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불가항력
아카이 슈이치 싫어하는 이야기2
* 시간 및 관계 날조 존재합니다
이 남자는 어렵다.
오키야 스바루를 아는 이에게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좋은 사람이라 말할 것이다. 그는 항상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이가 쉴 새 없이 오키야 씨, 오키야 씨 하고 부르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귀찮은 낯 한 번 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말을 들었다. 나는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남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경계했다. 무른 얼굴로 계절 따위 상관하지 않는 옷을 고집하는 면 때문일까?
목소리에 어울리는 다정을 베푸는 게 어딘가 사기당하기 딱 좋은 성격 같은데, 꼬마 탐정과 진지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날카로운 감을 갖고 있었다. 쿨키드가 무한히 신뢰하고 있는 사람을 나는 좀처럼 신용할 수 없었다. 그는 버릇처럼 한 발짝 물러나 사람을 응시했다. 그 시선은 빛에 스며든 그림자와 같아 알아채기 전에 솜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오키야 스바루가 상냥한 낯으로 조디 선생님, 하고 부르면 누군가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지고 싶었다. 그림자가 드리우면 숨어있는 직감이 속삭였다. 그에게 가까이 가선 안된다고.
그런 감을 뒤로하고 쿠도 저택을 두드린 것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난 후였다. 탐정단 아이들이 건네준 파티 초대장을 들고 찾은 장소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마주했다. 아가사 박사님 집 맞은편이 오키야 스바루가 묵고 있는 곳임을 떠올린 것은 아유미가 루돌프 머리띠를 씌워준 뒤였다. 안쪽에서 주스를 들고 나타난 오키야는 아이들과 같은 머리띠를 쓰고 루돌프 코를 붙이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언제나 내 방문에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 당혹스러운 만남을 계기로 미뤄둔 결심을 했다.
그런 마음을 먹고 파티가 끝나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길 자처하는 것으로 상황을 회피했다. 출발 전에 내린 눈은 금방 몸집을 불렸고 베이커 가 도로 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정체구간에 머물며 나는 뒤로 미룬 일에 초조하기보다 안심이 됐다. 악천후를 변명으로 오늘 그와 마주하지 않기를. 늦은 시간을 핑계로 집으로 향하는 상상을. 점차 쌓여가는 눈을 보고 있으니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겁함과 같아서, 마지막으로 꼬마탐정을 탐정 사무소에 내려준 뒤 차를 돌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떠들석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자동차 바퀴가 눈을 밟는 소리만 들릴 때즈음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박사님 집이 아닌 맞은편에 차를 세웠다. 곡선이 우아한 철문 앞에 주차를 하고 결심을 크게 들이쉬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망설임 없이 “누구시죠?”라고 묻는 질문은 준비된 것처럼 느껴져 불이 켜있는 2층을 힐끔 바라봤다. 2층에 있던 그가 우연히 1층으로 내려왔다 방문객을 맞이한 거라고 생각하며.
“조디 스털링이에요.”
소개를 잠시 망설였다. 전에 왔던, 이라고 해야할지, 오늘 파티에서 만나고 해야할지. 짧은 부저음이 고민을 잘라냈다. 냉골 같은 철재에 손바닥을 댔을 때, 쿠도 저택에 들어오며 허락을 구한 적이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무례하게 찾아와도 대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현관을 두어 번 두드리면 지금처럼 오키야는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문을 열었다. 문에 못 보던 크리스마스 리스가 달려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평범한 대학원생에게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가 사건에 익숙한 수사관의 감인지, 개인적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오키야는 나를 보고 의외의 손님이라는 듯 조금 놀라하면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를 밤늦게 찾아온 이유를 오해라도 할까 봐 “할 말이 있어서요.”, 하고 흐리게 입을 떼자 오키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 오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성급하게 정정하지 않았다. 등 뒤로 겨울바람이 흩어지며 미약하게 술냄새가 났다.
“밖에 눈이 많이 오죠? 아이들이 좋아했겠어요.”
“네...”
“추우실 텐데 차 한 잔 드릴까요?”
오키야는 대답이 중요하지 않은지 곧장 사라져서 낯간지러운 손님 대접을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가 외부인을 안내하지 않아도 익숙하게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았다. 몇 번이나 앉았던 소파는 기억보다 감촉이 좋았다. 닿기만 해도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아늑해서 뒤늦게 소파를 고른 집주인의 안목을 깨닫는다. 맨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사진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한 아이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에 오키야 스바루는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아 그동안 내가 해온 일에 죄의식이 피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무렵 커피향기가 밀려왔다. 차를 내올 것처럼 묻던 그는 마음대로 메뉴를 변경한 듯했다. 작은 트레이를 들고 오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우리가 만날 약속을 했던가, 잠시 생각했다. 예의상 감사를 표현하고 잔을 들었다. 겨울바람에 얼어붙었던 손가락 사이사이를 녹이는 동안 쉽게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하기 위해 입을 열지 못했다.
“조디 선생님?”
잔을 내려놓자 오키야는 미약하게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부탁이요?”
“다음에 제가 오키야 씨를 찾아오면 절대 받아주지 마세요.”
“그 조건에 오늘 같은 방문도 포함되나요?”
그가 ‘오늘 같은’ 방문에 ‘오늘 이전’과 다른 점을 짚어낸다. 이전의 만남이 떠올라 민망함에 작게 헛기침을 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쿠도 저택을 방문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맨 정신은 처음이고, 술에 취한 채 여러 번 그를 찾아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지금보다 따뜻했지만, 계절이 막 바뀌어 찬바람이 불었던 날. 베이커가 길목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붙잡았다. 오키야는 차를 세우고 내 이름을 불렀다. 오키야 스바루, 기억하시죠? 전에 코난이랑 한 번 사건 해결했었어요. 몽롱한 정신 속에서 참혹했던 사건보다 모서리가 둥그런 안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면 같은 웃음과 남들보다 부드러운 머리색을 인식했을 때는 그를 집 안에 들이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불행하게도 취해 있었다. 한 달. 내가 사랑한, 아카이 슈이치의 죽음을 억누를 수 있는 마지노선은 고작 한 달이었다. 그때 나는 아카이와 이별은 처음이 아니기에 두 번째를 받아들이려 완벽하게 노력 중이었다. 어설픈 회피로 이별을 받아들이지도, 지옥에 빠지지도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 속에 허우적댔다. 흐릿한 시야 속에 오키야가 밀려왔다 사라졌다. 단단한 품에 안겨 위로 보이는 얼굴을 껴안아 시야를 가렸다. 나는 무의식에 다른 이름을 내뱉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는 듯했지만,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무슨 일인지 묻거나 어설프게 위로하지 들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사연을 물었다면 술에서 깨어났을지도 몰랐다. 사과와 함께 그를 돌려보냈을 텐데. 그럼 온전히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면서 취기가 올라오면 버릇처럼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미련처럼 배회하다 타인의 손끝에서 맡았던 미약한 담배 연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연과 꼬마탐정이란 접점을 제외하면 만날 이유가 없던 남자를. 몇 번 꼬마탐정과 드라이브를 하며 데려다준 아가사 박사님이 맞은편에 남자가 산다는 사실을. 사실 술은 그에게 가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키야 씨에게 안긴 순간을 계속 떠올렸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그는 너무나도 내 미련과 닮아 있었다. 피부를 쓰다듬는 손길 하나, 버릇, 내가 좋아하는 순간까지 훤히 알고 있어 내 몸에 무언가 적혀있는지 살펴볼 정도였다.
변호를 하나 하자면 그는 알려주지 않은 집에 찾아온 불청객에게 선뜻 문을 열어주었고, 나를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눈치 빠른 그라면 내가 왜 자신을 찾아오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원래 사람이 물러서 거절을 못하는 건지, 내가 막무가내인지, 아니면 그의 성적취향에 만족을 했는지. 그러니 마치 날 기다린 사람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서 슈이치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경계한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된 건 익숙한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마주하면 피하지 않고 얽혀오는 시선 때문이었다. 세상 따위 무심해 보여도 누구보다 시선을 떼지 않는다. 정확하게 느리게 뱉는 숨결을, 그대로 부딪힌 입술을 피하지 않은 탓이었고, 내 손이 바지를 파헤쳐도 밀어내지 않은 그의 탓이었다. 그래서 아카이의 죽음에도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했던 나는, 덕분에 한동안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한 후회 위에 남을 이용했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허우적댔다.
“오키야 씨. 미안해요. 그동안 실례가 많았어요. 먼저 찾아와서 말하기 민망하지만, 이제 선을 긋고 싶어서요.”
관계의 끝을 내리기엔 우스운 사이였다. 서로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고, 약속을 잡은 일도 없으며, 우연이 아니면 만날 일도 없었다. 이 집에 올 때면 자신을 대용품 취급받을 때마다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그를 이용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놓고 그가 필요했기에 이기적으로 굴었다. 나의 걱정과 달리 그는 실례라...,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여느 때처럼 평온한 얼굴로 잔을 들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조디 선생님은 그동안 만남이 실례라고 생각하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그날...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제 감정을 위해 당신을 이용했어요.”
어떻게든 관계에 불쾌감을 주지 않으며 최소한의 사실만 전달하고 싶었기에 입 안에서 오랜 시간 말을 골라야 했다. 노력이 무색하게 그는 커피잔을 든 채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덕분에 안경이 잠시 부옇게 흐려졌지만, 이내 의아한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글쎄요. 제가 선생님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면요?”
“그런 취향이에요?”
“네?”
툭 내뱉은 말에 그는 당황하더니 이내 말뜻을 이해하고 가볍게 웃었다.
“잘 아시겠지만, 오키야 씨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 술을 마셨고요.”
“취향이라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선택이었어요. 그만큼 조디 선생님을 좋아한다, 라고 하면 괜찮을까요?”
“오키야 씨가 괜찮다고 해도... 이제 제가 안 될 것 같아요.”
그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움 마저 들었다.
“그런가요.”
“미안해요.”
“하하. 마치 이별하는 것 같네요. 이제 조디 선생님과 친해졌다고 생각했어요.”
친해지다니,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다시 잡았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간단한 인사를 제외하고 살가운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이런 농담할 정도로 친하진 않았는데. 굳이 한마디 얹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다행인 사실은 그는 관계에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얄팍한 안도감이 식도를 타고 내려왔다.
“한 가지. 코난 군이 있어도 거절할까요?”
“그건 예외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 뒤로 대화가 끊겼다. 자리를 뜨기에는 커피가 많이 남았고, 매몰차게 일어나려니 그간 베푼 호의가 마음에 걸렸다. 더 이상 그에게 무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조금씩 홀짝이는 것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차렸다. 다만, 새로운 화제를 던져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은 없었다. 넓은 집에 울리는 초침 소리만이 시간을 메웠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카이와 같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뿐이었다.
“사실 조디 선생님이 절 싫어하시는 줄 알고 걱정했어요.”
“제가 왜 오키야 씨를 싫어해요.”
“글쎄요. 누구에게나 친절하신 선생님께서 거리를 두는 느낌을 받아서요. 제 착각이겠죠?”
“그럼요.”
“저는 선생님한테 만큼은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속마음을 들킨 죄로 입안에 감도는 커피가 썼다. 미움이라뇨, 애매한 말만 뱉을 뿐이었다. 다행이에요.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남은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못하고 내려놨다. 그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할수록 마음에 부채를 쌓을 것 같아 황급히 코트를 들었다. 잘 마셨습니다. 인사를 덧붙이며.
“늦은 시간에 죄송했어요.”
“아직 눈이 많이 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더 있다 가셔도 괜찮아요.”
오키야는 움직임에 덩달아 일어나 내 뒤를 쫓았다. 관계가 끝나고 그가 자리를 비우면 나는 매번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황급히 집을 빠져나갔다. 그만큼 마중을 할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걸음을 서둘렀다. 앞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한 발 빠른 그가 문고리를 잡았다. 한 뼘을 놔두고 나는 걸음을 멈췄고 곁에 가까이 붙은 숨소리에 몸이 굳었다. 나는 어쩌지 못하고 문고리를 삼킨 커다란 손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손을 천천히 돌리자, 바깥에 드리운 컴컴한 어둠이 서서히 열렸다. 쿠도 가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걸어온 발자국은 이미 눈에 사라져 있었다. 조디 선생님. 발을 뻗어 새로운 흔적을 남기자, 눈이 내리는 소리보다 더 조용히 그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께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저도 알면서 거절하지 않았으니.”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의지를 불가항력으로 만들었다. 결국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를 바라봤다.
“과실은 피프티 피프티예요.”
가늘게 뜬 눈이 녹색으로 빛났다. 그는 당연한 일처럼 경계를 허물려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들렸다. 나는 오키야 스바루를 싫어해야 한다. 겨울바람으로 손끝이 차가워졌지만, 심장이 쿵쿵 온몸을 울렸다. 녹색으로 물든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눈보라에 갇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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