 필요해.”
그말은 조디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 진지한 얼굴을 빤히 보고있으니 이내 눈웃음을 친다. 마치 너도 그렇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녀는 포크 가득 팬케이크를 찍어 입에 넣었다. 식도를 넘어가는 당도에 질식할 것 같았다. 한볼이 튀어나오도록 우물거리자 “그런 말 한 것치곤 잘 먹는군.” 하고 웃는다.
“음식은 죄가 없으니까”
접시에는 진득한 시럽만이 남아있다.
“다만, 선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오래 연애를 안 했더니 작은 일에도 설레거든.”
“아침은 금지?”
“소파에서 자고 가는 것까지.”
포크를 접시에 올려두다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핥았다.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조디를 빤히 보고 뒤늦게 액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목에 손을 갖다댔다. 삑 소리와 함께 “네, 오키야 스바루입니다.” 하고 다른 사람이 되버리고 만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밖으로 떠들석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스바루 씨! 어디세요? 박사님이! 왜 집에 없어요? 어디갔어요? 늦잠자요? 아유미는 오늘 7시에! 이제 일어났어요? 제각각의 소리를 너네 좀 진정하라고! 코난의 한마디가 진정시켰다.
“아, 지금 잠시 조디 선생님 댁에 왔어.”
그는 코난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아니. 나가려던 중이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마시던 커피잔을 들고 접시를 향해 손을 뻗길래 조디는 고개를 저었다. 의아한 눈으로 보고는 “그래, 박사님 댁으로 가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내용물을 버리고 세척기 안에 둔다. 그 모습을 보느라 조디는 쿨키드가 왜?라고 묻는것도 잊었다. 언제나 그는 조디에게 익숙했다. 어느새 겉옷까지 챙긴 그가 타인의 목소리로
"다녀올게요. 조디 선생님."
인사를 했다. 그건 퍽 다정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아카이가 앉았던 자리를 눈에 담았다. 아침, 신문, 커피 조차 그대로인데 우리 사이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조디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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